그리운 설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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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설날 풍경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2.26 11:58
  • 호수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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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두기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아끼며 설날을 보냈다. 서로 팔꿈치를 스치며 세배를 올리고, 궁둥이를 하늘 높이 올리고 철푸덕하는 세상 귀여운 조카들의 세배포즈도 다음으로 미뤘다.

 남해에서는 가풍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믐날에는 가족들이 모여 하루 종일 기름샤워를 했다. 우리집은 아빠랑 남동생은 생밤을 치고, 뒷밭에서 쪄온 대나무를 잘라 가느랗게 꼬지를 만들었다. 엄마는 쌀을 이고 이웃마을 떡방앗간에 가서 가래떡을 뽑아오고, 언니와 나는 엄마가 전날 준비해 둔 화양적이나 동태전, 동그랑땡을 부쳤다. 

 남새밭에 남겨둔 파나 배추를 넣은 화양적은 고기보다 더 달았고, 여름에 따다 찬장에 보관해 둔 치자를 계란물에 풀어 전이 계란보다 더 노랬다. 

 일찍 그믐제를 지내고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집에 있는 불이란 불은 다 켜놓고, 잠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면서 우린 방송국에서 설날 특선으로 해주던 영화를 보면서 잠을 달랬다. 예나 지금이나 드라마나 영화를 오래도록 보기 힘든 나는 먼저 잠이 들면 눈썹에 밀가루를 뿌려놓는 장난도 있었다.

 설날은 그렇게 함박웃음을 짓던 시간이었다. 떨어져 살던 친척들이 고향을 찾아오고, 멀리있는 친척집으로 세배를 가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2남 3녀의 장남이셨다. 작은아버지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고 "형 반 만큼만 해라"는 소리를 "밥 먹어라"소리보다 더 듣고 자랐다고 했다. 우리가 학교도 들어가기 전엔 늘 선물 보따리를 들고, 검정색 구두를 신고 고향 집을 오셨다. 그때 대여섯 살 되었던 언니가 작은아버지의 구두를 방안으로 넣으며 하는 말이 "우리 아빠도 구두 신고 싶어 할 거야. 아빠 안 보이는 곳에 넣어두세요."했단다. 명절은 또 그렇게 남해를 지키는 사람과 떠난 사람들 사이에 안 보이는 선을 그어놓기도 했다.

 설날 아침이면 아빠는 처가, 엄마는 친정, 우리는 외가로 세배하러 갔다. 외갓집이 한동네라 우리도 외갓집이 멀리 있었으면 좋겠다는 불평을 가득 안고서. 

 올해 설날은 코로나로 연장된 거리두기가 명절이라도 예외는 없어 예전처럼 복닥거리며 지내지 못했다. 우리 네 식구만 보내기로 한 기름냄새 맡지 않은 명절에는 바다구경도 실컷 하고, 설날 특식으로 인스턴트 짜파구리를 난생 처음 먹었다. 

 언니와 남동생과 마주치지 않는 시간에 엄마를 뵈러 갔다. 모린 고기 몇 종류와 갈치구이, 소라 장조림, 꽈리고추찜, 생미역과 젓국장으로 간단하게 차린 밥상.

 "뒷바테 배치 우에 가상닢이 안자서 그거 글거내고, 캐와 물빠자서 여르메 얼라논 쌩고치를 도구통에 매이매이 갈아가 담갔다."는 겉절이김치가 제일 맛났다. 나는 맛있다는 소리를 갱상도싸나이처럼 "엄마, 도구통 매~이 씨었제?" 했다.

 직접 보리싹을 틔워 만든 질금과 생강을 살짝 넣은 단술, 엄마 손맛이다.

 "맨날 밥을 묵어도 배가 부린가 모리긋더마는 너그랑 가치 묵고낭께 배가 어짐잔타."

 어릴 땐 외가가 가까워 불평했으나 엄마가 가까이 계시니 명절 아니라도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인 시간이다.

 엄마가 갖추갖추 손에 들려준 것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도와주라고 돔, 밀어주라고 민어, 남해의 잔칫상 대표 서대와 양태. 쌀뜨물 넣고 보글보글 끓여 먹고 나니 너무 편해서 허전했던 시간이 이제 완전한 설날을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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