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산 꿀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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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산 꿀고구마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10.15 11:22
  • 호수 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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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고매 삶아서 묵어보니 억수로 맛있더라. 가져가서 애들 튀김해줘라."
 "엄마, 고구마를 어디서? 시장에서 사려니 비싸던데."
 "내 지나가는데 연갱이 엄마 아입니까? 하면서 주더라."
 "진짜? 누가 엄마를 아는 척했지? 어떻게 생겼던데?"
 "요새 경기도 애러븐데 누가 너그매를 주끼고, 시장에 가서 샀다. 굵은 것만 골라 놨응께 어여 와서 갖고 가여."
 엄마의 농담을 한 두 번 속는 척 해주다가 이제는 엄마의 농담을 진담으로 듣는 순박한 사람이 나다. 
 
 "고오매 이거는 델래삘기 하나도 없어여. 새순이 나몬 꺾어다가 데쳐서 무쳐 묵으몬 입맛이 돌제."
 "엄마, 나는 아파도 입맛이 떨어진 적이 없어가 제발 그 입맛 도는 거 엄마가 안해 줬으면 싶더라고."
 "한여름에 고매줄기를 따다가 소금물에 절이가꼬 껍질 뱃기서 젓국이랑 참기름만 넣고, 새우랑 마늘만 쪼사 넣어서 따글따글 볶아도 그기 또 한맛 있는기라."
 "엄마, 고구마줄기 벗기다가 손톱이 시커매져 가꼬 내 학교가서 친구들이 손톱에 때 끼었다고 놀리는 바람에 내 진짜 심정 상했거등."
 "니는 그러모 매니큐어 볼랐다쿠모 되제. 고매 캐다가 아랫목에 딱 덮어놓고 간식으로 묵고, 모린 고매줄기는 걷어다가 소 믹있다 아이가."
 "엄마, 그리가 딸이 소가 되삣다 아인가."
 엄마와 나는 특별한 주제 없이도 만담꾼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웃음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를 잘했다. 
 
 내가 살던 동네는 밭보다는 논이 많아 고구마농사를 짓던 고모가 사는 동네로 건너가 체험 겸 일손을 보탰다. 밭작물의 대표로 꼽히던 고구마는 황토밭에 심고, 서리가 내리기 전에 캐냈다. 큰줄기 하나를 들어올리면 땅속에 있던 고구마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노다지라도 본 양 풍성한 결실을 맺는 고구마 캐기였다. 크기는 제각각 달라서 깊이 뿌리를 묻고 있는 것들은 호미로 흙을 골라내고 살살 달래가며 캐냈다. 고구마에 살짝 상처라도 나면 흰 액체가 곧 흘러나와 오래 보관하지 못하고 썩는 바람에 신생아 다루듯이 했다. 어른들은 캐내고 아이들은 고구마 빼떼기를 만드는 굵은 것과 삶아먹는 중간 것, 생으로 껍질만 벗기고 먹는 작은 것으로 분류작업을 했다. 
 
 밭의 흙은 습기를 많이 머금지 않아 손으로 흙을 뜨면 솔솔솔 가루가 떨어졌다. 밭고랑을 맨발로 다녀도 농약걱정, 벌레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자연놀이터였다. 큰고구마만 골라내어 볕이 좋은 날엔 고구마 빼떼기를 만들었다. 나일론천막을 넓게 펼쳐놓고 굵게 썬 고구마를 말리면 땅에서 올라오는 열과 햇볕을 고루 받아 딱딱한 고구마빼떼기가 됐다. 
 
 지인의 말을 빌려 쓰자면 `고구마 빼떼기를 만들던 날이 가장 고되었다. 넓은 밭에 고구마를 캐내고, 고구마줄기를 걷어내고, 고구마 빼떼기를 만들었지. 똑같이 반복되던 작업이 지루하고, 얼마나 해야 이 일이 끝날까 싶어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던 때였다. 그때는 시계를 차던 때가 아니라 높은 밭에서 시간버스가 지나가면 아, 두신갑다. 그렇게 신작로에 먼지를 폴폴 날리며 남흥여객 버스가 지나갈 때 그리 반갑더라. 다음 버스 한번이 더 지나가면 알맞게 해도 넘어가고 우리밭의 작업도 끝나 집으로 갔지. 고구마빼떼기 만드는 일에 질려서 절대 고구마는 먹지 않을거라고 다짐을 하던 시절이었지. 그런데, 남해를 떠나 살면서 고향의 황토밭에서 나는 꿀고구마보다 맛있는 것을 먹어보지 못했노라. 한겨울밤에 물에 불린 빼떼기와 강낭콩을 넣고 달다구리하게 끓여 먹던 빼떼기죽은 잊지 못할 소울푸드였다`는 고백이 추억을 되살아나게 했다.
 
 우리는 늘 고향의 맛을 잊지 못하고 산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면 언제나 우리엄마가 해준 맛이라거나 어릴 때 해 먹었던 맛이라거나. 맛있는 것들은 언제나 남해의 맛이 아닐까 싶다. 남해산 꿀고구마 한알이 남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다 담고 있는 그릇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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