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지수 올리기
상태바
공감지수 올리기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8.24 14:46
  • 호수 7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연경의 남해일기

남의 일은 참 쉽게 풀리는 것 같고, 내 일은 대추나무에 걸린 연줄보다 더 꼬이는 것 같은 마음. 다른 사람들은 일을 척척 해내는데, 나는 가진 능력이 별로 없어서 코 앞에 닥친 일을 겨우겨우 해내는 것 같은 마음. 그래도 남의 말을 쉽게 하며 살았다. 다른 사람들이 처한 사정을 이해하는 것보다 내 불편 토로가 먼저였던 탓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자기애가 넘치는 아들을 낳고, 딸아이에게서 이해와 배려를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니 눈은 실핏줄이 터져 빨갛게 충혈되어 토끼눈이 되었다.
딸은 "엄마, 눈이 빨간데요. 많이 아프겠다. 왜 그렇게 된 거예요?"
딸은 걱정스러운 표정과 부드러운 말로 아프겠다며 나를 위로부터 해준다. 밤새 자고 나서 충혈된 터라 거울을 보지 않으면 나도 충혈된지 몰랐지만, 딸아이의 위로에 마음이 사뭇 좋아졌다.
아들은 "엄마 눈. 빨갛게 되어서 무서워. 피 난 거 같애. 누구한테 맞았어?"
고소한 표정을 숨길 수 없다는 듯이 신나서 목소리가 끝이 자꾸 올라간다. 엄마의 걱정보다는 빨간 눈을 한 엄마가 우스워서 난리가 났다.

나는 "눈이 있으몬 엄마 눈 봐라. 민찬이 니가 그리 엄마 말을 안듣고 엄마 속을 썩이니 이제 눈까지 벌개져서 아푸다. 앞으로 말 잘들으끼제?"
딸이 거든다. "그래, 민찬아. 엄마 말 좀 잘들어. 엄마가 회사 가고, 요리해주고 얼마나 힘들겠어."
아들은 "으이그. 엄마. 나를 혼내면 엄마 눈이 낫나?"

여름방학이 된 지 한참이 지났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면서 외부식당을 이용하지 않고 아침마다 아이들의 점심을 준비해두면 은찬이가 동생 것까지 데워서 점심을 집에서 먹기로 했다. 딸은 김치볶음밥을 좋아하고, 아들은 맑은 채소볶음밥을 좋아한다.
딸은 "엄마, 김치볶음밥 해 놓으면 점심때 먹을게요."
아들은 "안돼. 그냥 볶음밥에 누나가 김치랑 먹으면 그게 김치볶음밥이지. 난 김볶 싫어."
딸 "너는 그게 같다고 생각하냐? 엄마가 두 가지를 하려면 바쁘니깐 그냥 볶음밥으로 하세요."
난 엄마가 돼 가지고 2가지 다 해줄 수 있다는 말은 못하고, 채소만 다졌네. 한 번도 딸의 입맛을 우선 맞춰 준 적이 없는 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아이 세넷은 기본이던 팔 구십년대, 그 많던 아이들의 방학을 거뜬히 이겨내신 부모님들 정말 존경에 존경을 더합니다. 울 엄마는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엔 고두밥 찌고, 말리고, 보리, 콩, 깨 갈아서 미숫가루 한포대부터 만들어 놓으셨다. 미숫가루에 설탕을 넣고 살살 녹여서 얼음을 동동 띄우면 더위도 달래고, 급한대로 `깔딱 요기`도 되었다. 먹을 간식거리가 없을 때는 `모린 가리`에 설탕을 넣고 흔들어서 가루를 퍼 먹다가 콜록콜록 `살코`를 만나기도 했다.

동네에 그 흔한 구판장 하나 없던 시절, 쭈쭈바 먹지 않아도 더위를 식히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동네와 동네를 잇는 냇고랑에서 배가 고르도록 수영을 하고, 젖은 옷은 널따란 비렁 위에 말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엔 허기를 참지 못하고 밭에서 한여름 햇살에 축 늘어진 가시오이를 따 먹었다. 올해 여름은 에어컨에, 선풍기에, 서큘레이터에, 그것도 모자라 한걸음 옮길 때마다 손선풍기에 부채질까지 하면서도 더위가 쉬이 식지 않았다. 죽같은 땀을 흘리면서도 물놀이가 신나고 방학이 길어서 기다려지던 여름이었다.

가을이 접어드는 `입추`가 지났다. 작열하던 태양도, 숨쉬기조차 곤란하던 기온도 누그러뜨리고 아침 저녁 산들바람이 정말 상쾌하다. 파릇파릇하던 남해의 들녘은 어느새 벼꽃은 다 지고 황금물결을 수놓기 위해 준비중이다. 알곡이 여문 벼들이 늦여름 바람에 사그락 사그락 흔들리며 내는 풍년 소식을 농부님과 함께 나도 기다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