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무상으로 쏜 화살, 과녁을 꿰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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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념무상으로 쏜 화살, 과녁을 꿰뚫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1.03.04 10:35
  • 호수 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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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박해동 남해군궁도협회 회장
남해 `신궁` 박해동 사두.
남해 `신궁` 박해동 사두.

 여기는 남해 금해정 활터. 사대에 선 박해동(62·이동 다천) 사두는 적당히 간격을 둔 두 다리로 버티고 허리를 곧추세우며 정자세로 천천히 활시위를 당긴다. 20초쯤 지났을까, 온 힘과 얼과 숨을 집중해 박 사두가 활시위를 떠나보낸 화살은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며 145미터 너머에 놓인 과녁에 가 꽂힌다. 관중했음을 알리는 빨간 불빛이 보이면 일상에 지친 심신의 피로와 스트레스는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난다. 
 
국궁 최고 9단 오른 남해 신궁
 남해군궁도협회 회장인 박해동 사두가 활시위를 당기기 시작한 건 1991년 그의 나이 32세부터이니 올해로 꼭 30년째다. 건강 때문에 이런저런 운동을 해보다 우연히 궁도에 입문한 지 10년 만인 2001년, 그는 국궁 최고의 경지인 9단에 올랐다. 서부경남 최초이자 국내 8번째 9단 승단이었다. 현재 그는 대한민국 9단명궁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박 사두는 금해정 최고의 명궁으로 불리며 전국체전과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등에 출전해 숱한 우승기록을 남겼다. 경남대표로 활동한 2000년부터 2017년까지 기록된 박 사두의 경기실적증명서를 보니 17년간 1위한 기록만 해도 개인전 16회, 단체전 11회, 부부전 2회까지 총 29회다. 그 외 수상실적도 많다. 김창근 남해군궁도협회 사무국장의 말에 따르면, 한창 때 박 사두가 선수권대회에 나가면 "해동이 나왔다"며 그 대회 모든 이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

 특히 9단으로 승급하던 시기에 그가 금해정에서 올린 17연 몰기 기록은 비공식이긴 하지만 지금도 깨지지 않는 대기록이다. 한 순(5발)을 모두 관중시키는 것을 몰기라고 하는데 이 몰기를 17번 연속으로 성공했음을 뜻한다. 3번을 더해 20순을 모두 관중하면 말 그대로 백발백중이 된다. 이 정도면 과연 `신궁`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런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묻자 박 사두는 "특별한 비결이나 스타일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다만 "당시 싱크대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건강이 안 좋다 보니 남보다 연습을 더 열심히 했다. 혼자서 새벽에 낮에 또 오후에 수시로 가서 연습했다"며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담담히 대답한다. 

 박 사두에게 국궁의 가장 큰 매력은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벌이는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점이다. 화살이 곧게 날아가서 과녁에 꽂힐 때 느끼는 상쾌함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고.  
 

박해동 사두가 자신이 운영하는 활 제작소에서 직접 제작한 카본 개량궁인 해동궁을 설명하고 있다.
박해동 사두가 자신이 운영하는 활 제작소에서 직접 제작한 카본 개량궁인 해동궁을 설명하고 있다.

개량궁 이어 전통 활·화살 제작
 건강을 위해 시작한 궁도가 박 사두에게 어느덧 취미를 넘어 생업이 됐다. 활을 쏘다 보니 자연스레 활 제작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20년 전인 2010년경부터 화살을, 15년 전부터 활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별히 스승에게 사사한 것이 아니라 직접 뜯어보고 연구하고 물어가면서 만들었다. 그리고 카본 개량궁인 해동궁과 해동화살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그의 개량궁과 화살은 대한궁도협회의 공인필증을 받은 제품이라 대회에서 사용할 수 있다.

 얼마 전부터는 전통 활도 연습삼아 제작하고 있다. 물소뿔, 쇠심줄, 대나무, 아카시나무, 참나무를 재료로 민어 내장과 부레를 말려서 끓인 풀을 40~50번 정도 먹여 붙인다. 이렇게 해서 전통 활 한 장 만드는 데 1년 정도 걸린다. 5단 이상이면 대회에서 각궁죽시를 써야 한다. 카본 활은 5단 이하에서 쓴다. 어떤 활을 들고 있는지 보면 그의 실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단다. 

"남해에 국궁 전수관 세워지길"
 남해군궁도협회 회원은 현재 40명이 채 안 된다. 매년 새로운 사람들이 10명 정도 오긴 하지만 꾸준히 하는 이는 드물다. 설상가상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대회는 물론 정기 모임도 아예 갖지 못한다. 다만 국궁은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운동이라 위안이 된다. 갈수록 국궁 사우들이 줄어드는 현 상황이 박 사두는 협회장으로서 안타깝기만 하다. 

 박 사두에게 바람이 있다면 남해 국궁 인구가 늘어나 국궁 체험관이나 전수관을 세우는 것이다. 지난해 국궁이 중요무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된 만큼 남해에서 전수관을 선점해 유치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궁도 승단대회가 1년에 3~4번 4박 5일 정도 한다. 남해에 상주인력과 장소가 생기면 매월 승단대회도 열 수 있다. 몇 년 전 이락사 인근에 궁도 체험관을 세울 계획이 있었으나 무산된 일은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그만이 아닌 남해 금해정 사우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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