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은 풍년, 쌀값은 흉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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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풍년, 쌀값은 흉년
  • 한관호 (바른지역언론연대 사무총장)
  • 승인 2009.11.12 15:27
  • 호수 1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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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섬’, ‘직녀에게’를 부른 김원중이라는 가수가 있다.

이 친구가 90년대 담양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초청을 받았다. 라면값만도 못한 쌀값을 보전하라는 궐기대회였다. 연사들이 피폐해진 농촌의 실상을 거론하며 저마다 분노한 농민들을 위안했다. 김원중은 농사를 지어본적이 없었다. 에오라지 노래 하나로만 밥을 빌어먹고 살아온 터.

그런데 햇빛에 그을려 새까만 농민들의 얼굴, 노동에 옹이 박혀 갈퀴 같은 손들을 보노라니 자신이 부끄럽더란다. 노래를 하기 전에 농민들의 애환을 위로해야겠는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더란다. 그가 고민 끝에 던진 말은 “여러분, 저는 다른 사람보다 밥을 많이 먹습니다”였다.

지난 주말 집에 다녀왔다. 군청에 들렀더니 농민들이 볏 가마를 쌓고 있었다. 농협 수매에 내놓아야 할 나락들을 왜 군청 마당에 켜켜이 쌓는가. 그것도 주체할 수 없는 농심의 분노까지 담아서.

올해 가을 들녘은 말 그대로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 흔한 태풍 하나 오지 않았다. 벼멸구도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대풍이다. 농민들은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애지중지 가슴 끓이며 키워온 나락, 객지 사는 자식들 줄 것, 할멈과 먹을 양식을 제하고 농협에 수매를 하면 제법 목 돈을 만질 것이다. 그런데 세상사 호사다마라던가. 풍년이라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지난해 국내 쌀 재고량이 60만톤, 올해도 81만6천여톤의 재고가 예상된다. 그러니 쌀값이 바닥을 치게 생겼다.

국감장에 나온 전국농민회 이창환 실장은 쌀 재고량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묻는 민주당 박주선 의원의 질의에 “확실한 방안은 대북지원이고 그 다음이 해외지원, 그 다음은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50% 정도를 현물로 지원하는 것”이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북한에 쌀 40만톤 정도를 지원하면 한 가마당 7천원 정도 쌀값이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쌀 재고량 보관비만 10만톤당 300억원이 든다며 올해 발생할 예상 재고량 80여만톤의 보관비만도 24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황진화 의원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대가, 납북자 국군포로 송환을 위해 쌀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산가족 상봉 대기자가 8만6천명이니 860만가마가 들고 이는 69만톤 정도이니 쌀 재고량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남아도는 쌀을 밑천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상설화하고 국군포로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농민들에게 쌀값은 보전해줄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닌가.

그러나 남북 협력기금으로 쌀 40만톤과 비료 30만톤을 지원할 예산이 잡혀있는데도 왜 실행하지 않느냐는 민주당 박상천 의원의 질의에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검토 하겠다”는 소극적,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

또 정부가 내놓은 대안이라고는 예년보다 쌀 10만톤 정도를 더 사 들이겠다는 것뿐이다. 그러면서 북한이 식량지원을 요청하자 옥수수를 사서 주겠단다.

성난 농심들이 다 익은 벼를 갈아엎었다. 시국이 이러한 때 농민들을 위해 노심초사해야 할 농협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난 5일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는 농협에 대한 국정감사를 했다. 이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농협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농협의 한 간부는 농촌사랑상품권 판매대금을 비롯해 2억7천여만원을 자기주머니에 슬쩍했다. 이런 사례를 비롯해 최근 3년간 농협직원 35명이 137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형사고발 당한 사람은 단 8명뿐이고 대부분이 정직, 감봉, 견책 등 가벼운 징계를 받는데 그쳤다.

그런 한편 농협은 무려 821억원 어치에 해당하는 골프회원권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군납을 이유로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농협의 주인인 농민들은 아사직전인데 공금을 횡령하고 골프나 즐기고 외국산 쇠고기나 들여다 팔고 있으니 반 농민적인 농협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농민들의 한탄이다.

쌀은 풍년, 쌀값은 흉년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농민회는 지난해부터 대북지원 등 구체적인 대안을 줄기차게 제시해 왔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때 나온 ‘서울 불바다 발언’에도 15만톤이나 제공되었던 대북 쌀 지원은 이명박 정부 들어 중단돼 있다. 이런 우매함을 두고 시중에서는 ‘멀쩡한 길을 두고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정부도 농협도 농민들을 모르쇠하고 있다. 김원중처럼 밥이라도 많이 먹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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