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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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아야 한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5.14 14:54
  • 호수 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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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어린이날에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어버이날에 아이들이 쓴 편지를 받고 나니, 곧 스승의 날이다. 예나 지금이나 선생님 말씀이라면 어린이집을 거쳐 초등학교때까지는 말 잘 듣는 학생들로 자라는 것 같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여름에도 겨울 부츠와 겨울외투를 입으려 하고, 추운 겨울에는 장롱에 넣어둔 래시가드를 꺼내 입고 어린이집을 가려고 떼를 쓰던 청개구리 딸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고, 누나만 치마입고, 예쁜 구두 신는다고 질투를 하며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구두를 신고 또깍또깍 소리내며 어린이집에 갔던 아들은 어느새 초등학교 3학년이다.

나의 학창시절엔 도제식 교육이라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여야 했고, 이해 못 하고, 외우지 않으면 따라잡기 힘든 교육이라 늘 공식이나 단어장을 적은 나만의 수첩을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책표지도 너무 예쁘고, 교육내용도 아이들의 창의력을 길러주고, 수업도 발표하고, 논리적으로 문제 해결하는 과정, 친구들을 배려하고 사회질서와 안전을 지키는 것으로 공부하는 것 같다.

선생님들은 밴드나 클래스팅으로 아이들의 학습결과물이나 교실에서의 생활을 알려주기도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만 해도 벅찬데, 수업 외의 일까지 해야 하고, 학부모에게 항의전화라도 걸려 오는 날은 사명감이 자꾸만 줄어들까 걱정이 된다.

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 우리반에 옥희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새까만 머리가 반질반질 삼단 같았다. 하지만 친구들은 냄새난다고 같이 앉지 않으려 했다. 그때 수업을 들어오던 모 과목의 선생님이 코를 막고 눈을 찌푸렸다. "너 내일 머리 감고 학교와." 하면 옥희는 헤~ 웃기만 했다. 눈이 맑고 예뻤던 친구로 기억나는데 냄새는 어쩔 수 없었다. 다음날도 머리를 감고 오지 않자 선생님이 나서서 빨래비누와 샴푸를 사오라 시키고, 화장실로 데리고 가 머리를 감게 했다. 당연히 선생님은 코를 막고 서 있고, 친구들은 우르르 화장실 밖에서 구경을 하고, 반장이가 부반장인가를 하던 내가 옥희의 반질거리는 머리를 감겼다. 찬물을 옥희 머리에 끼얹었는데 물이 토란잎처럼 또르르 굴렀다. 물을 흥건히 묻히고 빨래비누를 옥희 머리에 문질러 거품을 내고자 했지만, 묵은 때가 오래되었는지 내가 몇 번 비누칠해서 문지르고 난 뒤에 하얗게 거품이 오르기 시작했다. 맑은 물로 몇 번 헹구고 나니 옥희의 얼굴에는 시원함이 묻어나오고, 선생님은 나에게 비위가 좋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래서 그 후로 나는 비위가 좋은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 다행히 옥희가 성격이 좋아 부끄럼이나 질풍노도는 겪지 않고 사춘기를 보낸 것 같다.

딸아이가 3학년 때, 도시지역에서 근무하다가 남해로 오신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 되었다. 선생님은 키가 작아서 굽 높은 신발을 신었고,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을 정도로 키가 큰 딸은 큰 키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어깨를 수그리고 다녔다. 친구들이 "선생님, 은찬이하고 키 재보세요." 선생님과 은찬이 둘 다 스트레스 받는 순간이었지만, 선생님께서 아이를 많이 다독여주고, 이야기를 많이 나눠주고, 은찬이의 창의력이나 기발한 그림이나 글짓기는 늘 엄마인 나에게 알려주어 아이를 칭찬하게 해 주셨다. 덕분에 아이는 사춘기를 앞두고 있지만, 큰 키를 큰 부담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도시지역의 학교에 다닐 때는 학부모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큰 호흡을 하고 전화를 받으셨단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전하는 학교생활, 발표자 선택, 다른 친구 칭찬, 친구와의 다툼 등 많은 것들이 선생님이 조심하고 안아야 할 숙제였다 하시며, 남해가 좋아 내려온 시골학교의 생활은 그 자체가 행복이고 웃음 소리나는 시간이었다며 웃으셨다. 하루는 아이들끼리 축구를 하다가 한 아이가 넘어지며 무릎에 피가 나고 생채기가 나 보건실에서 치료를 하고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하셨단다.
"어머니, 오늘 지성이가 축구를 하다가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가 나 보건실에서 치료를 했어요" 하니 아이엄마가
"그래예, 아~가 울어심미까?"
"아뇨, 울지는 않았어요."
"안 울었시모 됐습니다. 울모 아픈 기고, 안울모 괘안심미다."
전화를 끊고 나니 걱정했던 마음이 다 내려가며, 웃음이 나오더란다.

우리 딸 아들에게 "옛날엔 스승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던 시절이 있었어"라고 하면 "그럼 그림자를 뛰어 넘었냐"고, "엄마 아빠도 선생님이 찾아오면 계란을 선물 했냐"고, "검정고무신을 신고, 한복 입고 학교 다녔냐"고 묻는다. 얘들아, 너무 멀리 갔다.
선생님께 찬물 한잔도 마음 편하게 드리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스승의 날 하루만큼은 학생들 생각 안 하고 편히 쉬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스승에 대한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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