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부르는 노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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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부르는 노래(6)
  • 남해타임즈
  • 승인 2010.03.19 21:52
  • 호수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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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남해 유배문학 공모전 입선 정옥희 作

여기 온 뒤로 여러 날 물 한 모금으로 끼니를 때웠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몸은 마를 대로 말라갔지만 오히려 정신은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는 갑자기 무엇이 생각난 듯 몸을 일으켰다. 현기증이 나면서 몸이 휘청거렸다. 그는 여기 온 뒤로 자신이 마셨던 물줄기가 흐르던 곳으로 가 보기로 했다. 그는 불현듯 그곳에 조그만 샘을 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 어떤 알 수 없는 설렘 같은 것이 스쳤다. 내친김에 마을로 내려가 괭이와 호미를 빌려왔다. 한 이틀 정도면 끝이 날 것 같았다. 이틀이 아니라 사흘이면 어떻고 나흘이면 어떻겠는가. 어차피 기약없는 시간인데…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느긋해지면서 천천히 그 일에 재미를 붙여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우선 물이 고일 수 있도록 적당한 크기의 자리를 만든 뒤 괭이로 파 내려갔다. 괭이 날이 자꾸만 돌부리에 부딪쳐 튀어 올랐다.

처음 해본 괭이질은 그에게 무척 힘든 일이었다. 웬만큼 지나자 흙과 돌을 파 낸 자리에 서서히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담길 곳이 없어 흘러가 버리던 물이 흠을 파 주자 그곳으로 모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주위에 널려있는 작은 돌들을 주워와 웅덩이 안을 빙 둘러 쌓았다. 눈대중으로 해 본 것인데 일은 별 무리없이 진행되었다.

어느새 그는 우물 파는 일에 푹 빠져 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몰두해 있던 그가 허리를 폈을 때는 해가 기울어 주위의 사물들이 긴 그림자를 늘어뜨린 뒤였다.

그는 남은 일들을 다음 날로 미루고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한 뒤의 밥맛은 다른 때보다 훨씬 좋았다. 아무런 잡념 없이 며칠이 흘러갔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잠도 잘 잘 수 있었다. 단순노동이 그에게 커다란 치유 효과로 작용했던 것이다.

작은 샘이 만들어지자 쪽박 하나를 가져다 띄워 두었다. 제법 샘의 모양이 갖추어지자 마음이 뿌듯했다.

다음으로 집 주위의 칡넝쿨들을 걷어내기로 했다.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아무렇게나 가지를 뻗친 동백나무도 모양을 내어주기로 했다.

그런 일마저도 그에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잡생각을 떨쳐보려고 시작한 일도 차츰 흥미를 잃어갔다. 그나마 낮에는 그런저런 일을 만들어 시간을 보냈지만 어둠이 내리고 나면, 그는 방 한가운데 멍하니 앉아 밤새도록 앵강만 파도소리를 듣다가 새벽이 되기 일쑤였다. 파도는 그의 심중을 후벼파듯 지척에서 들려왔다.

노도의 밤은 바람과 파도 소리 뿐 사위는 무서울 정도로 적막했다. 그럴수록 그는 어머니가 더욱 간절해졌다. 지금쯤 어머니는 등잔불 아래서 바느질을 하고 계실 것이다. 언제 신게 될지도 모르는 아들의 버선을 깁고 옷을 지으며 방바닥에 등 붙이는 일도 맘 편찮아 하실 것이다.

한 달음에 달려가면 금방이라도 어머니가 계신 방 문고리에 손이 닿을 것 같아 그는 안절부절 못할 때도 있다. 그러다 잠깐 잠이 들면 어김없이 그리운 어머니 곁으로 가곤 했다. 어머니와 아내가 버선발로 달려 나오고 두 아이들과 조카들이 품에 안기는 꿈을 꾸며 즐거워하다 깨 보면 꿈이었다. 그는 꿈과 현실 속을 오가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노도는 바람만 없으면 파도소리도 멀어져 버리고 괴괴할 정도로 조용했다. 가끔 짐승 우는 소리가 정적을 깨우곤 한다. 꿈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온 어느 날, 보름이 가까웠는지 밖은 나뭇잎 잎맥이 다 보일 정도로 환했다. 쏟아지는 달빛아래 서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더 북받쳐 올랐다. 어머니도 저 달을 보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그는 달빛아래 장성처럼 서서 고향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울 밖 검붉은 익모초 열매가 고향집 뒤안의 그것처럼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이곳에 온지도 어느 덧 몇 달이 지나고 있었다. 노도는 사방이 바다인데도 여름 내내 무더위가 극성을 부렸다. 그는 자꾸만 쇠약해져가는 심신을 추슬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선 기다리던 한양소식도 들을 겸 향교에 들러보기로 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두 차례씩 향교에 나가 그곳 유생들과 교류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들었다. 언제나 신통한 소식을 들려오지 않았다. 나라 밖은 날로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데 조정은 당파 간 파벌싸움에만 힘을 쏟아 붓고 있었다. 향교에 나갔다 온 날은 더욱 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 날이면 그는 밤을 새워 글을 짓곤 했다.

어머니를 향한 절절한 마음은 시가 되고 이야기가 되어 갔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뭔가에 몰두하지 않으면 시간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럭저럭 이곳의 생활도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한양에서는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직접 어머니를 돌봐 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그는 시와 이야기를 지으며 달래고 있었다. 어머니의 상심을 들어 드리기 위해 그는 혼신을 다해 글을 지었다. 눈이 짓무르고 엉덩이에 욕창이 난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것 밖에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비통했다. 그는 때때로 정신이 혼미해져 어머니를 부르며 집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정신이 들면 자신을 자책하고 그러면서 하루하루 견뎌 나갔다.

그가 지은 이야기와 시들은 인편을 통해 어머니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한양에서 돌아 온 소식은 그를 언제나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병세가 날로 더해간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는 어쩔 줄 몰라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실성한 사람처럼 돌아다니곤 했다. 요즘 들어 그는 꿈에서 더 자주 어머니를 뵙느다. 어젯밤에도 어머니를 목이 터져라 부르다 꿈에서 깼다. 잠에서 깨어나면 불길한 생각 때문에 다시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밖을 서성이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김만중은 그렇게 가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정신도 차릴 겸 방 밖으로 나왔다. 건너 보이는 금산은 한참 가을이 깊어졌는지 성글어진 나뭇가지들로 인해 산의 형체가 훤히 드러나보였다. 그는 변해가는 산천의 모습들에서 그나마 세월 가는 것을 짐작하곤 했다.

금산은 유명한 기도처인 보리암이 있는 곳이다. 그는 선천에서 만났던 한 노승을 생각했다. 그와 나누었던 짧은 대화에 대해 아쉬움을 가지고 있던 그였다. 김만중은 정통 성리학을 계승한 학자였지만 서양 학문이나 다른 사상에 대해서도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불교에 배태적인 당시의 분위기와는 달리 그는 불교에 대한 인식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유배지에서 겪는 심리적 고통을 덜기위해 그 당시 지식층이었던 승려들과의 교류가 필요했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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