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고시 도전 안 해본 사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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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고시 도전 안 해본 사람 있나요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9.03 16:00
  • 호수 7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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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밤을 지새우고 할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하다. 이를테면, 남자들의 군대생활 이야기, 축구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여자들의 시집살이, 아이를 낳은 이야기에 이어 운전면허 취득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 이야기 소재로 충분하다.

내가 자랄 땐 꼬불거리는 길을 덜컹거리는 완행버스를 타고 친구들과 여행도 떠나고, 걷기엔 제법 먼 길은 택시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치르고 나면 운전면허를 먼저 취득하고 사회생활을 할 정도로 운전은 필수요소가 되었지만, 96학번인 나는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스무살이 넘도록 국가고시에 도전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개인 차량을 타고 다니는 직원들이 많지 않았지만, 마이카 시대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나보다 먼저 취직을 한 언니가 한 회사에 근무하던 내 친구랑 자동차 운전학원에 등록했다. 학원에서 강사의 설명을 들으며 코스연습을 하고 오면 그날 저녁은 언니가 강의를 복기하듯 나에게 재강의 했다.
"오늘은 S자 코스를 했는데, 이기 참 쉬운 기 아니라. 핸들을 살살 돌림시로 도로 선을 밟지 않고 통과를 해야 되거등."
"그래서. 그리 잘 통과했나."
"하모, 해보니깐 내가 운동신경이 좀 있는 거 같더라고."
"잘 허네. 운전면허도 곧 따긋네."
"니도 우리랑 같이 하제, 혼자 가서 배우는 거 보다 우리랑 같이 하몬 좋을 낀데."
"내는 일딴 일 좀 배우고, 뒤에 허께. 나중에 너그가 운전면허 따몬 내를 좀 갤차주모 되긋네."
나는 그때 사무실을 옮기게 되어 사무실 분위기도 적응해야 했고,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져야 했으며, 무엇보다 업무를 익히는 데 제일 먼저 신경 써야 했다.
하루는 운전학원에 다녀 온 언니가 전처럼 강의복기를 하지 않았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도 피곤하다며 저녁밥도 먹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냐 싶었던 내 궁금증은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고 풀렸다.
"오늘 학원 잘 댕기왔나? 우리언니는 피곤헌가 밥도 안 묵고 자는데."
"언니가 말 안하더나. 오늘 학원에서 있었던 일."
"다른 때는 지가 카레이서나 된 것처럼 귀에 딱지 앉도록 말을 해삿더마는 오늘은 말이 없네. 믄일 있었나?"
"오늘 언니가 차 운전해서 화단에 올라가삣다 아이가. 화단에 올라간 거 까지는 괜찮았는데, 화단에 서 있던 도로표지판을 박아삣다 아이가."
"아 진짜가. 우리언니가 재주가 참 좋네. 넘들 안하는 것도 허고, 그래도 안 다쳤으니 천만다행이다."
언니는 그렇게 크고 작은 사고를 내면서도 중도포기하지 않고 운전면허증을 손에 넣고는 어찌나 나를 `무면허`라고 놀리는지.

나도 스물 다섯 살에 운전학원에 등록했다. 6시가 지나면 남흥여객 차부 앞으로 학원차가 와서 학원생들을 실어 날랐다. 겁도 없이 1종보통에 도전했다. 필기시험과 코스시험은 한 번에 통과했다. 차만 있으면 서울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 자신감이 서서히 빠진 건 도로주행시험에 였다. 1종보통이라 `클러치`란 부속품에 익숙지 못했다.

차가 드문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강사가 핀잔주듯 한마디를 던진다.
"계속 그렇게만 달릴끼라? 지금 오토 운전 합니까?"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않는 내 손과 발을 탓하며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이 차는 오토가 아이낀데요. 계속 오토 맨키로 운전을 하네요."
나는 성난 얼굴을 숨기지 않으며 갓길에 차를 세웠다.
"강사님, 제가 모르니깐 옆에서 가르쳐 주셔야지, 그렇게 사람 심장 상하는 소리만 하면 제가 운전이 늘겠습니까."
강사와 1차전을 했지만, 2차전까지는 가지 않고 나도 운전면허를 손에 넣었다.

남편에게 운전을 배우다 이혼위기까지 간 부부가 있는가 하면, 어느 장모님은 사위에게 운전을 배우게 되었는데, 한 바퀴를 돌고 나서 사위가 급히 내리더니 다섯 개피의 줄담배를 피우더라는 이야기.

나도 복잡한 길을 잘 운전하고 있었는데 맞은편에 차가 오니 놀라서 길옆에 주차해둔 차의 뒷꽁무니를 그대로 박고 말았다. 놀란 심장은 뛰고 남동생에게 전화하니 한달음에 달려와서 사고 뒷수습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 머리로 어떻게 취직을 했냐는 둥, 어떻게 운동신경이 그리 없냐는 둥, 운전미숙아 발언은 내 심장을 후벼 팠다. 지하에 닿을 듯 내려간 내 자존감을 회복시켜 준 사람은 우리 엄마였다.
"이 빌어묵을 자슥이 누나한테 머라삿네. 니는 처음부터 잘했나. 초보 때는 다 그리험시로 배우는기제. 사람이 다친 것도 아이고 그거는 암껏도 아이라. 내일부터 일찍 일어나서 차 안댕기는 선소 바닷가로 한 번씩 운전연습을 해라. 이리가꼬 몬허몬 평생 운전 몬 허고 산다."
운전면허가 없어서 못하는 사람과 운전면허가 있어도 안하는 사람은 다르다. 나의 절친은 운전면허를 따고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 운전학원 강사를 횟집으로 모시고 가 생선회 특선을 대접했다고 한다.

운전면허는 사회구성원으로서 필수불가결한 소재가 되었다. 요즘에는 주차장 면수보다 차량이 더 많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자동차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남해의 많은 군민들에게 운전면허증을 안겨주었던 자동차운전학원은 추억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현대시대에 맞는 고카트 체험장과 카라반 캠핑장으로 변신했다. 켜켜이 쌓은 쑥설기 같은 가천 다랭이마을, 서포 김만중의 마지막 유배지인 노도, 앵무새의 울음을 닮았다는 앵강만을 품고 있다. 운전코스 길을 따라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1종보통 연습하듯이 고카트를 쌩쌩거리며 운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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