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태 시집 [바다의 노래]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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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태 시집 [바다의 노래]를 읽고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2.26 14:34
  • 호수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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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서관호 시조시인
서 관 호시조시인
서 관 호
시조시인

 정현태 시인은 왜 이 시집 이름을 `바다의 노래`라 하였을까? 첫째, 바다처럼 드넓고 푸르게 원 없이 펼쳐보고 싶은 자신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둘째, 바다처럼 깊고도 빛나는 꿈과 희망을 독자들에게 안겨주고픈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아무리 뒤집고 뒤집어도 다음날은 잔잔한 바다 같은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넷째,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나고 살고 있는 터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원색으로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시집에 어떤 소재들을 다루었을까? 언듯 제목을 보고 바다와 관련된 소재가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게다가 남해의 명승 정도가 담겼을 것이라는 것도 착각이다. 어느 누구의 시집보다 다양한 소재를 담고 있다. 그것은 그의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사유의 집대성임을 말해준다.
 시인은 이 86편의 시편들 속에 과연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결론은 다 읽은 뒤에 내리기로 하고 우선 몇 편을 나름의 눈으로 읽어보고자 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언덕은 내려봐도/ 사람은 내려봐서는 / 안 되는 기라/ 사람이 제일 중한 기라

- 둘째 연 생략 -

닭 잡고 난 뒤/ 더운 물도/ 그냥 버리면 안 되는 기라/ 시카서 버려야/ 땅에 있는 작은 생명들이/ 안 죽는 기라

- 넷째 연 생략 -

니도 그래라이
- `니도 그래라이` 부분
 
 선대의 가르침을 형상화한 시다. 사람의 뼈대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는다. 골육뿐만 아니라 골수가 차야 `뉘 집 자식`이 될 수 있다. 어머니는 그 골수를 채워주기 위해 유리왕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하고(-`어머니의 소원`), `니도 그래라이`하고 보편적 삶의 진리를 퍼부어주셨다고 되뇌고 있다. 이것이 정현태의 골수고 배경이고 바다고 하늘이다. 그래서 그 속의 별(-`별`)로 뜨고 싶었다.  
 
바다 게/ 옆걸음질// 보는 게/ 앞걸음질// 하는 게/ 헛걸음질// 사는 게/ 뒷걸음질
 - `게` 전문
 
 이 시는 눈과 귀와 가슴으로 동시에 읽히는 시다. 먼저 눈으로 읽어보면 `게, 게, 게, 게`/ `질, 질, 질, 질`의 통일성이 보이는가 하면, 4연이 각각 음절수가 같다. 다음은 귀로 읽어보면 앞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 소리로 변한다. `게, 게, 게, 게`/ `질, 질, 질, 질`하고 끝소리가 반복되고, 4연이 모두 3·4조 정형의 리듬이 계속된다. 그리고 가슴으로 읽어보면 바다에 사는 게의 옆걸음질로부터 우리 인간들의 모든 삶을 투영해낸다. 좌충우돌 발버둥치는 삶을 낭자하게 드러낸다. 반복법, 열거법을 통해서 누차로 강조한다. 종합하면 28자에 불과한 짧은 시지만 시로서의 운율과 주제를 명료하게 담아내었을 뿐만 아니라 재미까지 더해서 독자들을 미소 짓게 한다. 세상만사는 본래 다 재미있어야 하지만, 세상이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재미의 중요성은 더 강조된다. 책 읽기를 싫어하거나 책 읽을 여가조차 없는 현대인들에게 재미의 선사야말로 한 사발 동치미와도 같은 청량제가 된다. 
 
꽃도/ 피는 시기가 있으니/ 봄에 피지 않았다고/ 서운해 마라/ 가을꽃은 가을에 피는 법이다// 꽃도/ 제 빛깔이 있으니/ 그를 두고 시비하지 마라/ 형형색색으로 피는 것/ 다 자연의 섭리다/ 꽃도/ 제 이름이 있으니/ 무명초라고 부르지 마라/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바람에 진다고/ 한탄하지 마라/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다
- `꽃` 전문
 
 이 시의 꽃에 나(독자)를 대입시켜 읽어보면 이 시의 외침이 읽혀진다. 시인은 독자에게 꽃처럼 살라고 진언한다. 때에 맞춰 살아가라, 날뛴다고 우주의 수레바퀴는 거슬러지지 않는다. 남의 삶을 시기하지 마라, 제 빛을 드러내라. 꽃도 다 이름 없는 꽃이 없는데 네 이름은 무엇이냐? 네 이름을 확연히 드러내라. 세상을 한탄하지 마라, 내가 죽어도 자식이 이어가는 것이고, 봉사하거나 희생하는 사람이 있어야 값진 미래가 열리는 것이다. 이렇게 읽혀지지 않는가 말이다. 시나 철학은 다 자연을 읽어내는 일이다. 
 
