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 호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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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호박님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11.19 10:54
  • 호수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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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113 | 碧松 감충효 /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장마 이겨내고 땡볕도 품은 님아
돌담이 뜨거워도 마냥 웃던 둥근 님아 
이웃님 넘겨준 사랑 짚방석에 앉히다. 

 
 돌담의 추억은 깊다. 고향에 있을 때도 돌담에는 호박넝쿨이 기세 좋게 뻗어나가다가 꽃을 피우고 호박을 달았다. 누가 심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중에 호박잎이나 호박을 따서 담 넘어 넘겨주는 사람이 심은 경우가 많다. 이웃에게 더 싱싱한 호박잎과 튼실한 호박을 양보하는 이웃 사랑이 꽃피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필자가 기거하고 있는 이곳의 이웃사랑이 고향의 아름다운 옛 추억 못지않으니 늘그막에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무릎 높이의 돌담은 이웃 간의 하루를 여는 대화의 창구이다. 아침인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안부를 묻고 그 날 할 일을 물어 보고 어제 일어났던 소식들을 서로 주고받는다. 필자가 아파트를 탈출한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돌담에 이웃님이 심은 호박넝쿨이 담을 기어오르더니 꽃을 피우고 호박을 대여섯 개 달았다. 돌담도 정답지만 싱싱한 호박넝쿨이 얹히니 더욱 보기 좋았다. 이웃님은 담에 열린 호박은 모두 필자가 따먹으라고 하셨다. 집 안에 키우던 호박은 물론 오이, 가지, 열무도 수없이 돌담위로 넘겨주시던 이웃님이다. 낚시해온 참붕어까지 손질해서 넘겨주시더니 급기야는 심심하니 농사도 좀 지어보라며 문전의 텃밭도 내어주셔 지금 그곳에 각종 채소를 심어 잘 가꾸고 있다.


 돌담에 걸터앉은 호박들을 익혀보기로 했다. 장마와 폭염에 몇 개가 떨어지고 세 개가 잘 커가더니 가을에 튼실하게 익은 호박으로 변신했다. 호박을 따던 날 이웃님은 반장님네 지붕으로 호박넝쿨이 건너가 아주 큰 호박이 달렸으니 그것도 따가라고 하셨다. 


 집으로 가져온 호박들을 보며 또 한 번 어릴 적 고향 추억에 젖는다. 할머님과 부모님께서 농사 지으신 그 큰 잘 익은 호박들이 풋풋한 향기를 품어내며 방 안 가득 쌓여 있을 때의 풍요로움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를 생각하며 방 한 곳에 짚으로 정성들여 만든 똬리방석 위에 수많은 씨앗들을 잉태한 호박님들을 모신다.


 그리고 이웃님에게 드릴 마음의 선물로 시조 한 수씩의 옷을 입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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