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밥상과 돌가리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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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밥상과 돌가리 종이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4.23 12:11
  • 호수 7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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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주말에는 가족들과 온전히 함께 지낸다. 주중에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른들은 회사에서 영혼을 갈아 넣을 듯이 집중을 하더라도 주말근무가 걸리지 않는 날에는 아이들과 우리고장 둘러보기를 한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이라곤 `시골에서 태어난 것`, `고향이 남해라는 자부심`밖에 없어서.


 하루에 꼭 한번은 먹게 되는 쌀밥이 밥상 위에 올라오는 과정이라던가, 들판에 푸른빛이 도는 채소들도 제각기 마늘, 파, 양, 시금치, 배추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던가, 엄마가 태어난 곳은 곡내이지만, 골안이라는 우리말이 있고, 엄마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사를 나온 곳이고, 아빠가 태어난 곳은 구미마을이지만, 구방이라는 옛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식이다. 


 주말에 남해전통시장의 오일장이 열리면 아이들을 데리고 시장구경을 간다. 


 "낙지는 날씬하고 다리가 8개 달렸고, 가을에서부터 따뜻한 봄까지가 맛있고,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주꾸미가 제철이야"라고 내가 알려주면 낙지를 좋아하는 아들래미는 "엄마, 나는 그냥 낙지가 맛있는데?" 한다. 


 해산물을 좋아해서 유치원 다닐 때부터 낙지와 주꾸미, 문어와 갑오징어를 구분했다. 그때는 내가 천재를 낳은 줄로 착각했지만, 요즘은 건강하게, 친구와 안 싸우고 학교만 잘 가면 좋을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엄마는 쌈밥을 좋아하셨다. 집 뒤 야트막한 나대지가 엄마의 텃밭이었고, 봄이 되면 쌉쓰레한 머굿잎과 상큼한 상추와 쑥갓을 자주 밥상에 올렸다. 남해사람들이 달롱개라 부르던 달래는 주인없는 땅에도 잘 자라 젓국장으로 버무리면 반찬과 양념장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어시장에 봄멸치가 나올 때 엄마의 밭에는 봄상추가 잘 자랐다. 봄에는 멸치를 풋마늘과 함께 조려 싱싱한 상추에 싸 먹었다. 멸치쌈을 먹어야 봄을 나는 기분이었다. 


 "옛날에 너그 아빠는 출근하고, 할아버지랑 둘이서 멸치쌈을 해서 밥을 먹는데, 할아버지가 어른하고 쌈을 먹을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된다고 했거등." 
 "왜?" 
 "쌈을 먹을 때는 꼭 눈을 부릅뜨게 되니 어른 앞에서 조심해야 된다는 거지. 나도 옛날사람인데 할아버지는 더 옛날 사람이라 예의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하셨다."
 "이렇게?" 


 나는 부릅뜬 눈을 억지로 더 치켜 뜨면서 엄마랑 실컷 웃었던 기억이 났다. 
 
 "엄마, 나뭇잎을 왜 먹어?" 아이들은 쌈을 먹는 우리 모녀가 퍽이나 신기해서 그런 질문을 하곤 했다.


 "너희들도 자라면서 이런 맛들이 그리워질거야. 지금은 모르겠지만, 계절이 바뀌면서 엄마가 해주는 나물이나 이런 음식들이 먹고 싶어질걸? 엄마도 그랬거든."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은 종이접기를 좋아한다. 시장에 갔다가도 필요한 학용품을 사러 문방구에 들른다. 요즘은 아이클레이나 종이류, 풀, 가위도 종류별로 색깔별로 잘 나오는지 하마터면 나도 보릿고개를 견딘 사람으로 착각할 뻔했다. 손바닥만한 색종이와 A4 크기인 색지, 종이를 재단할 수 있는 재단기를 사고, 물풀, 딱풀, 목공풀도 산다. 


 "그기 다 종이가, 요새 정말 세상 좋아졌다. 종이도 여러 가지에 잘 찢어지지도 않고."
 49년생인 엄마는 종이에 대한 포부가 져서 요즘에도 메모지나 수첩을 너무 좋아하신다. 


 "우리 때는 돌가리 종우에다 쓰다가 틀려서 춤~을 살짝 묻히서 지울라쿠몬 종이가 고마 빵꾸가 나여. 그래서 지우도 몬했어."
 "돌가리 종우가 뭐야."
 "갱지"라고 내가 알려줘도 아이들은 모른다. 그 노란 똥종이를.


 "너희들 학교에서 내주는 가정통신문 종이보다 더 안 좋은 재질의 종이야."


 우리 가족들은 이제껏 접은 종이값을 계산하면 빌딩은 못 사도, 너 자전거 한 대는 샀겠다면서 한지를 만드는 원료가 되는 화방사 산닥나무 자생지를 찾아갔다. 천연기념물 제152호인 산닥나무 자생지는 신라고찰인 화방사 사찰 안의 야산에 있다. 나무껍질이 한지의 원료가 된다고 한다. 울창한 나무들은 예쁜 잎들을 달고 살랑거리는 바람은 안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산닥나무를 검색하니 잎은 돋았으나 7월에서 8월에 꽃이 핀다고 알려주었다. 노란꽃이 피는 날에 다시 산닥나무 자생지를 찾기로 하고, 바람결에 들려오는 처마 밑 풍경소리로 코로나와 황사가 뒤덮은 봄날의 마음을 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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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오 2021-04-26 05:24:56
돌가리 푸대,제자.산치.대맹이.볼대배늘..........
남맨 대밭골 촌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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