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유배문학관’ 설계변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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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유배문학관’ 설계변경이 필요하다
  • 서관호
  • 승인 2009.12.31 18:20
  • 호수 1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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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 논 단

넝쿨을 휘어잡고 바위를 기어올라 산정에 오르니 / 과연 망운이란 이름이 잘 붙여졌음을 알겠구나 / 백성들이 성은을 입어 요민 못지않게 행복함을 보니 / 이 천한 몸도 몹시 고향 땅이 그리워지는구나 // - 남구만의 ‘제영등망운산’ 부분 국역

남구만은 남해 유배에서 풀려나서 나중에 영의정에까지 오른다. 이렇듯 작품을 보나 유배자들의 생애를 보나 서포 선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최소한 유배에서 풀려나게 되고, 또한 관직도 다시 기용되어 승차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 유배와 유배문학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창창한 미래라는 점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유배문학관을 짓는다고 하기에 ‘남해인에게도, 관광객에게도 참 좋은 이정표 하나가 생기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반겼던 ‘남해유배문학관’이 기대와는 달리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어 안타깝기도 하거니와 시작부터 위치문제를 비롯해 입방아에 시달려온 것은 그만큼 큰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당위성이 큰일은 커다란 명분에 치중한 나머지 나중에는 그 명분마저 훼손당하는 우를 범하기 일쑤가 아니던가? 다른 사업의 예를 들자니 흠담 같아서 접기로 한다.
‘남해유배문학관’이란 말부터 뜯어보자. 앞에 ‘남해’가 붙은 것을 시비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다음에 ‘유배’가 붙은 것은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허지만 이 두개의 접두어를 빼고 나면 ‘문학관’이란 말만 남지 않는가? 이 건물이 문학관이라는 말이다. 헌데 왜 역사관으로 지으려고 하느냐는 말이다. 현재도 ‘남해향토역사관’이 있지 않은가? 거기다가 유배문학부문을 조금 더 강조하고 싶으면 그리하면 될 것 아닌가?
‘남해유배문학관’으로 지으려면 문학관의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 과거의 작품과 작자만이 문학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즉 시대를 초월하는 문학관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앞에서 지적한 역사관이 될 수 없다는 것 외에도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다. 역사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는 가치 있는 것이 되지 못한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미래의 문제를 설계하는데 있어서 거울이 될 때라야 비로소 그 존재가치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유배문학이 유배자들의 억울함과 권력자의 부당함을 말해주는데 조력하는 바가 없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문학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문학은 그것이 갖는 시대정신과 작가정신을 제외하고도 글이 갖는 정신세계의 표현력과 이의 공감을 통한 소통의 구실이 있기 때문이다.
첫머리 시에서 보듯이 유배자인 약천의 시선이 아니라 하더라도 망운산은 본래 절경이고, 시대와 인물을 초월하여 지금도 수많은 등산객을 불러들이고, 수많은 문인들의 노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유배자들이 그 유배된 사실이 주는 극진함으로써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지고의 문학작품을 남겼다고 하더라도 그것이야말로 우리고장 남해가 주는 특수함이고 문학하는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문학의 은혜로움이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이 같은 모든 것이 다 이곳으로 유배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지역적 특수성과 그것을 글재주로 표현할 줄 알아서 남겨지게 된 문학의 소이연으로 볼 수밖에 없을진대, 그것이 어떤 사건과의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문학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다는 귀결에 도달하고 만다는 점이다.
남해가 제 아무리 유배지로서 이름난 곳이라 하더라도 문학이 있어 그 결과가 드러날 수 있었고, 그 문학을 더욱 빛나게 살려내야 하며, 그 얼과 작품성을 고장의 발전에 디딤돌로 승화시켜야 한다.
새로운 남해의 창조를 위한 새로운 문학이 요구된다고 한다면 ‘남해유배문학관’은 그야말로 제대로 지어진 이름이 될 것이고, 그에 상응한 건물이 지어져야 하며, 그에 상응한 내용으로 구비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만약 이 같은 문제가 방향이 잘못 잡혔거나, 문인단체의 난립과 같은 사소한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했다면 대승적 차원에서 재고돼야 할 것이다.
‘남해유배문학관’은 단순히 남해군민의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기도 한만큼 소의를 배제하고 대의를 좇음이 마땅할 것이다.
 시간이 얼마가 더 걸리더라도 ‘남해유배문학관’은 반드시 문학관으로 지어져야 한다. 설계변경을 해야 하고 예산의 증액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여기에 남해문인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의 실현을 위해 가진 역량을 쏟지 않고서는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 것이다.

서 관 호
시인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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