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낙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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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낙타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8.24 14:36
  • 호수 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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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김재명 前 남해군상공협의회장
김  재  명前 남해군상공협의회장
김 재 명
前 남해군상공협의회장

매년 한해를 결산하며 교수신문에서는 투표에 의하여 그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2020년에는 아시타비(我是他非)였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신조어다. 우리지역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국회에서 인용하여 장안의 화제로 회자되며 현재까지도 흔히 사용하고 있는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정도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브라질의 신비주의 작가 파울루 코엘류는 그의 저서 룙연금술사룚에서 수천리를 걷고도 지친내색을 않다가 어느 순간 무릎을 꺾고 숨을 놓아 버리는 낙타를 사람을 배신하는 대표하는 짐승으로 단언한다. 힘들어도 까탈 한번 부리지 않고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주인을 따라 충실하게 걷다가 결국 숨이 다하여 죽게 되는 낙타를 두고 고맙고 숭고하다는 칭찬 대신 `배신`의 아이콘으로 표현한 셈이다. 

힘이 들면 그래도 한번쯤은 그렇다고 내색이나 하지, 목표를 정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숨을 놓아버린 낙타로부터 받는 상실감에 절망하는 인간이 느끼는 비애를 `배신`이라고 단정한 것으로 이해된다.

보통의 우리네 삶은 가족같이 소중한 사람들에겐 낙타와 같은 맹목적 희생을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힘들다고 징징거리지도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는 인생의 여정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처절한 몸부림마저도 내색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세상을 살아간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낙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반적인 세상살이 속에선 이런 충직함을 경험해 본다는 것이 쉽지 않다. SNS가 발달한 요즘 세상은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내 주장을 언제 어디서든 적나라하게 펼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지 내 가족을 벗어나 한발 문밖을 나왔을 뿐인데 어떤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무엇엔가 홀린 양 진보냐 보수냐, 이편이냐 저편이냐, 내게 이익이냐 아니냐를 두고 치열하게 투쟁하며 막말을 쏟아내는 걸 주저하지 않는 걸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물론 자치정부시대에 주민참여를 통하여 최선의 방안을 제안하여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고자하는 취지에 대해선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해당 사안을 제안하여 실행에 반영토록 노력하는 과정은 절제된 절차에 따라야하며 의견이 진정성에 기인해야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나만의 이익을 계산한 집단의 정략적 접근으로 공공의 이익을 저해하는 소모적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이든 동전의 양면과 같이 상반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상당한 이해관계의 얽힘 속에서 최상의 시너지가 발생하도록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선택을 해야 한다.

특히 이런 현상은 선출직인 정치지도자가 공적인 일을 처리하는 경우에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군민의 삶을 보다 행복한 방향으로 만들어가겠다는 모종의 시도를 하는 것은 공직자가 행해야 할 직무의 근간이다. 그동안 우리는 지도자들이 직무수행의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을 경험했다. 사람이 모인 조직, 사람이 경영하는 시스템에서 시행착오는 불가피한 일이다. 때문에 시행착오가 문제가 아니라 시행착오에 대한 수습의 방책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더욱 중요한 일이다.

로마공화정의 국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수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러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는 자는 바보다." "잘못을 인지하고 시인한다는 것은 위대함을 갈망하는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기 때문에 잘못된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탁월한 지도자의 방점이다."

아쉽게도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지도자들이 시행착오를 발견하였을 때 과감하게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취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권위가 약화되고 신뢰의 손상이 생길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된 부분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최근 일련의 지역 내 현안들을 두고 군수가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며 대안을 모색 중이다. 이를 두고 굴복이니 아니니 하면서 특정화 시키는 것은 아시타비다. 각종의 시행사업과의 연관성, 시너지효과를 극대화 시키려는 고민 속에서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리고, 예상되는 상대적 비난까지도 감수하면서까지 권위를 내려놓고 부분적인 시행착오에 대한 인정과 양해를 구하는 모습에 대해선 그 진정성을 믿어주며 기다려주는 포용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큰 틀에서 우리는 남해라는 한 울타리 속의 가족들이다. 그 속에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서로 사랑해야할 소중한 사람들이다. 정당이나 이념, 학연이나 지연, 혈연 등으로 편을 가르기엔 아무런 이유가 성립되지 않는 영원한 `남해당`이기 때문이다. 견강부회(牽强附會)해서는 안 되고 배려하고 이해하며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군수도 취임하면서 천명했던 청렴을 바탕으로 한 공동번영의 길을 열어갈 것이라는 의지를 좌고우면하지 말고 묵묵히 실천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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