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에게 부침(7) - 엄귀손과 홍길동의 우정에 기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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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에게 부침(7) - 엄귀손과 홍길동의 우정에 기대어 -
  • 남해타임즈
  • 승인 2010.01.28 17:41
  • 호수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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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남해 유배문학 공모전 대상 윤정아 作

본지는 남해군과 남해문화원이 주최한 제1회 남해유배문학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윤정아 작가의 소설 ‘벗에게 부침’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길동, 이제 자네를 벗이라 칭하는 것이 내게 남은 마지막 자랑이라네.

서얼과 어울린다 비웃던 이들에게 나의 가장 좋은 벗은 길동 자네라 하는 것이 이리도 큰 기쁨이 될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네.

벗이라 함이 진정으로 마음을 알아주는 이 아니겠는가. 자네야 말로 내 깊은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이이니 이제 천하에 자네를 벗이라 칭하는 것을 꺼리지 않으려 한다네.

내 형편이 이리되고 보니 벗이라 했던 이들 중 절반은 임금의 손에 죽고 절반은 외면하고 있네. 그러나 길동 자네가 있으니 나는 전혀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으이. 이제 죽음을 목도(目睹)하고 보니 이 서찰이 무사히 전달되었으면 하는 소망만 남았을 뿐이네. 자네에게 해가 미치기 전에 말일세.

자네를 잡아들이라는 어명 따위는 애초에 지킬 마음이 없었던 인형이 자네와 닮은 도적을 잡아 길동이 분명하다 밝혔다네. 의금부로 압송한 모양이야. 문제가 된 건 자네라 자처한 이가 이미 여러 명 잡혀 있었다는 것이네. 사정이 난처해지니 판서 어르신이 나서 인형이 잡아온 이가 당신의 아들이다 직접 말씀하셨네.

헌데 스스로 잡힌 자 중 하나가 고문을 당하던 중, 자네는 서도(西道)에 있다 자백을 하였다네. 의심을 품은 임금이 인형과 판서를 친히 국문하였는데 성정이 더더욱 광포해진 임금이 친히 인두를 들었네. 포악함이 드리워진 얼굴에 자비나 이해 따위는 없었네. 임금이 임금이 되기 전, 그와 나 그리고 인형은 동무였네. 궐에 드나들면 같은 스승님께 같은 글을 배우던 동무였단 말일세. 미욱한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이. 임금이 아직 연(燕)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당시, 선왕을 따라 강릉에 갔던 일이 있었지. 호랑이를 잡겠다며 산을 타던 기상은 사람을 해치는 폭압으로 변한지 오래였고 고래를 잡겠다고 바다를 향해 내뿜던 순수함은 어미를 잃은 짐승의 발악에 머물러 있었네.

인형과 판서 어르신께서는 다행히 석방 되었네. 계속 되는 혹독한 고문을 얼마만큼 견디실 지 염려가 되던 중 인형이 잡아들인 도둑이 결국 홍길동이라는 명성을 가슴에 품고 참형(慘刑)을 당하길 원하였다네. 아들과 동생을 잡아 죽인 죄를 평생 가슴에 묻으라는 어명으로 멸문(滅門)은 거두어졌으니 다행이 아니겠는가.

나는 늘 임금을 지지하였네. 그리 할 수밖에 없는 참담함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던 것이야. 간곡한 탄식으로 돌이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한양에 머문 것도 실수였네. 임금은 임금답지 못했고 신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었던 것이야.

임금은 내 앞에서 내 아들을 베었네. 어리둥절한 채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이가 임금이 들고 있는 검을 보고 움찔하였으나 고개를 떨구지는 않았네. 성품이 곧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아이였으이. 진즉 자네에게 보내야 할 아이였는데 그리 하지 못한 아비의 어리석음이 자식을 죽인 셈이네. 혼몽중 잡혀왔는지 의복을 채 갖추지 못한 아내에게는 사약을 내리더군. 피를 토한 뒤 절명했네. 임금은 나를 죽이지는 않았네. 다리를 꺾고 팔을 부러뜨린 후 곤장 일 백 대를 치고는 옥에 가두었네. 아이는 나라의 역적인 자네와 친분을 나눈 대가로 목숨을 거두었다 하더니 아내는 자네가 보내 준 은자 때문에 죽였다 하더군.

