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저작지는 남해’라는 ‘사실(史實)’부터 확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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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저작지는 남해’라는 ‘사실(史實)’부터 확보하자
  • 박성재
  • 승인 2009.12.17 19:27
  • 호수 1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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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대표스토리’가 필요하다 1
남해의 ‘스토리’가 궁금하다. 남해가 고장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외부인의 눈에는 그렇게 비친다. 남해에도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 많다. 그러나 조상이 물려준 보물을 외지인에게도 매력 넘치는 ‘유배문화관련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열정과 역량은 아직 미흡하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매일경제 ‘읍·면·리·동까지 문화를 심겠다’라는 인터뷰에서 “문화가 국민 생활에 살아 숨쉬게 하겠다”면서 “내년에는 읍·면·동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문화를 촘촘히 심겠다는 각오로 문화부직원을 독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동네 단위까지 촘촘하게 문화서비스가 퍼져 나가도록 ‘문화로 생동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정부는 ‘희망 대한민국 프로젝트’로 서민과 문화적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나눔사업계획이라고 일컫는다. 
이미 남해에서는 김흥우 국제탈공연예술촌장이 지역주민과 연극인이 함께하는 문화행사의 하나로 ‘구운몽 퍼레이드와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그는 관객이 찾아오는 행사에서 찾아가는 행사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여름 피서지를 찾아가 관광객들이 직접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남해의 문화 이미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남해와 서포선생을 연계해 역사와 충·효 교육이 살아 숨 쉬는 매력적인 ‘스토리 관광’으로 발전시킬 수는 없을까. 유배관련 문헌(文獻)과 고서(古書)를 한글로 번역할 수 있는 공간을 남해유배문학관내 설치해 전국 규모의 ‘인문학 강좌’를 개설해 유배지 남해를 ‘인문학의 메카’로 부각시킬 수는 없을까. 조선시대 선비들이 벌였던 당쟁과 학파간의 치열한 ‘권력다툼’과 ‘사상투쟁’을 현대판으로 재해석해 남해가 정치희망생의 문(文)·사(史)·철(哲 )교육의 장으로 진화 할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필자는 그들의 ‘권력다툼’이나 ‘사상투쟁’ 끝에 얻은 고문서·유배·사사(賜死)당한 기록들도 훌륭한 스토리감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남해를 상징하는 유배 적소(謫所)에 서당(書堂)을 만들어 옛 천재 선비들의 공부 방법, 그들의 육아·자녀교육방법을 체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면 관광객들은 좋은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포 김만중 선생의 충·효사상도 잘만 대중화하면 좋은 관광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해는 요즘 내년 5월 유배문학관 개관을 앞두고 西浦 선생의 위업을 만고에 알리기 위한 ‘서포문학상’ 제정에 따른 논의가 뜨겁다.하지만 ‘서포문학상’을 위한 ‘서포문학제’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전국규모의 ‘서포문화제’ 개최 준비를 위한 ‘서포상’(문학상, 충효상 등)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적인 문학작품인 ‘구운몽’의 저술지가 남해라는 것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
1992년에 서포연보(西浦年譜)가 발표되기 전에는 ‘구운몽’의 저술지는 남해였지만 일부 학자들이 ‘서포연보’ 내용에 따라 선천 유배 때 어머님을 위로하기 위해 보낸 저서 내용 중에 몽환(夢幻)이란 글귀만 가지고 구운몽 저술지가 평안도 ‘선천’이라는 주장을 하면서부터 이것이 마치 정설처럼 굳어져가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구운몽 저술지가 분명히 남해라고 주장한다. 
‘구운몽’의 저술지가 어디인지 정확히 기록된 사료는 없다. ‘구운몽’의 창작연대나 창작동기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구운몽은 물론 남해 유배지에서 창작된 ‘사씨남정기’ 양대소설을 동시에 복합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본다.
‘사씨남정기’는 오로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구상한 것이다. 서포가 사씨남정기를 쓸 때에는 서인파(西人派)의 재집권이란 정치적 큰 목적을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몽환적인 이상을 추구할 겨를이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구운몽’은 그야말로 한바탕 꿈이다. 정치적 목적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가 이제까지 꿈꾸어 오던 인생의 ‘부귀영화’를 ‘일장춘몽’으로 느끼면서 이제는 다시는 소생할 길이 없음을 체달한 결정적인 시기에 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논리적 설득력이 크다. 결국 작자 미상의 서포연보만으로 구운몽이 선천 배소에서 저작되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물론 ‘구운몽’의 제작 시기, 동기를 연구하려면 남해 현지의 지리적 조건이나 지세의 환경을 현장에서 실측답사하는 과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실측답사에서 찾아지는 지명과 용문사와 관련된 시, ‘구운몽’ 속에 묘사되는 석교·용문산 오동나무 등도 제작 시기와 동기를 밝히는데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서포의 육필(肉筆)인 서포집(西浦集)이나 서포만필(西浦漫筆)을 섭렵(涉獵)하는 것도 좋은 방편의 하나다. 필자는 “왜 유자(儒者)이면서 불교소설을 쓰게 되었을까?”라는 풀리지 않는 화두를 들고 서포집과 서포만필을 완독했다.
최근 필자는 서포집에 실린 시편들 중 ‘차보광승설동운걸불서(次普光僧雪洞韻乞佛書)라는 구절을 찾았다. 이 구절을 구운몽은 남해유배 때 저작됐다는 사실(史實)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에 필자는 ‘차보광승설동운걸불서(次普光僧雪洞韻乞佛書)를 중심으로 본 ‘김만중과 소동파의 동일시(同一視)’라는 주제의 논문을 쓰고 있다.
보다 정확하고 논리적인 증명을 위해서는 다양한 기록들을 동원해야 함에도 필자의 역량이 미흡한 관계로 그렇게 하지 못한 점에 대해 양해를 바라면서 우선 그 대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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