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향토사연구소 학술포럼 … 남해독립운동·유배문학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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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향토사연구소 학술포럼 … 남해독립운동·유배문학 재조명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1.11.26 10:38
  • 호수 7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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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열려
제3회 향토사연구소 학술포럼이 지난 18일 남해문학관에서 열려 남해독립운동과 유배문학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들이 학술포럼 말미에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3회 향토사연구소 학술포럼이 지난 18일 남해문학관에서 열려 남해독립운동과 유배문학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들이 학술포럼 말미에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3회 남해문화원 향토사연구소 학술포럼이 지난 18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열렸다. 향토사연구소 학술포럼은 올 한해 남해 향토문화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발표하는 대표적인 지역학술제 가운데 하나다.


 이번 향토사연구소 학술포럼은 1부 『남해항일독립운동자료집』 발간을 위한 공청회와 2부 남해 유배문학과 관련한 학술포럼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하미자 남해문화원장, 정영란 군의원, 김정열 향토사연구위원, 김기태 남해문화원 이사 등 내빈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이예모 선생의 후손으로 이처기 시조시인, 독립운동가 이상태 선생의 후손 이만호 씨 등 항일독립운동가 유족과 군민이 참석했다.
 

1부에서는 『남해항일독립운동자료집』 발간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추호석, 김정일, 한관호 조사위원.
1부에서는 『남해항일독립운동자료집』 발간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추호석, 김정일, 한관호 조사위원.

『남해항일독립운동자료집』
성과와 과제 논의

 1부 순서인 『남해항일독립운동자료집』 발간을 위한 공청회는 박성석 향토사연구소장이 사회를 맡고 집필위원인 추호석 진주문화원연구실장, 김정일 씨, 한관호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이 패널로 참여했다. 


 한관호 위원은 먼저 자료집 발간작업 경과보고를 했다. 보고에 따르면, 2003년 남해군 화전사 바로알기 모임(회장 김우영)에서 『남해군 항일운동』을 펴내 남해의 항일·독립운동을 처음 소개했다. 그리고 16년 뒤인 3·1운동 100주년이 되던 2019년 책에서 몇몇 오류가 발견되고 항일운동가 유가족들의 민원과 이의제기가 이뤄졌다. 이에 『남해군 항일운동』을 기초로 남해출신 항일운동가를 새로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남해항일독립운동자료집』 발간을 위해 2020년 10월부터 자료조사, 수집, 집필에 착수했다. 자료집 발간을 위한 조사위원으로는 박성석 위원장을 비롯해 김정일·추호석·한관호·김미숙 위원과 남해군역사교사모임이 참여했고 김제정 경상대 사학과 교수가 감수를 맡았다. 이 과정에서 지역신문광고를 통해 남해 항일운동가 유가족들의 제보를 받았다. 


 이를 통해 △독립운동에 힘쓴 미포상자 56명 발굴 △남해국채보상운동과 의병사 발굴 △교원 명단 등 역사 사료 발굴 △설천, 남해읍 만세운동 날짜 정립 △독립운동가 후손 일부 근황 파악 △『남해군 항일운동』에 수록된 항일운동가 외에 정성수 등 3인 발굴 △독립운동가 정몽호 지사 옥고담 발굴 △남산 3·1운동 기념탑 건립추진회장 정재홍 육필원고 발굴 등의 성과를 거뒀다.


 반면 △설천면 문항 만세운동과 읍 장날 만세운동 일자 표기의 혼재 △명확한 공훈 근거가 없는 이름이 남해3·1운동 기념비 등에 수록된 점 △독립선언문 입수 경로와 남해 만세운동에서의 이예모 선생의 주도 여부 등이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다. 


 또 앞으로 △남해 항일·친일 연구의 지속 △미포상 독립운동가 조사와 연구, 포상 추진 △사회주의, 민족주의 계열 남해독립운동가 연구 △고현 포상 만세운동 연구 △독립운동가 후손, 생가, 묘지 조사 등의 과제가 제기됐다. 


