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로리 제작 설치 전문업 40년 산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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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로리 제작 설치 전문업 40년 산 증인
  • 하혜경 서울주재기자 기자
  • 승인 2021.10.01 10:25
  • 호수 7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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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정익훈 원천특장 대표이사
최근 공장 확장 이전한 후 사업 확장 추진

 고속도로가 우리 국토의 혈관이라면 그 혈관 속 적혈구는 사업체마다 필요한 물품을 배달할 수 있도록 개조된 특수장비차량들이 아닐까? 산업용 화학물품을 담아 옮기는 탱크로리, 냉동시설을 갖춘 냉동차량, 소방차량 등은 출고된 자동차에 전문업체가 특수 장비를 제작·설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탱크로리 특장차 전문업체인 원천특장이 바로 그런 곳이다. 원천특장을 운영 중인 정익훈(74·서면 정포) 향우는 이 분야 산 증인이다. 1974년부터 특장차 제조업체에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해 1983년 직접 회사를 설립·운영하며, 4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장을 지휘하며 엔지니어로 활동 중이다. 원천특장 정익훈 회장을 만나 그가 살아온 이야기와 고향 이야기를 들었다.
 

특수화학물질 운반 탱크로리 제작 설치
 1974년 상경한 정익훈 회장은 친척의 소개로 특장차 제조업체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기술을 배워 1983년 직접 회사를 설립했다. 그 시절 제조업체에는 안전설비가 거의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그는 두 손가락을 잃었다.


 "장갑을 낀 오른손 중지와 약지가 기계에 빨려 들어가서 살점이 모두 벗겨져 버렸다. 하얀 뼈만 남았는데 살릴 수가 없어서 절단했다. 당시 프레스를 다루던 사람들 가운데 손가락이 성한 이가 거의 없었다. 지금은 프레스 안전장치가 있어 손이 들어가면 자동으로 멈추지만 당시에는 까딱 잘못하면 손가락이 날아가기 일쑤였다."


 화학약품을 옮기는 탱크로리 제작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약품을 옮기는 과정에서 독한 화학약품이 얼굴에 튀어 피부가 상하는 경우도 흔했다.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정 회장은 묵묵히 이 일을 지켜왔다. 원천특장만의 기술과 노하우를 쌓고 고객들에게는 신뢰로 사업을 다져나갔다.
 
 

화성시 송산면으로 공장 증축 이전
 사업초기 아내(박순지·고현 탑동 출신)는 회계관리를 맡아 사업 확장을 도왔고 지금은 아들과 딸이 회사에서 가업을 잇고 있다. 경기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아들 동우 씨는 공장장을 맡아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고, 장녀 혜숙 씨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맡아서 운영하겠지요. 경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특장차업체는 기복이 심하지 않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탱크로리 제조 기술과 노하우가 있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정 향우.


 최근 화성시 송산면 1600여평 부지에 공장과 사무동을 지어 이전했다. "공장 신축까지 3년 정도 걸렸다. 내년 봄 공사가 마무리되면 정식으로 개업식을 진행할 계획이다. 그때가 되면 코로나도 좀 잠잠해지고 얼굴 볼 수 있길 바란다"
 
고향일 솔선수범
존경하고 따르는 후배 많아

 한 분야에서 묵묵히 사업을 키워 온 정익훈 향우는 고향일에도 말없이 봉사하는 향우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현재는 재경남해군향우회 부회장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서면향우회장, 재경남해군향우산악회장 강서구남해향우회장, 재경정포마을향우회장, 재경중현초동문회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산악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에는 매 산행마다 아내와 함께 참가해 향우들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성실함으로 사업체를 일구고 넉넉한 마음으로 고향 향우회를 지원하는 정익훈 회장. 내년 꽃 피는 봄날이 오면 넓은 새공장 앞마당에서 고향 사람들과 축하를 나눌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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