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을 해내지 못하면 여자 후배는 없다는 각오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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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을 해내지 못하면 여자 후배는 없다는 각오로 노력"
  • 하혜경 서울주재기자 기자
  • 승인 2021.06.04 10:29
  • 호수 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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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혜경 한국산업인력공단 능력평가이사

40년 공단 역사상 첫 여성임원 등극 … "퇴임 후 금포 이장해 보고 싶다"

 전체 공직자 중 여성공직자의 비율은 40%가 넘었지만 고위직에 오른 여성공직자의 비율은 채 10%도 되지 못한다. 그만큼 여성의 진급을 막는 `유리천장`이 있기 때문. 여성공직자라면 남들보다 더 부지런하고, 더 열정적이며, 더 헌신해야 유리천장을 뚫고 고위직에 오를 수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서울지역 김혜경 본부장이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뚫고 능력평가이사에 임명됐다. 1982년에 설립된 한국산업인력공단 39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두꺼웠던 유리천장을 뚫고 날아오른 김혜경 향우를 지난달 27일 휘경동 한국산업인력공단 서울본부에서 만났다. 
 
차별
 김 향우는 지금 역사를 쓰는 중이다. 지난해 공단에서는 최초의 여성 본부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최초의 여성임원이 된 것이다. 공단 내 여성 직원들의 롤모델이자 닮고 싶은 상사 1위다. 


 "85년 공채를 통해 공단에 입사하고 대전으로 첫 출근을 했는데 나를 본 상사의 첫 마디가 `집으로 가라`는 말이었어요. 여자는 못 받는다는 뜻이었겠지요. 그 때 제가 한창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라 두 시간동안 못 간다고 열변을 토했지요. 해병대 출신 상사였는데 결국 받아주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일이지만 당시 상황은 그랬지요"라고 회상한다. 김 향우가 들은 말 중 가장 충격적인 말은 한 남자 동료에게서 나왔다. "네가 우리 자리를 빼앗았다"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겸손
 요즘 가치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어쩌면 당연한 처우였다. "우리 공단이 자격시험을 시행하는 기관인데 여자 직원은 타자수밖에 없었어요. 시험 감독은 여자는 못한다며 업무에서 배제하는 걸 저도 하겠다고 고집했죠. 남자들보다 더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며 해냈더니 인정해 주더군요. 그때부터 저는 `아 내가 이 일을 해내지 못하면 내 후배는 없겠구나`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회사생활을 했어요."


 남들이 꺼리는 일이라고 마다할 수 없었다. 직원들과 소통을 위해 야근과 회식도 빠지지 않았다. 남성중심 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을 더 낮추고 겸손해져야 하고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걸 몸소 실천했다.
 
성장
 묵묵히 그 길을 걸어왔더니 세상은 변해 있었다. 현재 공단 내 여직원의 비율이 40%를 넘었다. "요즘은 후배들에게 농담을 합니다. `내가 없었으면 너희들도 없었을 거다`라고 말이죠. 전 정말 그 생각으로 36년 직장생활을 해왔습니다"


 실제로 공단 내 일 많고 어려운 자리는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하는 일을 자원해서 나설 정도였다. 


 묵묵히 산비탈의 돌을 캐냈더니 어느새 기름진 밭으로 바뀌고 그 밭주인이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처럼 세월이 지난 후 김 향우는 조직에서 인정받는 리더로 성장했다. 
 
리더
 능력평가이사에 임명된 김 향우는 산업현장의 수요에 적합한 능력평가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능력평가사업을 수행하는 업무를 총괄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핵심사업을 책임지게 된 것이다.


 "국가자격시험 사업은 크게 기술자격과 전문자격으로 분류하는데 기술자격은 기술사, 기사, 산업기사, 기능사 등 국가자격법에 의한 500여 직종의 자격이고, 전문자격은 세무사,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 등 37개 종목으로 개별법에 의한 자격입니다. 능력평가이사는 시험출제부터 자격 평가시험 운영까지 총괄하는 업무예요. 이사장과 함께 공단 운영을 결정하는 역할도 합니다."
 
미래

 능력평가이사의 임기는 2년. 추가로 1년이 연장될 수 있다. 김 향우의 남은 정년과 같다. 이제는 정년 후의 미래도 계획해야 한다. 김 향우가 꿈꾸는 미래는 무엇일까? 시원한 대답이 돌아왔다. "퇴직하면 우리 마을 이장을 한 번 해 보고 싶습니다.  퇴직하고 고향에 돌아가려고 준비도 하고 있고 동네 분들 만나면 돌아와서 이장 할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나만 편하게 살려고 고향으로 가는 건 아니고 우리 동네를 정말 살기 좋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동네로 만들고 싶거든요. 그러려면 동네 이장은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네요." 농반진반인 결심을 밝히는 김 향우의 얼굴엔 활짝 웃음이 번진다.


 고향 상주면 금포마을에는 어머니(박순순)와 큰오빠(김기택), 작은오빠(김현택)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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