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마음은 그렇지 않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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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마음은 그렇지 않을걸?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5.21 10:03
  • 호수 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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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낮밤을 구분할 것 없이 알록달록한 연등이 꽃을 피운다. 큰 도로변 까만 전기줄이 어어진 곳을 따라가면 아담한 암자들이 있고 잿빛 옷자락들이 나부낀다 싶으면 어느새 부처님 오신 날이다.


 우리 남해에는 산 전체가 이름부터 전설을 품은 금산에 우리나라 3대 기도 도량 중 하나인 보리암이 있고, 국가지정 보물인 괘불탱이 있는 용문사와 산닥나무 자생지가 있는 화방사가 있다. 또 첫새벽에 울리는 불경과 목탁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선서화로 수행하는 스님이 계시는 망운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법흥사, 제석신중탱·지장시왕탱·아미타후불탱 등 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운대암 등 많은 전통사찰이 있다.
 
 나는 독실한 불교 신도도 아니면서 일 년에 한 번씩은 잊지 않고 절에 간다. 아주 어릴 땐 외할머니를 따라 망운사까지는 날다시피 걸어 다녔다. 할머니는 일주문에서부터 기도를 올리고, 남해읍 전경이 보이는 절 입구에서 동서남북으로 절을 올렸으며, 탑돌이는 물론 대웅전에서는 관절염 정도야 아무렇지 않다는 듯 불공을 드렸다. 그러곤 할머니는 잰걸음으로 공양간을 찾았다. 
 할머니는 방문객들에게 나눠 줄 밥을 해내느라 팥죽 같은 땀을 흘리는 공양보살에게 부탁해 절에서 밥을 짓고 난 후 생기는 누룽지를 받아 챙겼다. 비닐봉다리에 똘똘 말아 싼 누룽지를 우리 자매에게 잡혀주며,
 "이거는 너그매 갖다 조라."
 "할무이, 이거 내가 무몬 안 되능가?"하는 철없는 소리에
 "이기 너그매 치방헌다꼬 얻은 기라. 너그 묵을 누룽지는 너그매한테 해주라 쿠고 꼭 갖다 조라이."
 
 우리 엄마는 주무실 때 뽀드득 뽀드득 이를 간다. 외할머니는 절에서 나온 누룽지가 이갈이를 면해준다는 속설을 믿으며 엄마에게 30년이 넘도록 누룽지를 갖다 주셨다. 절 공양간에서 나온 누룽지는 엄마에겐 처방약인 셈이었지만, 이갈이는 계속되었다. 어릴 적, 쌀밥을 실컷 먹는 것이 포부였던 어린 딸의 배를 많이 굶주리게 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외할머니의 엄마에 대한 사랑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리 부부의 두 살 터울의 남매는 남해읍에 위치한 법흥사 부설 연꽃어린이집 출신이다. 공수 자세를 시작으로 다도 체험, 연등 만들기, 학교 들어가기 전 까막눈을 깨쳤다. 어린이집 텃밭에 상추씨앗을 뿌려 싹이 트고 오골오골 상춧잎이 퍼지는 광경이나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어 유기농으로 키워 아이들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과정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체험교육을 해 주셨다. 
 
 어린이집의 하이라이트는 석가탄신일 때 법흥사 대웅전에서 펼쳐지는 공연이었다. 한복을 깜찍하게 차려입은 아이들은 그해 유행하는 노래에 맞춰 율동을 했는데, 절을 찾은 방문객에게 최고의 공연을 선사했다. 내 아이들을 핑계로 절에서 제공하는 비빔밥도 먹고, 수박도 먹으며 거침없이 씨를 뱉어냈다. 아침 일찍, 급히 챙겨 나오느라 아침밥을 먹지 않았더니 더 꿀맛 같은 부처님 밥상이었다. 
 
 작년에도 부처님 오신 날은 거리두기로 절을 찾지 못했다. 올해도 거리두기와 방역수칙으로 풍경소리와 목탁소리, 불경 외는 소리는 가까이서 듣지 못할 것 같다. 부처님의 마음은 그렇지 않을 것인데, 코로나 참 오래 간다. 
 교회와 성당에서 걸어 둔 부처님오신날을 함께 경축하는 현수막 글귀에서 종교를 넘은 따뜻함을 받았다. 곧, 코로나 소멸 축하 현수막도 펄럭이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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