허망한 말일세. 지지 해 줄 벗 하나 조정에 두지 못했으니 제대로 살지 못한 것 같네. 친분이야 버릴 것이 아니고 은자야 자네 어머님께 건네어진 것을 말할 필요가 없었네. 나를 죽일 구실이 필요한 왕이었으니 대꾸하면 무엇 하겠는가. 나를 죽이는 것이 엄숙위 마마를 해하기 위한 이유가 될 것이 분명한 상황이라네.

요사이 의금부는 선왕에게 총애를 받았거나 대왕대비전과 교분이 있는 자들에 대한 고문이 종일토록 끊이지 않고 있다네. 그들의 목숨이 하루살이와 다를 바 없다네. 변명한다 한들 억울하다 한들 귀 기울이는 이 하나 없고 어서 죽어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고통이 끝나기를 바라는 이가 대부분이라네. 오늘도 대왕대비전에 문안을 올렸다는 이유로 압슬(壓膝)당한 자도 여럿 되고 임금이 베어버린 육신을 거두었다 손목이 잘린 이는 헤아릴 수도 없으이.

국문 중에야 자네 무리를 활빈당(活貧黨)이라 한다 들었네. 길동 자네가 스스로 지은 것인지 백성들이 칭송하는 것인지 혹은 조정에서 두려움으로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궁핍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담긴 좋은 이름이네. 자네와 같은 인재가 가슴에 품은 뜻을 어디다 내려놓아야 할지 걱정이었으나 활빈당(活貧黨)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니 푸근하여지더군. 선한 이들을 위해 가장 좋은 것들을 베푼다면 그것이 바로 하늘의 뜻이고 바르게 사는 길이 아니겠는가.

늘 재주가 용한 설수가 어찌 수를 내었는지 밤마다 옥을 드나들며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네. 이 서찰도 설수에게 받아 적도록 하고 있네. 내일은 임금이 친히 국문한다 하니 어느 쪽으로든 결정이 날 듯 싶으이. 임금의 변덕으로 풀려난다한들 목숨을 연명해 나가기가 힘들 듯 싶어 설수에게는 오늘밤 이 서찰을 가지고 떠나라 하였네. 발이 빠르고 영민한 아이이니 조정이 돌아가는 모양새를 잘 설명할 것이라 생각되네.

떠날 준비를 마칠 때까지 남해에 머물겠다했는가. 동래 현감을 지낼 때 유람삼아 한 번 들린 적이 있었네. 절경만큼 좋은 것이 인심이었던 곳이니 자네의 뜻을 따르는 백성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네.

없는 것이 흉이 되지 않고 모자란 것도 흠이 되지 않고 반상의 구별이 있으나 예(禮)로 다스릴만하고 계급의 차별은 있으나 인(仁)으로 덮어진다 칭찬할만한, 사람이 사람노릇하기 좋은 땅이었네. 남해가 조선 땅이 아니라하면 게서 머물라 하고 싶으나 이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미련한 인사의 헛된 욕심일 것이니 준비가 끝나는 대로 속히 떠나도록 하게. 왜(倭)도 좋고 명(明)도 좋고 더 멀리도 좋을 것일세. 임금이 성정을 되찾으면 좋으련만 그리 될 가능성이 적으니 되도록이면 준비된 배가 허락하는 한 먼 바다로 떠나야 하네. 자네를 따르는 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어서 빨리 떠나야 할 것이야. 부탁이니 나에 대한 미련은 접도록 하게.

설수가 인솔하여 떠나는 이들을 부탁하네. 나를 키운 유모와 그 식솔들이네. 서현이 낳은 아이를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네. 새벽닭이 울기 전 설수를 보내야 하여 이만 쓰겠네. 다시 만날 기약을 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네.

경신년(1500) 십이월

의금부에서 벗에게 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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