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그리움, 남해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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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그리움, 남해대교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10.22 09:58
  • 호수 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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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재 | 본지칼럼니스트
장 현 재본지칼럼니스트
장 현 재
본지칼럼니스트

 낮의 길이가 서서히 짧아지는 시월 중순, 논 밭두렁 언덕에는 가을꽃이 일제히 일어선다. 쑥부쟁이, 용담초, 산국, 향유, 투구꽃이 저 멀리 찬바람이 걸어오고 있음을 예리한 촉으로 알아서이다. 그래선지 산 그림자 내리는 길가에 늘어선 코스모스는 유난히 애잔함을 불러온다. 이 애잔함에 드리운 유년의 기억들이 추억의 윤슬로 다가온다. 누구에게나 있는 지난 기억들, 더듬어 볼 땐 추억이지만 그것을 떠올리는 순간은 언제나 현실이 된다. 자신이 겪었던 같이한 일도 마음에 흔적을 남기지 못하면 단지 스치는 시간일 뿐이다.


 남해사람 하면 누구나 공통의 공감대로 내세우는 한 가지 추억이 있을 것이다. 그건 모두가 알고 있는 남해대교이다. 가을장마가 지나간 시월 초, 파란 하늘을 보며 가을의 정감을 담고자 남해를 벗어난 일이 있다. 떠날 때는 노량대교를 돌아올 땐 남해대교를 이용했다. 노량대교를 지나며 빨간 교각의 남해대교를 본다. 차량의 통행은 뜸하지만 파란 하늘을 담은 바다와 대비된 모습이 노량대교보다 더 정감이 간다. 하지만 이 정감은 속도와 직선 앞에선 깊음이 얕아진다. 지금 우리는 변화의 빠른 속도와 디지털 문화에 감전되어 있다. 그 예로 노량대교와 남해읍과 하동을 잇는 국도 19호선, 진교 간 지방도로의 4차선 개통이다. 길은 좋아졌지만 빠른 속력은 언제나 앞만 보게 하며 남해대교보다 노량대교를 이용하고 있다.


 빨간 교각의 남해대교! 남해 사람이 여행을 가거나 타지로 떠날 때는 아쉬움을 번지게 하고, 돌아올 때면 포근한 안도의 마음으로 안아주는 남해 사람의 심장 같은 고향의 관문이었다. 이 다리는 1968년 착공하여 1973년에 개통된 당시 동양 최대의 현수교였다. 길이 660m, 폭 9.5m, 높이 52m 국도 19호 선상에 있으며, 맬다리 또는 허궁다리라고도 불렸다. 이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남해는 정말 섬이어서 노량해협을 건너기가 성가신 곳이었다. 육상교통에 비해 다소 수월한 여객선을 이용하여 여수, 사천, 부산을 다니곤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개통된 남해대교는 남해군을 전국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으며 많은 추억과 그리움이 깃든 관광명소가 되었다. 남해읍에서 결혼식을 마친 신랑 신부의 드라이브 코스로, 행락철이면 전국에서 모여드는 관광 인파로 입소문을 탔었다. 그리고 방문객들은 남해대교를 걸어 보고 남해대교의 빨간 교각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였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사진은 엔젤호가 물살을 가르며 남해대교 밑을 지나는 정경이었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가 없는 듯 50년이 지난 남해대교는 노후화와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하기에는 버거워 노량대교에 자리를 양보하였다. 아마 말은 못 하지만 남해대교도 아쉬운 사연을 담고 버티고 있을 것이다.


 노량해협을 지나는 가을바람이 청아하다. 많은 추억을 간직한 남해대교가 새로이 남해의 상징과 추억을 되새김할 관광명소로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충렬사와 거북선을 굽어보며 새로이 단장한 남해각으로 들어선다. 남해각은 1974년 관광객 숙소로 사용하기 위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1974년 9월 29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남해각 개관이란 광고가 스크랩되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세월을 가늠하게 하는 남해대교와 방문객들의 사진이 벽면을 장식하여 시간의 수레바퀴를 돌리게 한다.


 남해각의 외관을 본다. 기둥의 앞뒤 모습은 남해대교의 주탑을 형상화하여 설계하였고, 기둥에 새긴 세로줄은 남해대교의 현수교 라인을 형상화 한 것이라 하니 가히 숨겨진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그동안 방치되었던 남해각은 다시 추억의 공간으로 태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해대교는 관광 자원화 사업으로 다양한 시설이 계획 중이며 추억과 힐링, 그리고 액티비티한 체험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남해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선다. 이곳을 중심으로 관음포 앞바다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노량해전이 있었던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혼이 깃든 곳이다. 그래서인지 대교 건설 당시 일본 기술자들은 이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저 멀리 광양이나 여수에 숙소를 정하여 묵었다는 말이 있다.  이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량해협의 물살은 시간 속으로 흐르고 있다.


 차량이 뜸한 길가에 코스모스가 하늘거린다. 초봄 무수한 꽃비를 내렸던 벚나무들은 벌써 겨울 채비를 하며 단풍으로 지고 있다.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누가 잡을 수 있을까? 단지 그 기억만 마음의 갈피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쌓일 뿐이다. 지금 보고 있는 이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또 하나의 기억으로 자리 잡아 추억이나 그리움이 될 것이다. 모두에게 있는 추억의 그리움들, 그것은 기억의 편린들이 각인 된 것이다. 그러나 추억으로 남겨졌다고 하여 그리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움으로 남기 위해서는 그때 미처 채우지 못한 마음의 여백이 있어야 하고 가슴에 커다란 울림을 울려야 한다. 때로는 절절한 사랑으로, 술이 익어가듯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리움은 추억이란 일기장에 상상이란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마치 눈을 감으면 남해대교의 빨간 교각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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