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진정어린 선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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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진정어린 선진의 길”
  • 류영희
  • 승인 2009.11.26 18:49
  • 호수 1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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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간 재파병을 반대하며 -

2007년도에 독일에 있을 때 바로 이웃에 정치학 박사인 아프간 인사가 살았다.
그는 셋집에 살면서 자산을 모두 아프간의 재건을 위해 학교와 병원건립에 기부하고는 유럽에서 아프간의 평화를 위해 힘쓰는 이였다.
그당시 한국 선교봉사단의 납치사건이 아프간 내에서 일어나 나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왜 한국의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들어갔는지 우선 답답했다. 산책길에 만난 그도 마찬가지로 안타까워했다.
“아프간은 수십년 동안 전쟁 상태에 있는데 아프간의 평화는 아프간인들의 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아무리 분파가 많고 이견이 많아도 그들은 우선 외부권력의 입김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 아프간은 수백년 간의 항전 끝에 1905년 영국에 합병되었다가 1919년에 독립이 됐던 현대세계의 중세적인 나라다. 1979년 아프간을 침략한 소련과 10년간 전쟁을 하고 2002년 알카에다 소탕을 명분으로 침략한 미국과 또 전쟁 중인 것이다. 탈레반은 원래 미국이 후원했던 학생들이다. 아프간이 대영제국, 소련 그리고 이제는 미국의 흥미를 끄는 이유는 인도, 이란, 중국과 접했다는 지정학적인 이유도 있지만, 사우디 매장량의 13배에 달하는 석유매장량과 무진장한 광산자원이 개발되지 않은 채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프간인들도 세계 곳곳에서 교육을 받아 젊은 지식인들이 많다. 아프간의 민주화, 현대화에 필요한 것은 군대가 아니라 기술과 산업개발에 필요한 엔지니어들이다. 현 정부는 부패해 국민의 신임을 잃었고, 외국의 군인들은 오랜 전쟁으로 아프간 사람들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하는 적들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무력감과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도 지키고자하는 자존심이 있다. 아프간을 진실로 돕고자 한다면 그들을 홀로 둬야한다. 그러면 민주화도 현대화도 이루어져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가 열성으로 한 말들이다.
그 만남이후 그가 아프간을 다녀왔고 납치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이들이 납치상태에서 풀려나자마자 곧바로 대대적인 공습이 그들이 있던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어 살아남은 이 하나 없이 완전폐허가 되었다.
협상에 임했던 아프간대표들은 너무나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한국인들을 보내는 것이 그들에게는 떼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들은 한국인들을 고이 보내주었다. 한국이 철수를 약속하자 그들도 약속을 지킨 것이다.
독일만이 아니라 중동과 이슬람세계가 2007년 여름의 납치사건을 주시했다. 아직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기 한참 전, 미국의 필요에 의해 세계가 움직여주던 때에 한국과 아프간 반란군의 협상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겐 한국인의 생명지킴이 미국이 주도하는 전세계 테러전쟁의 명분보다 중요하게 자리매김 했던 것이다.
한국은 최근 몇년 들어 세계 15억 이슬람인들의 호감을 사기 시작했다. 이슬람세계는 의도적으로 왜곡된지 오래여서 정치적 현상에 민감하다.
한국의 부지런함과 재능, 주체성 확립을 위한 노력 등으로 일어난 한류의 물결을 타고 왠지 신뢰하고 싶은 나라가 되고 있다. 그들에게 유럽이나 일본, 미국 등의 제품보다 한국의 것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 한 예가 되리라.
단순히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전쟁터로 갔던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기로 실험대에 올랐던 한국. 2007년의 한국에겐 그 젊은이들의 생명이 중요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은 기술 인력의 안전보호를 위해 이미 미국도 고전하고 있고, 나토도 군인들을 잃고 있는 곳으로 소중한 아들들을 무장시켜 보낸단다. 정부는 파병을 안한다고 공언했었는데 지난 18일엔 상황을 살피러 실무진이 다녀왔다고 보도된다.
아프간에는 나라의 자유와 자주를 위해 목숨을 건 아프간 반란군이 테러반란군보다 훨씬 많으리라고 생각되어, 나는 한국의 아프간 재파병을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외화를 벌기 위해 젊은이들을 베트남 전쟁에 보내야만 했던 때와는 한국의 경제상황이 다르다. 그때의 참전(살생)이 국가존립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겠다.
우리 군인들이 용맹함으로 이름을 떨쳤다고도 한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손발을 잃고 목숨까지 잃었던가. 남의 나라에 가서 자기나라를 사수하려는 그 나라 사람들을 죽였던 사실을 역사에 남겼다.
안중근 의사 의거 100 주년을 맞은 우리가 우리의 생존과 관계가 없는 곳까지 아들들을 원정시키려 하는 지금은 보장도 없는 이익에 대한 기대, 욕심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나는 그 기대를 시들어가는 구제국주의적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다행스럽게도 ‘다함께 사는 세계’ 정신이 세계 곳곳에 일어나고 있다. 이제는 전쟁에 참여하기보다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것이 더 많게 되리라고 믿는다.
예전 서구의 정복 명분은 세계의 기독교화, 문명의 전파였던 것이 지금은 테러와의 전쟁일 뿐이다. 아프간에 서구가 갖고 있는 흥미를 우리가 똑같이 가질 이유가 뭐가 있나.
흥미가 같아도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다른 길을 통해 생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으며, 세계의 존경과 신뢰를 살 수도 있다. 지금의 파병은 우리를 기회주의자로 낙인찍게 만드는 일이다. 기회주의의 생은 짧다. 기회주의자의 생은 너절하다.
에너지 자원이 필요하다면 우리의 연구자들을 확실히 지원해 새로운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 더 평화적이고 경제적이며 인류에도 공헌하는 길일 것이다.
한국의 태양열에너지 개발이 세계 최첨단일 수 있었던 것이 정권이 바뀌면서 사장되다시피 되고, 청정조류 에너지화 연구가 앞서 있는 한국의 뒤를 프랑스가 쫓아오는 현실 등을 돌아볼 만하다.
북한의 수천조 가치에 달하는 지하자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외교적으로 노력해보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우리 주권 밖의 나라에서 보장 없는 모험에 한국의 소중한 젊은 생명들이 다치게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약속은 지켜야 한다.
국제사회가 기억하는 약속을 국가가 지킨다는 것은 정치인들이 국내에서 하는 약속지킴과 차원이 다르다. 정치인들의 변화무쌍한 약속에 대한 책임과 그에 상응하는 명예는 보통 나라 안에서 본인과 정당이 지는 것이지만, 국가가 맺은 약속은 전 국민이 지켜야할 생명과도 같다.
한국은 이년 전 철수를 약속했고 이행했다. 그 당시의 상황에서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세계의 이목이 함께했던 사건이었다. 언젠가 아프간이 평화를 찾을 때, 한국이 지킨 철수 약속은 빛이 날 것이다.
또한 세계에서 한국의 기업들이 신뢰와 친절 속에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한국의 세계화, 선진화는 이런 의미에서 뒤를 쫓아올 나라가 ‘하나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멋진 일이 아닌가.

류 영 희
물건마을·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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