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곳간에서 받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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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곳간에서 받은 선물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6.04 10:31
  • 호수 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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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아이들은 오늘도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모양이다. 학교 앞에 두 군데 있는 문구점을 고루 다니며 문구류보다 함께 판매하고 있는 불량식품에 더 관심이 있다. 30년도 더 넘은 내 학창시절에 유행하던 아폴로나 쫀디기를 아이들 손으로 전해 받고 보니 아폴로는 뚱뚱해졌고, 쫀디기는 부드러워졌다. 

 "이~야, 이기 요새도 나오나, 이 아폴로는 엄마 때보다 비만이네. 이거는 손바닥으로 살살 비벼서 입으로 쪽 빨아묵으몬 대롱이 깨끗해진다 아이가."
 "엄마가 학교 다닐 때도 이게 있었어요?"


 "하모, 친구들하고 누가 더 빨리, 더 깨끗하게 묵는지 내기도 하고 그랬다 아이가."
 사회 곳곳에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은 불량식품도 피해갈 수 없는 모양이다.
 
 저녁 설거지 후 빨래를 개던 엄마가 한 말씀 하신다.
 "뭐헌다꼬 저런 얄구진 걸 사 묵으꼬. 한 개를 사 묵어도 좀 옳은걸 사묵어여."
 "할머니, 우리 친구들 사이에는 이런 게 유행이에요."
 "유행이나 뭐이나 묵는 거는 좋은 걸 묵어야 돼."
 "할머니도 어릴 때 이런 불량식품 먹고 싶지 않았어요?"
 "할매 때는 밥도 개우 묵었는데, 무슨 꽈자가 있었네."
 이때 내가 한마디 거든다.


 "은찬아, 옛날에 할머니가 00제과 공장에서 일했거등. 그때 꽈자 좀 묵지 않았으까?"
 "우와, 할머니 나 같으면 거기에서 나오는 과자 하나씩 다 먹어봤을거 같은데요."
 "요새 맨키로 꽈자 종류가 많은 기 아이고 몇 가지 만드는데, 공장에 일하던 사람들이 촌에서 서울로 올라 왔응께 올매나 그런기 묵고 잡긋네. 그래도 그걸 넣고 입을 다싯다가는 모가지 돼서 집으로 가야 되어."


 "그럼 공장에서 쫓겨난 사람도 있었어요? 할머니는 먹고 싶은 거 어떻게 참았어요?"
 "할매도 그때는 스무살도 안됐응께 그렁기 묵고 싶제. 그 사람들은 참 머리도 나뿌더라. 뭐헌닷꼬 꽈자를 넣고 입을 딸삭거릿긋네. 할매는 꽈자는 안묵고 쪼꼬렛을 입에 딱 넣고 녹카서 묵응께 안 들킷제. 너그들도 오데를 가든 간에 눈치를 잘 살피고, 사람은 머리를 써야 된다."
 
 내가 어릴 땐 자연의 곳간에서 얻는 간식이 천지였다. 유치원 다닐 때는 사루비아 꽃에서 꿀을 빨아먹었다. 꿀벌들이 꽃에 날아드는 이유를 아주 간단하게 알아냈다. 유채로 어른들은 김치를 담그고, 아이들은 유채줄기에 껍질은 벗겨내고 줄기를 씹어 먹었다. 초록의 싱싱한 줄기는 아삭거리며 단물을 머금게 했다. 하얀 아카시아가 눈처럼 피면 가위바위보로 아카시아 이파리를 먼저 떨어내기 게임을 하고 아카시아 꽃에서 눈꼽만한 꽃꿀에서 눈깔사탕 만한 단맛을 보았다.


 모내기가 한창이면 산아래에나 저수지 위 둑방에서는 산딸기가 익어가는 시절이다. 우리 남매들은 우리집 논으로 가는 길에서 산딸기를 따 먹고, 저수지 위 둑방에서 보석처럼 달려 있는 산딸기를 발견하고 심마니처럼 따서 집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어른들은 "산딸기 있는데는 대맹이가 있응께 조심해라. 독사한테라도 물리몬 큰일난다"라고 걱정하셨지만, 어른들의 말씀은 귓등으로 듣고, 그때만 맛 볼 수 있는 산딸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저수지 둑방의 산딸기를 포기한 건 어른들의 걱정이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고스란히 햇살을 받으며 산딸기 나무 근처로 갔을 때 풀이 빠르게 흔들렸다. 한 무더기의 뱀이 또아리를 틀고, 한 마리의 뱀은 빠르게 저수지로 향하고 있었다. 뱀띠인 나는 모여있던 대맹이를 보고 시껍 먹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 쉬지도 않고 저수지를 달렸다. 
 
 어린모들이 중견모로 자라면 뽕나무의 오디가 빨강색에서 먹색으로 익어간다. 그럴 때면 또 우리들의 아지트는 바뀐다. 어릴 때 살던 동네의 옆집에 커다란 조선 뽕나무에서 뽕을 따 먹고, 어릴 적 놀이터였던 산모퉁이에 자라고 있던 뽕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다. 입술이 퍼래지도록 따먹어도 다음날 가도 먹색 오디는 주렁거리며 달려있는 화수분 나무였다. 
 
 결혼을 하고 난 이후의 일이다. 출장 가는 길에 고개를 넘는데, 길가에 오디를 달고 있는 큰 나무들이 보였다. 나는 노다지라도 발견한 마냥 주말에 남편에게 내가 발견한 오디 무더기들이 있는데 따러 가자고 했다. 나는 오디를 따올 통까지 챙겨서 차에서 가는 길에 오디주도 담고, 오디 엑기스도 담자며 꿈에 부푼 이야기를 했다. 내가 발견한 뽕나무가 있던 곳, 차를 타며 지나갈 때는 분명 뽕나무였으나, 내려서 걸어가 보니 오디같은 솔방울을 달고 있는 오리나무였다. 어린 시절의 추억의 간식여행을 하려던 나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만, 이야기를 꺼내놓고 웃을 수 있는 추억 하나는 생겼다. 
 
 아이들에겐 유채줄기나 찔레순, 산딸기, 오디처럼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간식 이야기를 자주 하면서도 오늘은 나도 함께 아이가 문구점에서 사온 아폴로의 작은 빨대를 손바닥으로 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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