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지기를 기르는 야영수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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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지기를 기르는 야영수련회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6.18 10:04
  • 호수 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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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달팽이처럼 천천히 생활하는 딸아이의 움직임이 모처럼 바쁘다. 남해초등학교에서 주관하는 학생야영 수련회 준비물을 챙기느라 가정통신문을 체크하며 짐을 늘어놓았다. 야영가는 것을 몰랐다면 이삿짐인 줄 착각할 뻔했다. 래시가드, 아쿠아슈즈, 우비, 큰 수건, 샤워용품 여러 가지, 여분 옷과 마스크, 썬크림, 물통, 수첩과 연필까지 챙기고 나니 가방은 군장처럼 커졌다. 


 "빠진 거 없는지 한 번 더 챙기라. 밥도 해 먹나?"
 "밥은 안 하고, 점심 도시락은 챙겨가야 해요."
 "야영인데 밥을 안 해 먹네. 엄마 때는 조를 짜서 친구들이랑 밥도 해 먹고, 학교 수련장에서 다 같이 하루 자고 왔는데 … …."
 "엄마 때하고는 다르죠. 지금 코로나 시대잖아요. 야영 가는 것 자체에 만족해요."
 
 내가 학교 다니던 1990년대 초반,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우리들은 야영체험을 떠났다. 집을 떠나 친구들과의 단체생활이었다. `호연지기`의 큰 뜻을 기조로 밥도 스스로 해 먹고, 눈을 가리고 산길을 걷고, 바다에 들어가 협동심을 기르는 활동을 하고 저녁에는 캠프파이어를 했다. 야영을 떠나기 전에는 학교에서 분임조를 나누고, 틈이 나는 대로 친구들과 모여 작전을 짰다. 먼저, 준비물 챙기기. 밥을 해 먹으려면 가스버너와 냄비, 쌀, 반찬이 필요하다. 저녁에 캠프파이어 할 때 공개할 장기자랑 준비도 해야 했다.
 
 요즘처럼 코펠 세트를 갖춰 놓고 사는 집이 별로 없을 때라 가스버너, 양은냄비, 국자 하나까지도 각자 분배를 해서 달그락거리는 가방을 메고 운동장에 모두 모였다. 교장선생님의 긴 훈시 말씀을 듣고, 버스를 타고 사촌해수욕장으로 갔다. 지금은 `보물섬캠핑장`이 된 삼남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조별로 교실을 배정받아 짐 정리를 하고, 운동장에서 안전교육을 받고 체조를 한 다음 해수욕장 옆 소나무숲으로 갔다. 소나무숲에는 선생님들께서 미리 나무와 나무 사이에 줄을 쳐 길을 만들어 놓았다. 천으로 눈을 가리고, 한 손은 친구의 손을 잡고, 한 손은 나무 사이에 쳐진 줄을 잡으며 한발 한발 나아가 천천히 도착지에 가는 것이었다. 막막한 어둠은 혼자 이겨내야 하는 시간이었고, 앞선 친구의 한 손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생명줄 같은 것이었다. 숲을 한 바퀴 돌고 도착지에서 눈을 가렸던 가림천을 풀어내고 나면 세상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뿌듯한 순간이었다. 걸어 나왔던 길을 돌아보면 넓은 면적은 아니었지만, 잠깐의 어둠에도 큰 두려움이 내 속에서 자꾸 자라났다. 앞을 보지 못하고 생활하는 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바다에서의 체험은 극기훈련이었다. 어깨동무한 친구들과 앉았다 일어섰다, 걷기도 어려운 백사장을 푹푹 빠지는 발로 달리기도 한 것 같다. 협동심을 기르는 해양활동이었지만 다른 팀에 뒤지지 않으려 애를 쓰는 승부욕이 부푸는 시간이기도 했다. 해양활동 후에는 분임조끼리 모여 밥을 해 먹는 시간이다. 가져온 쌀을 씻어 냄비에 안치고, 반찬도 만들었다. 한쪽에서는 카레를 만든다고 감자와 양파, 당근을 깍둑썰기를 하고, 카레 가루를 물에 풀었다. 나는 친구와 오이무침을 만들기로 했다. 오이 껍질을 벗겨내고, 오이를 동글동글 썰 때까지는 호흡이 잘 맞아 좋았지만, 양념할 순서에서 의견이 맞지 않았다.


 "저기 물 좀 줘봐라."
 "물은 뭐 할라고, 오이무침에는 물은 안 들어간다."
 "아인데, 우리 엄마가 한 거는 꼭 물이 있던데."
 "아이다. 오이무침은 시간이 지나몬 물이 나오는기제. 물 안 넣는다."
 "아인데, 우리 엄마가 한 오이무침은 물이 있는데."
 "니, 너그 엄마가 오이무침하는 거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나?"
 "우리 엄마가 한 거는 물이 있다니깐."
 엄마가 한 오이무침에 물이 있다고 우기기 시작하니 내가 이길 재간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오이에서 나온 물이 흥건하던 것을 엄마가 물부터 넣었다고 생각해서 물부터 붓고, 고춧가루 넣고, 소금으로 간한 것으로 우리는 그날 오이냉국을 먹었다. 주부가 된 친구도 오이무침 할 때마다 피식거리며 웃음이 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때 내가 오이무침 하는 걸 확실히 알려줬어야 하는데 …….
 
 딸아이는 야영에서 소방서의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 사용법을 배우고, 해변체험 활동을 하고, 바디보드 체험을 했다고 한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도미노 만드는 것과 소감문 발표 등 선생님께서 클래스팅에 올려준 사진으로 아이의 활동을 지켜봤다. 초등학교 교과목에 안전교육이 신설되었고, 3학년은 생존수영을 배운다. 올해 3학년인 학생들은 코로나로 인한 안전교육도 선생님의 이론교육으로 대체하는 것 같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친구들과의 단체생활을 통해 아이는 질서와 협동심을 길러 사회인으로 자라나는 데 추억과 큰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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