 추호석 집필위원은 "56명의 미포상자를 발굴했는데 이들이 공훈을 인정받아 포상을 받도록 행정적·제도적 절차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일 집필위원은 "남해항일운동 유공자들 가운데 여전히 어렵게 살고 계신 분들과 유족들이 있다"며 "이들을 돌볼 수 있는 남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부는 남해유배문학을 재조명하는 학술포럼으로 진행됐다. 포럼은 먼저 주제발표를 한 뒤 토론자들과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2부는 남해유배문학을 재조명하는 학술포럼으로 진행됐다. 포럼은 먼저 주제발표를 한 뒤 토론자들과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남구만·유의양·김만중 문학에
담긴 남해

 2부에서는 남해 유배문학과 관련한 향토사연구소 학술포럼이 한관호 위원의 사회로 진행됐다. 먼저 작가이자 문학박사인 임종욱 씨가 「약천 남구만의 영유시 연작에 나타난 남해의 옛 모습」을 주제로 발표하고 최미선 경상대 겸임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임종욱 박사는 약천 남구만이 첫 번째 유배지인 남해 유배 시절, 금산과 망운산을 유람하며 썼던 `영유시` 20수를 검토하고 거기서 찾은 특징들에 대해 발표했다. 임 박사는 "남구만이 영유시를 통해 유배 온 자신의 처지를 은유하고, 남해의 인물과 지명, 풍습을 기록했으며, 유자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을 폭로했다"며 "이를 통해 그의 박식함과 문학적 재능도 느낄 수 있지만 무엇보다 남해의 주민, 농민들과 가깝게 지낸 사실이 잘 드러난다"라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박성석 경상대 명예교수가 「남해문견록에 나타난 풍속」에 대해 발표했다. 『남해문견록』은 조선 후기 후송 유의양이 국문으로 지은 필사본 유배기행록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노량나루와 이순신, 남해읍의 마애비, 친분 있는 유배객과의 만남, 남해섬의 물산, 섬사람들의 생활풍속, 남해지방 토속어 등이 담겨 있다. 박 명예교수는 "이 작품이 산문 유배기행록 가운데 최초의 국문작품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가치가 크지만, 작품에 기록된 남해 지역 풍속에 대한 유학자의 부정적이고 숭문주의적인 편향성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해문견록』에 나타난 남해 지역의 장례, 혼인 풍속에 대한 유의양의 부정적 시각과 편향성이 드러난 대목을 제시하고, 유배지에 도착한 유의양이 숙소의 주인 아들로부터 봉변을 당하고 나서 `해도 인심이 극악한 줄 들었다`거나 `유독 남해만이 미개한 곳`이라며 속내를 밝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김성철 전 유배문학관장이 「서포 김만중의 삶과 유배문학」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김성철 전 관장은 "글 쓰는 사람들이 벼슬에 있을 때는 정작 글을 제대로 못 쓰다가 유배를 가면 크게 할 일이 없어 글을 많이 썼다"며 "대표적으로 다산 정약용도 강진에서 신의 가호로 일생일대의 역작을 남겼다고 할 정도니 서포 김만중도 같은 이유에서 수많은 역작을 남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포 김만중 선생은 56년간의 기구한 삶을 살면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서포만필』, 『윤씨행장』을 비롯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사친시 등을 남겼다. 서포 선생은 유복자로 배 위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고 벼슬한 후에도 당쟁에 휘말려 강원도 금성, 평안도 선천, 그리고 남해까지 세 번의 유배를 당한다. 세 번째 유배지인 남해 절도에 위리안치 당한 김만중은 결국 1692년 노도에서 세상을 떠난다. 


 김성철 전 관장은 "『구운몽』을 선천에서 썼느냐 남해에서 썼느냐는 논쟁보다 『구운몽』, 『사씨남정기』를 쓴 김만중 선생이 남해에서 죽었고 그 정신을 기리고 이어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김만중 선생으로 인해 남해유배문학관이 건립되었지만 남해에서 다양한 소설, 한시, 문견록, 평론문학 등 수많은 유배문학작품이 생성되었다는 점에서 유배문학관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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