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자료로 본 이동초의 설립과정과 장소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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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자료로 본 이동초의 설립과정과 장소 변경
  • 전병권 기자
  • 승인 2021.04.08 11:28
  • 호수 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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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면 난음리에서 이동면 석평리로 이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등 역사적 사실도 의미 있어

우리는 앞서 이동초등학교의 전신인 동영학교와 사립동명학교에 대한 내용을 살펴봤다. 당시 상황은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데, 어떻게 이동초가 삼동면에 위치해 있었는지 의문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삼동면에 위치해 있던 이동초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이유로 이동면으로 오게 됐는지 살펴봤다. <편집자 주>

 

경남일보 제18호 1909년 12월 29일자 3면에 보도된 내용이다.
경남일보 제18호 1909년 12월 29일자 3면에 보도된 내용이다. "남해군수 홍성욱은 사립육영학교 김영두 교감을 대동하고 창선면 흥선학교, 삼동면 동영학교를 시찰했다"라는 내용으로 보도돼 있다. [자료제공-정봉주 위원장]
조선총독부 관보. 1932년 3월 9일 1558호 3면 이동공립보통학교 위치변경 건. [자료제공-정봉주 위원장]
조선총독부 관보. 1932년 3월 9일 1558호 3면 이동공립보통학교 위치변경 건. [자료제공-정봉주 위원장]

학교장소 이전 영향을 끼친
일제강점기 초등교육정책

 이동초등학교 장소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살펴봐야 하는 것이 일제강점기에 시행됐던 초등교육확대 정책이다.


 당시 정책을 보면, 일본의 식민지 지배 이후 조선총독부는 1918년 12월 `3면 1교 제도`를 실시한다. 10년 뒤인 1928년에는 `1면 1교 제도`가 시행된다. 이후 1934년 간이학교제가 시행됐고 이동초의 당시 교명은 이동공립보통학교였으며, 부설 다초(초음)·성남·상주간이학교 3개교가 설립된다. 부설 간이학교장은 이동공립보통학교장이 겸임했다.
 
삼동면에서 이동면으로
이전하기까지

 현재 이동면에는 이동초가 있고, 삼동면에는 삼동초와 지족초가 소재해 있다. 삼동초는 삼동공립보통학교로 1929년 9월 25일 개교했고, 지족초는 삼동심상소학교 지족분교장으로 1938년 4월 26일 개교했다.


 동영학교와 사립동명학교는 삼동면 난음리 유(저수지)267~269에 해당하는 현 난곡저수지 안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은 학교가 있어 생원골로 불리고 있다.


 사립동명학교는 조선총독부의 초등교육 중 공립학교(조선인 학교 말살, 통제 등)를 확산시키기 위한 정책 속에서 폐교되며 대신 1920년 3월 22일 교명변경과 설치인가를 받으며 `동명공립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같은 해 5월 1일 개교하게 된다. 그러면서 장소는 이동면과 삼동면의 경계지역인 삼동면 난음리 2032번지 현 삼이로 옆 비자당으로 이전한다.  위치변경으로 사립동명학교 졸업생 명부가 존재하는 것은 학생만 승계한 것이고, 교장은 함안군 출신 최정한 초대 교장이 취임한 기록이 있다. 이 과정에서 학교 재산은 양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20년 9월 29일 매일신보 기사에 보도돼 있다. 또, 당시 졸업생 명부와 사립동명학교 입학생 명부를 비교해보면 두 학교가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3면 1교 제도가 시행 중이었기 때문에 이동면에는 초등학교가 없는 실정이었다.


 이후 1928년 1면 1교 제도가 시행되면서 남해군에도 각 면에 초등학교가 설립된다. 그 과정에서 삼동면의 중심인 동천리에 삼동공립보통학교가 새롭게 개교한다.


 동명공립보통학교는 1929년 7월 27일 이동공립보통학교로 명칭을 변경, 1932년 3월 29일 위치 변경 허가를 받아, 1932년 5월 3일 이동면 석평리 52-2번지에 신축 건물을 착공한 후 1932년 8월 9일 학교 이전식을 가졌다. 이 내용은 조선총독부 관보에 기록돼 있으며, 공사 착수(1932년 5월 11일자 동아일보)와 학교 이전식(1932년 8월 10일 매일신보)에 관련된 내용은 신문에 보도돼 있다.


 정봉주 위원장은 "이동초등학교 역사관이 건립되는 가운데 우리 학교의 역사가 이어질 수 있도록 많은 동문들과 지역 주민들, 국가기록원, 국가보훈처, 조선총독부 관보, 신문 등 수많은 자료를 찾았다"며 "어려운 한문도 많았고 문맥이 이해가 안 돼 해독하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또, 혼자서 자료수집과 해석을 하다 보니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학교의 정확한 역사를 찾고 바로잡기 위해서 계속해서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라며 "이러한 근거와 내용을 토대로 이동초의 역사를 되찾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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