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참말로 좋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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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참말로 좋았제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9.10 11:05
  • 호수 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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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아이의 생활 루틴은 그야말로 시계처럼 정확하다. 아직 어린 초등학생이지만 자명종이나 어른들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일어나 학교 갈 채비를 한다. 하교시간이 되기 무섭게 가정통신문이나 선생님께서 챙겨 오라셨던 준비물들을 미리 전화로 알려준다. 아이에게 늘 엄마가 퇴근하면 말해도 될 것을 꼭 바쁜 시간에 전화를 하냐고 핀잔을 주지만, 아마도 알려주어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까마귀엄마인 내가 아이의 집요함을 키우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땐 나도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오기 무섭게 엄마부터 찾았다. 학교에서 가져오라던 성금이나 예방접종비, 준비물은 미리 말을 해야 혼나지 않았다.


 "엄마, 오늘 예방접종비 갖고 가야 되는데."


 "그렁거는 미리 말을 해야 엄마가 조합에 댕기오제. 오데 돈을 쌓아놓고 사나, 엄마는 오데 돈을 낳는 줄 아나."
 돈이 되었건, 준비물이 되었건 미리 말을 해 놓아야 엄마도 바쁘지 않게 준비를 했다. 학교 가는 아침마다 줄줄이 사탕처럼 우리는 도시락가방을 챙기고, 준비물을 확인하느라 북새통을 이루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제때 해야 하는 구강검진이나 예방접종을 시기를 놓쳐 할 때도 있고, 방과후 수업 신청 시기를 놓칠 때도 있었다.


 "호부 둘이 가꼬 그리 정신이 없나. 내는 너그들 네이를 키움시로도 제때 딱딱 맞차서 했제."
 "우리가 엄마손이 필요할 때는 엄마가 일을 안 다녔응께 육아에만 집중이 되지만, 내는 지금 신경을 문어발식으로 뻗치고 있응께 내정신이 아인기라. 엄마는 진짜 대단해여. 우찌 네명을 키웠지?"


 "없는 살림에라도 너그들 밥 묵는 입이 그리 좋고, 아침마다 도시락싸고 바빠도 내가 젊은시절이라 그때가 참말로 좋았제."


 이야기가 길어지면 엄마의 핀잔 아닌 핀잔을 듣고, 순박한 울엄마를 결국엔 `꼰대`로 만들어버리는 결론이 나기에 퍼떡 엄마에게 `엄지척`을 날린다. 


 나의 어린아이들은 학교에서 영양이 균형 잡힌 급식을 먹고, 학습에 필요한 준비물은 한 학기 분량을 미리 개인 사물함에 보관해 놓고 있어 엄마의 손이 덜 간다. 일단 아이들이 학교 교문안으로 들어서면 나는 학부형은 잠시 잊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변신한다. 
 
 오늘은 음치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들이 뜬금없이 수준에 맞지 않는 `학교종` 노래를 부른다.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나는 아들의 노래에 답례를 하느라
 "학교종이 찌그라졌다. 엿 바꿔묵자"라고 했더니, "엿 바꿔 먹는게 뭐예요?"라고 한다.


 그때 그 시절, 고물들이 실린 무거운 리어카를 고물상 아저씨는 가볍게 끌고 쨍그랑 쨍그랑 가위질을 하며 동네의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엿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찌그러진 냄비, 깡통이나 고철 동가리를 들고나가 엿이나 빨래비누로 바꿔왔다. 하얀색 밀가루가 칠해진 엿가락은 우리들의 궁금한 입을 달콤하고 즐겁게 해주는 입노리개였다. 니들이 엿을 알어?
 
 혼인율과 출산율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거나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 또는 `딸 아들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던 산아제한 표어들이 사라진 지 오래다. 방 하나에 언니와 내가 함께 지내고, 남동생 둘이 함께 복닥복닥 동기간에 살을 부비며 생활하다보니 혼자만 쓸 수 있는 내방을 가지는 일이 희망사항이기도 했다. 지역의 인구는 국가예산을 교부받는 기본 자료로 활용되기도 해서 한때는 고향으로 주소 옮기기가 캠페인처럼 번지기도 했다. 신생아의 탄생이 없는 한, 주소 이동은 우리나라 전체로 봤을 때는 `봉사 지 닭 잡아 묵기`에 불과하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긴 섬마을이 늘어나고, 학생 수가 모자라 폐교되었거나, 폐교위기에 놓인 학교가 증가하는 현실이다. 남해군의 작은 시골마을인 고현면에서 `작은학교 살리기 프로젝트`로 100명이 넘는 귀촌인구가 남해로 전입했다는 뉴스보도를 봤다. 참 반가운 일이다. 새 보금자리에서 아이들의 울음과 웃음소리, 글 읽는 소리가 담장을 넘어 웃음꽃이 활짝 피고, 얼굴마다 빛나는 화전(華田)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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