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대 탁구선수(해양초 16회 졸업생), 도쿄패럴림픽서 한국에 첫 금메달 안기다
상태바
주영대 탁구선수(해양초 16회 졸업생), 도쿄패럴림픽서 한국에 첫 금메달 안기다
  • 전병권 기자
  • 승인 2021.09.03 11:05
  • 호수 76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랑스러운 남해인 2020 제16회 도쿄 패럴림픽 대한민국 첫 금메달 획득
2000년 시드니패럴림픽 이후 21년 만에 탁구단식 금메달 기록
2016년 리우패럴림픽서 단식·단체전 은메달 이후 정상에 올라
주영대 선수가 2020 제16회 도쿄패럴림픽에서 남자 탁구 단식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지난달 30일 도쿄 메트로폴리탄 체육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3개의 태극기가 게양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주영대 선수. 〈사진출처: 2020 도쿄패럴림픽 사진공동취재단〉
주영대 선수가 2020 제16회 도쿄패럴림픽에서 남자 탁구 단식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지난달 30일 도쿄 메트로폴리탄 체육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3개의 태극기가 게양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주영대 선수. 〈사진출처: 2020 도쿄패럴림픽 사진공동취재단〉

 애국가와 함께 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런데 올림픽 시상식에서 태극기를 한 번에 1개도 아니고 3개나 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 중심에는 주영대(49·해양초등학교 16회 졸업생, 경남장애인체육회) 탁구선수가 있었다. 주영대 선수가 2020 제16회 도쿄 패럴림픽에서 대한민국에 첫 금메달을 선사하며 군민들의,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주 선수는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 메트로폴리탄 체육관에서 열린 2020 제16회 도쿄패럴림픽 남자 탁구 단식(TT1, 스포츠 1등급) 결승전에서 태극마크를 함께 단 세계랭킹 5위 김현욱(27·울산장애인체육회) 선수를 세트점수 3대 1(11대8, 13대11, 2대11, 12대10)로 꺾고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주 선수의 금메달은 2000년 시드니패럴림픽 이후 21년 만의 개인 단식 금메달이기 때문에 그동안 한국의 금메달 갈증을 한방에 해소시켰다.
 또한 주 선수 개인적으로도 이번 금메달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주 선수는 2016년 제15회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서 탁구 남자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 은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이다.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 이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주 선수는 "장애란 느리고 불편할 뿐"이라며 "장애인들이 세상밖으로 나와야 한다. 도쿄패럴림픽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고 싶다"는 목표와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세계랭킹 1위를 지키며 금메달을 향한 그의 노력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뿐만 아니라 주 선수의 금메달 소식과 함께 대한민국 장애인 탁구 대표팀이 남자 단식 경기에서 금·은·동메달을 석권하는 새로운 역사를 기록했다. 패럴림픽 탁구의 한 등급에서 1~3위가 동시에 이름을 올린 적은 처음이다.
 주 선수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때 못 이룬 금메달을 이번 대회에서 성취할 수 있어 기쁘다. 태극기 세 개가 올라가는 걸 보고 애국가를 따라 부르니 울컥하더라"고 소감을 전했다.
 주 선수와 오랜 인연을 맺고 탁구를 함께 쳐온 주남식 척수장애인협회 남해군지회장은 "주영대 선수는 승부욕이 강하고 연습게임도 실전처럼 하고 정신력이 대단하다"며 "특히, 서브를 굉장히 기가 막히게 넣는다. 네트 앞에 넣는 서브가 강점이다. 이는 굉장히 어려운 반면에 실수할 확률이 높은데 절묘하게 잘 해낸다"고 말했다.
 이어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서 은메달이라는 대단한 성과를 냈지만, 늘 금메달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면서 "이번에 꼭 금메달을 딸 줄 알았다"고 말하며 축하를 보냈다.
 
주 선수가 기억하는 남해
 주 선수는 사천시가 고향이지만,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남해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남해제일고등학교로 전근을 오면서 주 선수도 해양초등학교를 다니게 됐다. 주 선수는 "해양초에서 축구부 생활을 하고 테니스도 즐겼다"며 "잠깐이지만 남해중학교에 입학해서는 당산에서 놀던 기억, 회나무 아래에서는 구슬치기를 하고, 마산마을 고구마공장 앞 물가에서 수영하던 추억들이 가득한 곳"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사고가 있기 전 운동신경도 남다르고 체육을 워낙 좋아했기에 체육교사를 꿈꿔왔던 주 선수. 그렇게 경상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하고, 1993년 대학교 2학년 당시 사천 서포 할아버지 댁으로 가는 길에 대형덤프트럭을 피하려다가 교통사고로 장애인으로서 제2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사고 후 4년 가까이 집 밖에 나오기 힘들 만큼 큰 시련에 빠졌던 그는 PC통신을 통해 `동병상련` 장애인들과 아픔을 나누며 서서히 몸도 마음도 회복해갔다. 이후 컴퓨터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다시 스포츠와 연을 맺게 됐다.
 2008년 복지관에서 재활 운동으로 탁구를 시작했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태극마크를 달았고, 경남장애인탁구협회 사무국장 등 장애인 스포츠 행정가 활동도 시작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