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천하가 별거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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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천하가 별거던가?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4.01 11:09
  • 호수 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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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82
碧松 감충효 │ 시인ㆍ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어릴 적 봉천 너울 강진바다 해류에서
물속을 읽어내는 힘들이 생겼음에
대양의 깊이와 폭을 몸에 담기 쉽더라.
 
 2012년도의 일이었다. 아들과 딸이 근무하는 코엑스 영업점이 핵 안보 정상회담으로 이틀을 쉬게 되었다. 고향을 잊고 사는 아이들에게 고향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손자 녀석이 가고 싶어 하는 곳도 바다이고 아들딸에게 보여줄 곳도 고향 바다의 푸른 기상이었다.

 호젓한 남쪽 바닷가에 하룻 밤 묵을 곳을 정해놓고 봉천의 묘목장으로 향했다. 일찍 뿌린 고향의 시금치가 잦은 가을비로 습해를 받아 큰 피해를 입고 고향사람들이 망연자실해 있을 때 고구마 수확한 곳에 늦게 시금치 씨를 좀 뿌려놓은 것이 오히려 습해를 받지 않고 겨울 동안 잘 자라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잎줄기가 시뻘건 오리지널 황토밭 노지 시금치였다. 온 가족이 달라붙어 몇 포대를 수확하는 동안 손자와 손녀는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땅을 밟으며 즐겁게 뛰놀았다. 며느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밭가 언덕에 지천으로 솟아있는 밤톨만한 달래를 캐고 있었다.

 주유천하(周遊天下)가 별거던가?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와 손녀들에게 자주 고향의 땅 기운을 받게 하는 것도 장래 주유천하 할 근본적인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소중한 작업이다. 격대교육(隔代敎育)을 통해 손자 손녀가 환경친화적인 인물로 자라나기를 바라며 걸음마 때부터 산으로 들로 많이 데리고 다녔다. 무엇인가 통했는지 이 녀석들은 조상님들이 대대로 지켜온 논밭으로 뛰어다니면서 기가 펄펄 살아있었다. 이들의 주유천하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가까운 고향의 원초적인 정서를 모르면서 먼 세상구경은 큰 의미가 없다. 아무리 천하를 휘젓고 돌아다녀 봐야 대자연을 받아들이는 기본 정서와 인본주의적 정서가 약하면 이는 시간낭비일 뿐이다. 경제가 허락하지 않아 세상 여러 곳을 못 돌아봤을지라도 자연에 대한 기본 소양만 잘 갖추면 세상천지를 다 그려낼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천하의 명승지를 다 보았으되 감동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비록 내 고향 산천의 조그만 시냇물에서도 마음만 열려있으면 심원한 무한량의 수량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강진바다 아담한 해류의 느낌을 진실로 감지할 수 있다면야 저 웅혼한 태평양의 맥을 짚을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어렸을 때부터 호연지기의 기본정서가 자리를 잡지 못하면 더 이상의 넓은 세상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나의 속이 비좁은데 어찌 천하를 담을 수 있으랴.

 고향바다의 해조음을 들으면서 깊어가는 봄밤의 정취는 실로 부드러움의 극치였다. 먼 길 비좁은 차 속에서 짜증 한 번 안내고 시종일관 웃으며 할머니의 고향이며 아버지의 고향을 처음 찾아온 여섯 살과 세 살배기 손자 손녀가 고맙다. 다음 날 새벽에 아들과 나는 제법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낚시를 갔다. 갯바위 앞 해초 속에서 낚아 올린 노래미는 꽤 많았다. 

 숙소로 돌아와 물고기를 보여줬더니 녀석들은 살아있는 노래미를 방바닥에 쏟아 놓고 같이 논다. 쩌억 쩍 입을 벌리는 노래미와 입을 맞추기도 한다. 세 살짜리 손녀 녀석은 노래미의 입에 밥알을 넣어주며 먹으라고 한다. 퍼덕거리면서 꼬리지느러미가 볼을 때려도 자지러질 듯 웃으며 좋아한다. 확실히 환경친화적으로 자라난 아이들이다. 이번 고향 방문은 짧지만 자라나는 3세들에게 주유천하의 첫걸음을 떼게 해준 의미 있는 1박 2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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