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추억(追憶)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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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추억(追憶) 하나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10.01 10:27
  • 호수 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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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세이 | 김종도 수필가
김종도수필가
김 종 도
수필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추억(recollection)`이라면 오래된 것과 어제의 것이 다를 바 없겠지만 `삼남국민학교` 근무시절의 이야기는 다르다. 아마 60여 년 전의 일이었기 때문일까?


 실업계고등학교인 남해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민학교 준교사 자격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약 3개월의 교원자격 교육을 진주사범학교에서 이수하고 또 다시 남해국민학교에서 교생(敎生 : 교육실습생)실습을 한 후, 1957년에 `국민학교 준교사` 자격증을 받아 1958년 삼남국민학교에 부임하였다.


 진짜 교육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당시 글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1학년 3반을 담임하였다. 고참 선배교사들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관찰하고 눈치 하나로 하루 하루를 보내면서 학부형들의 사랑 속에서 `애기선생`으로서 책무를 다하였다. 사실 열심히 가르쳤다. 그러나 너무 몰랐다. 때로는 고참 교사들의 충고가 너무나 괴로워 일기를 쓰면서 이것이 내 운명이고, 너무나 가난했던 우리 가족의 역사를 바꿔놓는 계기였기에 그때마다 더 강해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월급은 한 푼도 쓰지 않고 100% 부모님께 갖다 드리는 것이 효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살아왔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것 또한 당시의 생활상을 어떻게 해 왔는지 기억이 희미하고 잘 몰랐는데 둘째 사위(조현종-고등학교장 퇴임, 현 한국국학진흥원 근대기록문화 조사원)의 1976년 이전의 자료수집 차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나의 옛날 서가(書架^書庫)를 찾아 열람 및 분류작업에서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내왔던 과거의 자료들이 하나 둘 발견되면서 햇빛을 보게 되었다. 


 1957년도의 `교생실습일지`나 `준교사 교원자격증` 양식 그리고 1958년도의 첫 담임 때 쓴 `학생생활기록부 보조부` 등 개인자료와 당시의 학생지도에 관한 `공부자료(公簿資料) 서식` 등이 나왔다. 현재 나이 일흔이 훨씬 넘었을 당시의 학생 이름을 혼자 불러보면서 기억도, 당시의 생활기록물 속에서 찾았을 뿐이다. 서로를 몰라보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만나보면 좋지 않을까 나 혼자 생각해 본다. 


 특히 생각이 많이 나는 것은 등사판 철판과 원지(原紙 : stencil paper)에 철필로 밤새워 쓰고(긁고) 100매도 채 등사하지 못한 아쉬움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발간의 보람을 혼자 느낀 63년 전의 그 날을 되살리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 처음이라고 생각하는(?) 학교신문 「구름방」(창간호를 찾지 못함)과 제대 후 재발견된 「삼남어린이신문」 27호가 있어 그 당시 게재된 교사나 학생의 작품을 읽어 보면서 또다시 묘한 감정에 젖어 본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당시 선배 선생님들의 생각과 삼남 출신의 너무나 훌륭한 인사들의 후속 소식에 이 학교에 근무하였다는 교사의 보람과 긍지를 가지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추억을 더듬어 보았다. 


 이젠 학교명도 없어지고, 그 많은 자료들이 남명초등학교의 어느 한 곳에서 잠이 들어,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현실 속에서 그 당시와 오늘날의 모교를 생각하고 한번쯤 되돌아보는 순간과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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