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보물섬 남해로 여행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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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보물섬 남해로 여행가다 (1)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11.05 10:25
  • 호수 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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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행복 / 자연보호연맹남해군협의회장
장 행 복자연보호연맹남해군협의회장
장 행 복
자연보호연맹남해군협의회장

 소중한 자연을 벗 삼아 가을 정취에 흠뻑 젖어 국화 향기 그윽이 깊어가는 만추의 계절이다. 사실 현대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기술과 사회 시스템들은 나날이 발전하지만 `진정 우리의 삶은 윤택하고 행복해졌는가`를 되돌아보면 그건 별개의 문제다. 오늘날의 일상적인 생활은 어떠한가를 물었을 때 책임감의 무게, 불안정한 사회적 위치, 관계 과잉,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온갖 욕망들, 따지고 보면 우리를 옭아매는 것들은 수없이 많고 스트레스는 매일같이 찾아온다. 그렇다고 다 내려놓고 유유자적으로는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하면 오늘보다 내일을 더 활력 있고 즐거운 하루로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바로 힐링의 맞춤 지역이라 할 수 있는 남해를 과감하게 소개할 수 있을 거 같다. 현실과 이상, 과거와 현재, 익숙함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남해는 자연의 숨결을 충분히 공유하고 호흡할 수 있는 정말 관광하기 좋은 천혜의 장소가 아닌가 싶다. 지리적으로 남해 바다에 펼쳐져 있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중에서도 중앙에 위치해있어 접근성이 꽤 좋은 편이다.

 남해의 첫 번째 매력은 무엇보다도 빼어난 자연경관을 들 수 있다. 한 점 신선의 섬이라는 뜻의 일점선도(一點仙島)라고 불릴 만큼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정평 나 있다. 동서남북 어느 도로를 달려도 아기자기한 남해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고 육지만큼은 아닐지라도 산과 들이 적당히 분포해 있어 육지와 섬의 정취를 한눈에 만끽할 수 있는 매력 포인트가 있다. 세계 어느 유명 해안관광지에 내놔도 절대 뒤지지 않을 만큼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볼거리와 함께 빠질 수 없는 먹거리도 다채롭다. 그래서 남해를 보물섬이라고 이름 붙였을지도 모른다.

 경남 사천에서 삼천포 창선대교를, 하동에서는 남해대교를 넘어서면 바로 남해와 연결된다. 크고 작은 섬들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고, 육지와는 짧은 다리 하나 사이로 연결될 만큼 가까워서 섬 특유의 고립감은 전혀 느끼지 않는다. 필자의 경우, 바깥일을 본 후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끔 삼천포 창선대교를 이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출렁이는 물결 따라 저 멀리서 지저귀는 갈매기 소릴 들으며 훨훨 나는 갈매기 모습의 기억은 두고두고 아름다움과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대교를 지나 동대만을 지나며 힘차게 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남해바다가 주는 또 다른 아름다운 풍광에 그만 가슴이 뻥 뚫리기도 하고 긴장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눈 앞에 펼쳐진 섬들은 흡사 사람의 지문처럼 제각각의 매력을 뽐내고, 서해바다 갯벌은 아니어도 밀물과 썰물이 남긴 흔적을 통해 이곳이 살아 꿈틀대는 생명의 섬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동대만 진입부터 시작된 오감의 촉수가 해안도로의 풍경에 취해 꽤나 말랑말랑해졌을 때쯤에 남해와 창선면 사이 위치한 지족해협에 도착하게 된다. 지족해협은 한반도 남쪽 연안 남해의 가장 큰 섬인 남해도 다음으로 큰 창선도 사이에의 매우 좁은 물목의 바다다. 바다가 좁아진 간만의 차로 물살이 매우 빠르다. 빠른 물살을 마주하고 있는 두 섬은 창선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창선대교를 달리다 중간쯤 해서 고개를 돌리면 동쪽해협에 여러 개의 죽방렴이 쭈욱 펼쳐져 있다. 죽방렴은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은 갯벌에 길이 10m 되는 참나무 기둥을 박아 고정시킨 뒤 V자형으로 엮어 만든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그물이다. 일종의 원시 어장인데,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지족해협에는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원시적인 그물로 지금도 고기잡이를 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지만 관광 차원에서는 보는 것만 해도 즐겁기만 하다.

 창선대교를 지나 해안도로를 달리면 내륙으로 초대하는데, 산과 들길을 따라 10여 분을 달리면 남해 최고의 명물 독일마을의 빨간 지붕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독일마을이 초행길인 여행객에게는 독일마을과의 첫 대면은 평소 생각보다 생뚱맞을 수도 있다. 남해와는 너무나 이질적인 풍경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마을이 우리나라 근대사의 아픈 상처와 관계된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알게 되면 당황스러웠던 감정은 어느새 눈 녹듯 싸악 사라지고 과거의 아픔이 밀려온다.

 독일마을은 1960년대 어려운 시기에 조국 근대화와 경제발전에 헌신한 독일 거주 교포들의 정착 생활 지원과 조국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삶의 터전 마련을 위해 2000년초 이곳에 조성됐다. 그러니까 1960년대 외화벌이를 위해 파견했다가 은퇴한 독일 거주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01년부터 천연기념물 제150호가 있는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일원 약 3만평의 부지에 남해군에서 당시 30여억원 들여 70여 동을 지을 수 있는 택지를 분양해 40여 채를 완공했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사망하거나 노환 등으로 독일로 돌아간 일부 주민을 제외하면 25가구 정도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마을은 독일 특유의 붉은 지붕과 하얀색 벽면의 어우러짐으로 그 화려함과 이국적인 바탕을 중심으로 건축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교포들이 직접 독일의 재료를 수입해 전통 독일식 주택을 신축하고, 독일마을로 이주한 주민들은 자신들의 주택을 펜션이나 민박으로도 운영하는가 하면 독일식 소세지와 맥주, 빵 등 다양한 독일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카페로도 활용하고 있다. 역사적인 아픔과 슬픔이 서려 있는 독일마을에서 이국적인 정취에만 마냥 취하는 것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역사적인 배경도 담겨있어 흥미를 더한다. 더욱이 독일마을 위쪽 낮은 언덕에 조성된 원예예술촌에서 그 절정을 이루는데 예술촌에는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본떠 만든 프랑스식 정원, 바위와 석등이 어우러진 일본풍 정원, 현대적으로 꾸민 미국식 정원, 풍차가 멋나는 네덜란드식 정원 등 유럽형태의 다양한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같이 독일마을과 원예예술촌은 그야말로 비자 없는 유럽여행지라 해도 틀리지 않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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