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계층 돌봐온 의사, 상주에 `참의료` 펼칠 둥지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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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계층 돌봐온 의사, 상주에 `참의료` 펼칠 둥지 만들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1.03.18 10:54
  • 호수 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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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박 진 원 상주우리의원 원장
박진원 상주우리의원 원장.
박진원 상주우리의원 원장.

 지난 1월 중순경 상주면에 병원이 하나 들어섰다. 상주우리의원(상주면 남해대로 699-3, 옛 신협 상주지소)이다. 상주면은 남해군에서도 가장 인구가 적고(약 1600명), 고령층 인구가 많은데다 의료시설이라곤 보건지소 한 곳뿐인 대표적인 의료취약지역이다. 아파서 병원에 가려면 최소한 미조면이나 읍으로 가야 한다. 그런 상주면에 진료과목이 7개(내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외과, 재활의학과, 피부과, 비뇨기과)나 되고 물리치료실, 방사선실, 초음파실까지 갖춘 병원이 생겼으니 상주면 주민으로선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입소문이 나면서 이웃 면 주민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17년간 인도네시아 의료봉사
 여기까지면 그냥 일반적인 병원 개원 소식일 테다. 그런데 이 병원 박진원(59) 원장의 이력이 독특하다. 박 원장은 부산 해운대에서 개원해 환자 수로만 전국 수위를 기록하던 소위 `잘나가는` 소아과의원 원장이었다. 그러던 그가 2002년 가족을 이끌고 홀연히 인도네시아로 선교 활동 겸 의료구호활동을 떠났다. "잘 될 때 가야 떳떳하지요. 원래는 미얀마에 가고 싶었는데 당시 인도네시아는 결핵 사망자 수가 세계 세 번째로 많을 만큼 결핵이 심각했어요. 지원 요청을 받고 바로 갔습니다."

 사실 그가 의료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7세 때부터다. "슈바이처처럼 살고 싶었어요. 그 꿈을 키우면서 의사도 됐지요. 당연히 많이 모자라지만 비슷하게는 가자, 일단 눈에 보이는 것부터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눈에 보입니다." 선교사이기도 한 그는 벧엘의료선교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간 처음 2년간은 칼리만탄이라는 지역에서 원주민 진료를 했다. 이른바 텐트메이커(직업을 가진 선교사)로서 현지 병원에서 일하며 의료선교사업과 함께 원주민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발전기도 기증하고 우물도 파고 교회를 짓고 자카르타에서 병원도 개원했다. 그러다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단 반다아체 주에 지진과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수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다. 박 원장은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후 응급진료 체계를 만들기 위한 NGO 협의체를 만들었다. 구호물품과 약품, 의료지원팀을 연결해주고 현지인 교육도 시켰다. 지진이 잦은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의료팀과 현지 팀을 모아 연합팀을 만든 건 무엇보다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한국 외과 수술팀과 함께 매년 20~30명씩 구순열(언청이) 수술을 해주는 사업도 5년 넘게 하고 도시빈민 진료, 장학금 지원사업도 했다. 그렇게 17년간 의료구호사업을 했고, 한국에서 번 돈을 다 쓰고 돌아왔다. 
 

박진원 원장(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병원 가족들. 의료봉사활동의 오랜 동료인 이정미 부원장(오른쪽 두 번째)도 함께하고 있다.
박진원 원장(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병원 가족들. 의료봉사활동의 오랜 동료인 이정미 부원장(오른쪽 두 번째)도 함께하고 있다.

외국인 어부와 노인 진료에 관심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남해 상주에 자리 잡게 된 건 이제는 같이 살고 싶다는 어머니의 바람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해를 와보고 너무 좋아서 이곳에 뿌리를 내리기로 했다. 치과의사이자 수필가인 이정미 부원장은 17년간 인도네시아 의료봉사 동료로서 함께하다 이곳 상주에서도 같이 일하게 됐다. 미조 천하마을, 앵강만이 보이는 신전마을 등도 마음에 뒀으나 상주에 병원이 없으니 상주로 오라는 지인의 추천으로 상주에 왔다. 

 "작년에 미조에 왔을 때 인도네시아 등 외국인 어부들이 많은 걸 봤어요. 외국인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이곳에 자리잡게 된 거죠. 이곳은 공기도 너무 깨끗하고 각박하지 않아 좋습니다." 

 상주에서 박 원장이 관심을 갖게 된 분야가 있다. 바로 노인의학 분야다. "우리도 늙습니다. 어르신들을 보며 미래의 내 모습을 떠올리고 저분들이 어떻게 하면 안 아프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지요."  

 상주우리의원은 토요일에 진료를 하지 않는다. 그날 박진원 원장은 몸이 아파도 병원에 오지 못하는 혼자 사는 어르신들을 들여다보고 물리치료, 운동 등 도움이 되는 것들을 가르쳐드리러 다닌다. "미조는 어업이 주여서인지 어깨 아픈 분들이 많은데 상주는 어깨는 괜찮은데 다리 안 좋은 분들이 많아요. 쪼그리고 앉아 일하는 습관 때문이겠지요."

 상주의 노인복지관, 노인대학, 목욕탕, 운동시설 등을 눈여겨보며 노인이용시설들이 이곳 노인들에 맞게 활용되기를 바란다. 노인대학 등 교육기관이 있으니 어르신들에게 운동법이나 건강법을 함께 연구하고 충분히 가르쳐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또 이런 일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한 네트워크도 만들고 싶다. "나는 의료적인 것밖에 안 보이지만, 이곳에서 뜻있는 다양한 분들과 함께 일을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박진원 원장의 머릿속엔 앞으로 할 일들이 무궁무진하다. 다만 아직 온 지 두 달이 채 안 됐기 때문에 앞으로 몇 달은 더 지나야 계획이 구체화되고 현실화될 것이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죠. 무리해서 앞서나가기보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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