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리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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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 선물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11.26 11:14
  • 호수 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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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114 | 碧松 감충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이웃이 건네주는 원단의 두루마리 
주단에 시를 써서 호박에 걸쳐보니 
정암리 일곱 이야기 이웃 분이 열두 분.   

 
 이웃 분이 창고를 정리할 때 두루마리 원단 수십폭을 얻었다. 가죽에 융을 붙인 것이 있었고 천과 융 사이에 스펀지를 넣어 탄력성이 있는 것도 있었으며 꽤 고급스런 주단(紬緞)도 있었다. 언젠가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두루마리에 왕희지의 행서 집자성교서를 쓴 대작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그 유려하고 웅장한 품세를 조금이라도 더 담아가기 위해 전시 기간에 세 번 정도 입장하여 대작 앞에서 태극권의 참장공을 하듯 우두커니 서 있기도 했다. 혼백이 그냥 글자의 숲속으로 들어가서 헤매다 왔다는 표현이 알맞을 것 같았다.


 청정하고 온화한 햇살이 따스하게 내린 어느 날 필자는 맨발로 운동하며 반질반질 닦아 놓은 데크로 나가 두루마리의 벌판에 섰다. 하얀 융단에 높이와 폭이 20센티미터쯤 되는 큰 글씨를 써 내려간다. 융과 스펀지와 천이 삼중으로 붙어있어 붓이 닿는 감촉이 그리 좋을 수 없다. 서예의 수준을 떠나 필자도 종이가 아닌 융단에 필묵으로 머리를 올렸다는 데서 그 가치를 부여해 본다.


 인조견 두루마리도 펼쳐본다. 너무 아름답다. 미색 바탕에 은실로 모란을 수놓은 것이라 품위도 있었다. 이 아름다운 천에 아직 한참 수준에 못 미치는 붓글씨를 써서 소모시키기엔 너무 아깝다. 대신 조금씩 잘라 이곳에서 창작한 시조를 좀 큰 글씨의 펜으로 적어 넣어 보니 참으로 품위가 있다. 이곳에 놀러온 게 아니다. 건너뛰지 않으면 심신이 견디기 힘든 세속의 어둠에서 탈출하여 이루지 못한 여러 가지를 완숙의 단계로 끌어 올리고 노년을 격려하기 위한 말 중에 그래도 심신의 양생만 잘 하면 실현 가능성이 충분해 보이는 `인생은 칠십부터`의 고마운 슬로건에 매달려보기로 마음먹고 가족들의 동의를 구하여 홀로 원족을 감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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