공자가 말했다// 그 사람이 있으면/ 그 정치는 흥할 것이요/ 그 사람이 없으면/ 그 정치는 쇠할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말했다// 한 사람이 영적으로 성장하면/ 온 세계가 함께 성장하게 된다 
 
다산 정약용이 말했다// 군자가 책을 써/ 후세에 전하는 것은/ 그것을 알아주는/ 오직 한 사람을 얻기 위해서다
 
소태산이 말했다// 내 법이 정법(正法)이라면/ 천 넌 만 년 뒤에라도/ 이 법을 정법으로 아는/ 그 한 사람이 나오면 된다
 
꼭 그 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 `그 한 사람`(나의 서원문) 전문
 
 이 시는 동서고금의 위인들의 어록을 엮어내는 방식으로 형상화한 글이다. 공통점은 너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시대가 다르고 사람이 달라도 그 진리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든 그 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쓴 중용(中庸) 제20장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였다. 이어서 간디, 다산, 소태산의 어록을 통해서 공자의 설파를 뒷받침하고 있다. 정치가 현실에 발생하는 문제의 조정이라면 시는 존재를 시공을 초월하여 조율한 글이다. 허난설헌이 여덟 살에 썼다는 시 <광한전백옥루상량문>에는 이백(李白)을 비롯한 여러 선현들을 들이댄 부분이 나온다. 이 어찌 최상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듯하다. 이렇듯 시는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를 담을 때 명시가 되는 것이다.
 
딱은 마음의 박자다/ 한 치 오차도 없이/ 서로의 마음이 맞을 때/ 번개처럼 희열이 반짝일 때/ 그때 쓰는 말이 딱이다
딱은 당당하다/ 어깨는 딱 벌어지고/ 입은 딱 다물고/ 태산처럼 딱 버티며/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딱은 절묘하다/ 남는 것도/ 모자라는 것도 없이/ 수지가 완벽하게 일치할 때/ 딱 맞는다고 한다
- `딱` 부분
 
 시인이 국문학도임을 말해주는 시다. 시는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 쓰든 모국어로 쓰는 것이다. 한국인의 모국어는 한글이다. 세계의 문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세계가 인정한 한글이다. 이 `딱`은 한글의 우수성을 딱 한 음절로 보여주는 시다. 시인은 이 시의 말미에 `딱은 개벽의 소리다/ 새 하늘 새 땅이 열리는/ 생명의 합창소리가/ 딱이다`라고 시심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같이 기똥찬 말이 어디 흔하며, 이 같이 기똥찬 시가 어디 흔한가? 절묘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마치 우리 독자들에게 눈, 입, 손, 뜻을 다 맞춰서 딱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울력을 자아내고 있다. 생동감과 생명력이 뿡뿡 솟는다. 
 
 글쓰기는 지금 지어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자기 속에 지어놓은 것을 지금 받아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이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기보다는 어려서부터 문학소년이었기 때문에 국어교육학을 전공할 수 있었고, 그가 읽은 모든 책, 그가 접한 모든 사상(事象), 언론인·행정관·정치인 등의 굴곡진 삶을 통하여 각고하고 성찰했던 모든 과정이 다 가슴속에 용해되어 있던 것을 지금에 이르러 그가 분출하고 싶은 욕구로 차올라 받아쓰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시집을 `어느 잠수부의 노래`로 읽는다. 내가 아는 그 옛날의 머구리는 선상(船上)에서 해주는 펌프질이 멈추면 생명을 잃는다. 게다가 어둡고 추운 바다 속을 나들어야 한다. 이 세상 그 누가 예외일까마는 정치인은 더욱 그렇다. 그가 지금은 잠시 손을 놓았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몸담았던 속성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정치인에게는 지지자, 문인에게는 독자, 방송인에게는 애청자, 농부에게는 소비자가 곧 숨통이다. 그가 정치인이든 시인이든 간에 그가 노래한 바다 속에는 한 사람의 고독한 머구리가 있다. 독자들 또한 머구리가 되어 그의 외침에 공감해보기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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