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속절없이 가는 것 같소. 당신을 만나 둥지를 튼지 어언 37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려.
우리가 함께한 세월을 돌아보면 언제 이만큼 흘렀나싶기도 하지만 그 세월 속에 얼룩진 눈물, 웃음, 한숨, 기쁨의 조각들은 어느새 한 폭의 모자이크 그림이 되어 버렸소.
당신의 그 알뜰함과 부지런함 그리고 억척스러움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이렇게 웃을 수 있지 않나 하오. 또 앞으로 변함없이 이렇게 웃으며 살아가리라 믿고 싶소.
외동아들인 나에게 시집와서 삼형제를 낳고 키워준 당신에게 내 무슨말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겠소. 당신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가장 값진 보물이라 생각하오. 스스로를 태워가며 어둠을 밝히는 촛불 같은 당신의 삶은 내 생이 다할 때까지 따스한 온기로 내안에 남을 것이오.
여보, 내 성질이 왜 그런지 당신에게 잘해주어야지 몇 번을 다짐하지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은 항상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말들뿐이라서 미안하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타고난 내 천성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미국에 있는 우리 강윤이가 어릴 적 궂은 병으로 서울에서 입원하고 있을 때 소리없이 눈물짓는 당신을 보고 코끝이 시큰해지면서도 남자라는 이유로 헛기침 한번과 하늘 한번 쳐다보는 것으로 눈물을 대신하며 가장으로서 의젓한 척 했던 이 못난 사람이 당신의 남편이었소.
당신의 등이라도 한번 다독거려주었다면 좋았으리라마는 타고난 내 성격 때문에 그러지 못했던 내 행동에 당신이 서운했을 그때도 이제는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소.
세상을 살아가는 이상 고민과 고통은 누구에게나 벅찬 필연적 굴레지만 좌절하거나 굴복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지혜와 용기를 나누며 살아가자고 이 지면을 통해 부탁하고 싶소.
결혼한지 37년 세월이 흘렀지만 남들처럼 호강 한번 시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려.
8년 전 25년 근속휴가로 다녀온 중국여행 때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비행기 안에서 천진한 모습으로 손뼉치며 좋아하던 당신의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과연 무엇을 위해 달려왔나 되돌아보게 만들었소. 그나마 회사의 배려 덕분에 당신에게 웃음을 선물할 수 있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오. 33년동안 정붙인 회사도 올해로 정년퇴직이구려.
조그만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당신. 우리 인생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 마지막 그날까지 손을 꼭 잡고 힘차고 행복하게 살아갑시다. 나는 당신의 든든한 기둥이 되고 당신은 나의 주춧돌이 돼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길을 걸어갑시다.
여태 살아오면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해 미안합니다. 늦었지만 다시 태어나도 당신을 만나 영원히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 아들 모두 결혼시키고 손녀들을 보며 보람을 느껴 봅시다.
서면 정포 류인종 향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