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태기의 전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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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태기의 전설(3)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6.18 10:08
  • 호수 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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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93
碧松 감충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나이 값 한다고들 맛 따라 다녀 봐도
골태기 국물만한 그 맛을 못 찾으니
봉천에 골태기 씨를 뿌릴 때가 되었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인가 그 이전인가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이 동네 놀이판에서 어른들이 마시는 우유빛 막걸리가 맛있어 보여 어른들 몰래 한 바가지 퍼와 친구들과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다가 나중에 모두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뒤에서야 이 상황을 눈치챈 어른들이 쌀뜨물을 만들어 먹이느라 동네 전체가 난리가 났던 일도 있었다. 그때 필자의 할머님께서 달려오셔서 발을 동동 구르시며 동네사람들을 부르시던 다급하신 목소리를 비몽사몽으로 듣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며 할머니가 그리워진다.


 그리고 같은 마을에 사시는 필자보다 다섯 살 위이신 고종사촌 형님을 따라 이 봉내에 오면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형님이 까만 약초 한 줌을 찧어서 나온 하얀 물을 바켓스의 물과 희석해서 바위 밑 이곳저곳에 뿌려놓으면 굵기가 손목만하고 길이가 바지게 작대기만한 뱀장어가 기어 나와 물 위를 아나콘다처럼 S자로 헤엄치게 되는데 형님은 잽싸게 대에 묶은 큰 낚시로 낚아 올리곤 했다. 잠시 동안 잡은 많은 뱀장어는 숯불에 구워서 먹곤 했는데 그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아니 맛보다도 굽는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는 통해 주변의 동네 사람들과 나누어 먹지 않을 수 없었다.


 60년대 초 누대의 가난을 면치 못하고 먹는 것마저 제대로 먹지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동네 사람들은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운동이 일어났을 때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봉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완공하게 되었는데 그 때의 봄날 축제는 봉천이 갈라놓은 하마정 들과 파천 들을 잇는 다리 개통식을 겸하여 출향인들을 초청하고 군수님도 참가하여 그 열기는 정말 대단하였다. 


 그 당시 필자의 아버님께서는 마을의 리장님을 하셨는데 그때 청년대표를 맡아 아버님을 도와 같이 일하신 선배 한 분의 연락을 얼마 전에 받았다.


 "동생, 이제 봉내가 많이 깨끗해졌으니 한 번 내려오시게. 어디 좀 돌아다니며 골태기 씨를 좀 구해보세나. 골태기가 살 수 있는 봉내를 복원하여 자네와 내가 앞장서서 우리 봉내의 전설을 이어보세나." 그 소리를 들은 필자는 갑자기 가슴이 울컥했다. 그 당시 고향의 읍 지역 노인회 회장직을 맡아 일하셨지만 2020년도에는 제21대 남해군노인회회장으로 당선되셨다. 
 
 ※ 보충 : 봉내의 멸종된 골태기를 다시 재현해보자는 고향 선배님의 생각은 필자의 생각과 같아 골태기의 씨를 구하기 위한 기초 작업의 정보를 얻기 위해 고태기로 검색해 보았으나 어디에도 나오지 않아 혹시 골태기로 찾으니 표준어는 `검정망둑어`였고 곱시리, 겟데기, 뚝지, 효자고기 등으로 불러지고 있었다. 아직도 오염되지 않은 하천은 찾아보면 분명 있을 터 봉내에 뿌릴 골태기씨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이 회장님께서 동네 분들과 삼동 어느 하천에서 골태기를 발견하셨다는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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