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m만에 어김없이 찾아오던 서울에서의 통증이 왜 남해에서는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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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km만에 어김없이 찾아오던 서울에서의 통증이 왜 남해에서는 없는 것인가?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4.08 11:41
  • 호수 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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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83
碧松 감충효 │ 시인ㆍ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기와 혈 솟구침이 뭔가 다른 고향에서
치유의 소근그림 무릎 인대 불러내니
유년의 청정 혈맥이 다시 살아나는 듯

 
 오래 전 이야기지만 고향땅에서 원 없이 달려본 마라톤 이야기라 기억을 더듬어 적어 본다. 2007년 3월 4일 창선-삼천포 대교 개통기념 전국 하프 마라톤대회 날이다. 날씨가 너무 차다. 그리고 비까지 머금고 있으니 오늘 대회의 어려움을 예고하는 것 같다.


 어제 밤에 도다리 쑥국을 정성들여 끊여준 이종은 회원 어머님의 정성과 회원님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농어 대짜배기로 회원들의 영양보충을 시켜준 설천 감암 출신 지상복 향우님의 열의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마라톤 완주의 대열에 들어서야 하는데 날씨가 문제라면 문제다. 다들 오늘의 경기를 위해서 취침을 서둘러 한 탓에 컨디션들은 좋은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숙소에서 "심! 심! 심!"을 외치고 오늘의 마라톤 집결장소인 삼천포로 향한다. 공원에 사천시에서 세운 이 고장 출신 박재삼 시인의 시비를 가만히 우러르고 영남시인의 기개를 생각하며 역시 카메라에 담는다. 얼마 안 있어 대회 측의 안내와 팡파레 음악, 그리고 폭죽과 함께 하프 코스 팀이 맨 먼저 힘차게 출발한다. 주로를 달리면서도 하프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10㎞만 넘어서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양 무릎관절의 통증 때문이다. 무릎통증이 시작된다면 그 이후 10㎞ 반환점에서의 고통은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잔뜩 흐린 하늘에서 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푸른 바다 위에 걸려있는 창선삼천포대교의 중간쯤에서 앞서 뛰던 한 분이 중앙선 돌출표지에 걸려 사정없이 넘어진다. 많이 안 다쳤기를 위로하면서 계속 나아간다. 운동 경기 중 마라톤처럼 고독한 경기가 있을까? 묵묵히 자기와의 싸움에서 시작해서 자기를 이기는 운동이다. 하프보다 늦게 출발한 10㎞ 코스 주자들이 벌써 반환점을 돌아오고 있었다.


 3위로 달려오는 외국인의 모습이 보인다. 저 추세로 달리면 앞서가는 1위와 2위를 추월할 것 같다. 5㎞ 냉천마을과 당항마을을 지나, 6㎞ 목화 주유소, 7㎞ 곤유마을, 빨간 벽돌집 8㎞ 곤유리 선창마을, 9㎞ 동대마을 창선주유소, 10㎞ 수산리를 지나면서 군데군데 서서 손을 흔들어주는 고향사람들과 음료수와 물수건으로 참가자들의 편의를 위해 활동하는 학생 자원봉사들에게 지친 몸이지만 손을 흔들어 주면서 앞만 보고 달린다. 상신 마을 주변 도로를 달릴 때는 혹시 이모님이 나와 계시지 않을까하고 물어도 보고 살펴도 보면서 달린다. 그리고 가끔은 해변에 눈을 돌려보지만 흩뿌리는 비와 안개에 가려 시원한 바다는 볼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미 반환점을 돌아섰는데 의례히 찾아오던 10㎞ 지점 무릎관절의 통증이 없다. 더구나 날씨는 차고 바람이 부는 난코스이니 찾아와도 일찍 찾아왔을 무릎 통증인데 오늘은 없다. 결승선 2㎞ 앞두고 마침내 무릎관절이 노크를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기어가도 가야 할 남은 거리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결승선을 밟았으나 아무도 없다. 다들 쏟아지는 비 때문에 부스에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최측 카메라맨은 2시간 12분대에 달려오는 나를 놓치지 않고 찍는다. 점심은 하동 섬진강변에서 참게탕으로 먹고 바삐 서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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