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으로 괴나리봇짐을 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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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속으로 괴나리봇짐을 싸는 사람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2.26 11:59
  • 호수 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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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76
碧松 감충효 │ 시인ㆍ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지금 겨울 산으로 들어가서 
봄눈 녹을 때나
밤안개로 내려오자.
 
천지에 눈이 펑펑
발자국마다 금방 쌓이는 눈
내가 들어간 흔적도 없으리니
잠깐 세상을 등지다 오기로는
지금이 제철이다.
 
세상 뱁새소리 이명으로 끌고 가
지난 가을 단풍잎에 재를 뿌린 죄 
눈이 펑펑 내린다고 덮을 수가 있을까?
 
원죄를 뿌린 자들이 눈 온다고 좋아할 때
아직도 잘못을 말하지 않을 때
오히려 더 시끄럽게 재잘거릴 때
겨울 산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더 많아질 것이다.
 
괴나리봇짐 가벼운 날
섬광 번득이는 검 하나 들쳐 업고
갓끈은 살리고 난마를 끊어내는
그 소리 눈바람을 휘젓는 날
 
뱁새소리 멀어지는가?
내가 멀어지는가? 
 
| 詩作 노트 | 
 설익은 소문에 세상이 먼저 끓어재끼니 그 소문을 낸 자들은 히죽히죽 웃습니다. 소문을 낸 자나 그 소문에 무너진 자들이나 모두 뱁새인 건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이 뱁새들의 심한 소음을 차단하느라 지난 가을 단풍마저도 건너뛴 사람들은 올 겨울 더 시끄러울 것 같아 뭔가를 기댈 곳을 찾습니다. 

 세상사 역천자망(逆天者亡) 순천자흥(順天者興)의 천리에 맡겨두고 저 눈 내리는 겨울 산으로 더 늦기 전에 괴나리봇짐을 쌉니다. 싸늘하게 불어재끼는 설한풍을 순하게 돌려막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겨울 산에는 굶주린 금수들도 있으니 물리적인 금속 송곳니 하나는 갖추어야 합니다. 무딘 스틱 끝이나 닳아빠진 등산화로는 빙판을 찍어 버티지 못하니 새 걸로 장착해야 하고 동토의 설산에서 견뎌낼 비상식은 필수입니다. 

 올 겨울 산행이 주는 의미가 왜 이리 무거운지 옛날에 가볍게 다녀왔던 그 봉우리들이 너무나 높게 느껴지는 것은 체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뱁새 소리의 난마를 끊어내지 못하면 하산의 봄이 길어질까 그게 짐입니다. 근간에 갑자기 더 많이 나타나서 와글대는 뱁새 울음은 심히 난삽한지라 더 이상 감내하지 못할 지경입니다.

 경자년 끝자락 12월 13일 뿌렸던 눈이 심상치 않았는데 신축년 2월 3일 입춘 날 늦은 밤부터 내린 눈은 제대로 세상천지를 뒤덮었습니다. 준비해둔 모든 것을 들쳐 업고 입산을 서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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