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의 정월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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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정월대보름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3.04 11:06
  • 호수 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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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마을 달집태우기
고현마을 달집태우기

 1년에 여러 번 오곡밥을 먹을 기회가 생긴다. 엄마는 부모님의 생신과 우리 남매들의 생일날이면 붉은팥, 수수, 조, 밤과 찹쌀을 넣어 소금으로 간을 맞춘 오곡밥을 하셨다. 세시풍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엄마는 풍요롭게 설을 보낸 후 돌아서서 곧 맞이하는 정월대보름도 신경을 썼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볼 수 있는 날은 외할머니의 생신이기도 했기에. 

 아직도 우리집의 유산으로 남아있는 손바닥만한 밭에는 토란, 피마자, 호박, 오이, 가지, 부추, 들깨가 계절마다 앞다투어 잘 자랐다. 토란줄기는 껍질을 벗겨내고, 피마자잎은 끓는 물에 데쳐서 좋은 볕에 말려 쟁여두었다가 보름나물로 썼다. 

 땀을 워낙에 많이 흘리는 나에게 엄마는 보름 전날 밤부터 단단히 이른다. "낼 아즉에 누가 부리거등 절대 대답허지 말그라. 니가 아침 일찍 사람을 불러서 대답을 하거든, 내 더위 사가라고 해삐라." 

 보름날 아침부터 가위나 칼로 자르면 안 된다고 엄마는 나물거리, 양념거리 모든 칼질을 다해놓고 주무셨고, 보름날 아침에는 밥상에서 아빠가 커다란 김 한 장씩 나눠주면 그걸 가위질 하지 않고 밥에 김을 올려 손으로 복을 싸 먹었다. 땅콩은 스스로 까고, 호두는 아빠가 깨주는 대로 제비 새끼처럼 부럼도 먹었다. 아빠는 술을 마시지 않으셨기에 우리 집은 귀밝이술은 생략했지만, 성년이 되고부터는 내 차지가 되었다.  
 대보름날에는 지신밟기와 쥐불놀이를 빼먹을 수 없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중촌마을은 메구패들이 집집마다 방문해 집을 한바퀴 돌며 앞소리꾼이 평안과 건강을 기원했다. 떠들썩한 농악소리가 들리면 엄마는 부엌으로 바삐 들어가 마른고기와 나물, 나박김치와 막걸리가 든 상을 들고 나왔다. 앞소리꾼은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기름칠한 목소리는 더 우렁찼다. 

 대보름은 겨울방학 시기와 맞물려 동네 아이들의 잔치였다. 청년들은 뒷산에서 대나무를 쪄와 바닷가에 달집을 만들고, 아이들은 집에서 고물인 폐페인트통이나 폐분유통을 들고 나왔다. 통을 거꾸로 세워놓고, 못을 망치로 두들겨 불구멍을 내고 철사를 둘러 손잡이를 매달았다. 

 외사촌과 우리 남매들까지 여섯개의 깡통을 아빠가 만들고 있으면 한동네 사는 외할머니가 손사레를 쳤다.

 "아이고 저가배, 아~ 덜이 해주라쿠는대로 했다가 불이라도 내모 우쩔라 그러는고. 우찌저리도 사람이 좋아 아~ 덜 간을 키우는가 모리긋다" 하면 

 "어무이, 넘들 허는 거는 다 해바야 됩니다. 오늘은 불놀이 다하는 긴데, 몬허라쿠는것도 아~덜 바보 맹그는 깁니다. 과학적으로도 깡통을 빨리 돌리모 불이 안 떨어진께 걱정 안 해도 된다 캐도예."

 "과학이나 머이나 내는 모리긋네. 자다 오줌이나 안 싸모 다행이제."

 불놀이를 할 수 있는 공식적인 날이었기에 우린 추운 줄도 모르고 횃불을 돌렸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으면 엄마는 삼재나 한해 액땜을 위해 삼거리에서 동전을 던지거나 팥을 던지거나 했다. 엄마들은 늘 자식들의 안녕과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수호신이 아닌가 싶다. 정월대보름 날에는 눈썹을 휘날리며 퇴근하기 무섭게 아이들과 훨훨 타오르는 달집 구경을 했는데, 오늘은 오곡밥도 못 먹고 소원빌기도 놓쳤다. 어릴 때 빠뜨리면 큰일 날 것처럼 꼭꼭 챙기던 풍습들이 생략되거나 취소되거나 없어지거나 해서 허전하다. 내년엔 더 높은 달집을 세우고, 더 큰소리로 메구를 치며 안전과 평안을 축복하는 시간을 맞이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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