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듣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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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듣는 소리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11.12 10:24
  • 호수 7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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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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碧松 감충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사뿐히 내려앉는 밤송이 그 소리가
이명을 몰아내고 내 귓가 만지는 날
여명에 찾아온 친구 덕고산을 오른다.

 
 새벽녘 책 한 권에 몰두해 있는데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정적을 깬다. 하지만 그 소리가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시차적으로 딱 맞는 것은 아니지만 문장의 단락을 끊어주는 역할을 하여 더 나아가지 않고 잠깐 눈을 감고 내용을 파악하는 시간으로 끌고 가니 책을 읽어가는 데 음악에서의 추임새 역할을 한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 알밤 떨어지는 소리는 집 안에서도 들려오고 옆 언덕에서도 들려오는데 데크에서는 `팡`이고` 마당에서는 `퍽`이며 주목 울타리나 길섶의 억새나 대추나무 잎에서는 `스르륵` 으로 표현해본다. 그런데 알밤이 밤송이에 달라붙은 채로 데크에 떨어지는 소리는 아주 미묘해서 청각으로 듣기보다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들리는 듯 마는 듯 그냥 뭐가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소리다. 그나마 데크 밑의 창고가 울림통 역할을 해서 이 부드러운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팡` `퍽` `스르륵`도 아닌 이 미묘한 마음의 소리….  

 세상사 마찬가지다. 범이라도 잡을 듯 고래고래 고함치며 세상을 시끄럽고 요란하게 소리치던 자들이 범을 잡기는커녕 쥐 한 마리도 제대로 거두지 못하더니 급기야는 집에 키우던 토끼도 건사치 못하는 무모함을 만천하에 싸질러 놓기도 한다. 이들의 시끄럽고 요란한 소리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냥 `그 입 다물라!` 따끔한 호질(虎叱)이 생각난다.  


 소리를 글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글은 소리글자여서 어떤 소리도 가장 원음에 가깝게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뜻글자의 대표적인 한자로써는 `팡`, `퍽`, `스르륵`을 표현할 길이 없다. 필자가 알밤 떨어지는 소리를 `팡`, `퍽`, `스르륵` 정도로 표현해 봤지만 알밤을 담은 채 사뿐히 떨어지는 그 미묘한 밤송이의 소리는 표현할 길이 없다. 그냥 마음으로 듣는 사색의 소리라고 해두는 게 좋겠다. 이제 청력도 서서히 떨어지는 시기다. 하지만 건청으로도 듣기 힘든 밤송이 살짝 내려앉는 소리를 이 새벽에 그것도 책을 읽으면서 들어보는 천혜의 환경을 마련해준 가족들의 배려와 넉넉한 인심의 이웃이 고마울 뿐이다.


 여명이 터오고 글이 거의 끝나는 시간 누군가 밖에서 부른다. 동갑내기 박사장이다. 우리 나이에 새벽공기는 약이라며 덕고산을 같이 올라가는데 길에 떨어진 알밤이 지천이다. "큰 거만 좀 주워갑시다. 밟고 지나가기가 좀 그렇네요." 참 좋은 친구의 멋진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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