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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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운동화
  • 전병권 기자
  • 승인 2021.07.02 11:22
  • 호수 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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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 한 소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꽃이 채 피기도 전, 시들어버렸다. 


 6월 25일 오늘은 한 소녀와 이별하는 날이다. 책임을 통감하며 새벽에 쪽잠을 자고 일어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아침 7시 10분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암흑과 같다. 소녀를 태운 버스가 친구들과 뛰놀고 미소가 가득했던 학교로 출발한다. 10분을 달려 학교 정문에 들어섰다. 원래 계획은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화장터로 갈 예정이었지만, 현장에 도착하니 공부하고 생활했던 교실을 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나 보다. 밖에서 두 손을 모은 채 작별을 고하러 들어가는 유족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약 15분이 지나자 소녀의 사진을 끌어안은 어머니와 유족들이 뒤따라 나온다.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고, 내 눈물샘도 그 소리에 동의하는 듯싶었다. 그렇게 학교와 인사를 마치고 화장터로 향했다. 


 유족들은 화장과 발인의 마무리 절차를 새겨들으며 다소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무기력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불과 열이 가득할 공간에 작은 소녀를 보내자니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화장을 앞두고 사람이 부족해 나도 운구를 함께 했다.


 관을 든 내 시선은 `회색운동화`에 고정됐다. 운동화는 평소 소녀의 외모를 묘사할 때처럼 작은 크기였고, N사에서 제조한 것으로 소녀가 마지막에 신었던 것으로 보였다. 작은 발로 가는 걸음이 얼마나 무거울지, 얼마나 멀지, 얼마나 외롭고 무서울지.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라는 점이 재차 실감하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색운동화가 각막에서 흐려진다. 통곡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찰나였지만 관을 든 채 나는 혼자였다.


 유족들이 관을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며 인사를 나눈다. 소녀의 어린 동생들은 마냥 해맑아 보였다. 그 모습이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소녀는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곳으로 향했다. 우리는 그 장면을 밖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화장 절차를 마치고, 소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발걸음을 뒤로했다. 
 
소녀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지난달 23일 도시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사건이 발생했다. 아동학대로 인해 세상과 이별을 고한 한 소녀의 사연.


 남해군에서는 아동학대로 인해 사망한 사건은 처음이다. 학연, 혈연, 지연이 강한 남해군에서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남해라는 지역공동체도 다른 지역과 같이 무너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정적으로 이 문제는 우리의 무관심이 한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그런데 여느 사건 사고처럼, 이 사건에 대해서도 피해 당사자인 소녀를 비롯한 가족들 등 많은 추측과 유언비어가 사실인 것처럼 퍼지고 있다. 여러분의 가족, 친구라면 그렇게 쉽게 험담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또, 이 문제를 두고 누군가 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마녀사냥을 위해 몇몇 사람을 지목하는 것도 남아 있는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짓이다.


 물론 취약하고 사각지대에 놓인 예비 피해자들을 위해 개선할 점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기까지 "가족들은, 학교에서는, 이웃들은, 행정에서는 무엇을 했느냐?" 등 많은 분노가 표출되고 있는데, 이 사건의 본질은 앞으로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어떻게 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소녀에 대한 유족에 대한 예의이며 나아가 지역에도 필요한 일이다.


 소녀의 친구들과 담임선생님 등 같은 시간을 오래 보냈던 이들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심리상담 등 지원도 교육청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소녀는 자신의 생명을 잃으므로 우리 지역사회의 무관심을 알렸고,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촛불이 됐다.


 이 사건은 가정의 붕괴와 나와 너, 우리의 무관심, 행정의 안일한 태도가 나은 참사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제도와 법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학교, 군청, 교육청 등 행정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적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부터 제도와 법이라는 핑계 아래 피해 소녀와 같은 사례를 알면서도 묵과했는지는 스스로의 양심과 대화해 볼 문제다.


 소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숙제를 남기고 떠났다.


 아마도 소녀는 개인, 집단, 공동체, 지역 등 남아있는 우리들이 자신과 같거나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각성의 계기를 바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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