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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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한개’
  • 김경순 어린이책시민연대
  • 승인 2010.03.26 21:59
  • 호수 1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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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야야가 너거만 했을 때 이야기야’라고 시작해 ‘야야가 너거만 했을 때 달걀 한개로 모두 그렇게 기쁘고 행복했던 이야기야’ 로 끝맺는 이 책은 작가가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정겨운 사투리로 정감 있게 풀어내는 이야기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닭이나 달걀이지만 다들 어렵던 시절 이것들은 귀한 살림 밑천이었고 마음을 전하는 소중한 선물이었다.

달걀은 모아서 장에 내다팔아 간 갈치나 아버지 약을 사고, 할머니 상에나 오르는 귀한 달걀찜이나 열셋이나 되는 식솔을 거느린 아버지의 보양식인 달걀부침이 된다.

또 선생님 병문안에 선물로 보내고 선생님은 이것들을 모아 반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달걀파티를 벌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흐뭇한 것은 달걀 한개 속에 담긴 ‘따뜻한 마음’ 이 전해 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고무신 한켤레나 밥상 덮개 하나에 얽힌 이야기라도 상관이 없을 듯싶다.

꾸밈없는 아이들 마음이 드러나고 아빠나 할머니를 위한 엄마의 깊은 배려가 배어있고 선생님의 속 깊은 마음이 담겨있다면 말이다.

옆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들려주듯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이 책은 옛이야기나 창작물과 다른 푸근하고 진솔한 매력이 있다. 특히 40대 이상이라면 추억 속으로 빠져드는 과거로의 행복한 여행을 하게 만든다.

이 여행이 더욱 생생해지는 것은 사실적이면서도 정감 있는 그림 덕분이기도 하다.

마루 위에 걸린 사진들, 책 보따리, 조리개, 둥글 접이 상, 팔각 성냥 통, 반찬덮개가 걸린 부엌 정경, 옷장 대용의 꽃무늬 천 걸개가 있는 안방, 칫솔통 …. 하나도 허투루 그린 것이 없다. ‘정말 그랬었지’ 추억을 되짚으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 하나하나마다 더 많은 얘기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또 이 책에는 건강하고 행복한 닭들의 한해살이가 나온다. 땅을 헤집고 지렁이를 패댕이 치며 먹이를 찾고, 알 낳기가 급하게 달려가 놀기 바쁘다. 무엇보다도 알을 품어 병아리를 까고 새끼들을 품에 거두어 키우는 모성을 맘껏 누릴 수 있는 닭들이다.

자연 속에서 또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닭의 일생을 누리기에 행복하다. (비록 새봄이 나기까지 이래저래 대부분 잡혀 먹힌다지만)

움직일 수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양계장에 갇혀 사료 먹고 항생제 먹으며 알 낳는 기계로 전락해 버린 요즘 닭들…, 자연을 거스르며 편의만 추구하는 몹쓸 현대 문명에 분노하다 양계장의 닭처럼 공부하는 기계로 내몰리는 우리 아이들이 순간 오버랩 되어 찔끔해진다.

흔히 요즘아이들은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소중함에 대한 생각이 없든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며 개탄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자연과 먼 환경과 생활 속에 아이들을 몰아넣고 순박하고 넉넉한 마음을 지니기를 기대한다는 게 모순이라는 자책이 든다.

우리 아이들이 먼 훗날에 내가 너희만 했을 때는 말이야 하면서 풀어낼 이야기에는 과연 어떤 내용들이 담겨질까.

잠깐 옆길로 가서 아버지께 달걀부침을 해드리는 대목에서 ‘애들이 침을 꼴깍이는데 저 아버지는 달걀부침이 목에 넘어갈까’ 하며 거슬렸지만 대가족을 거느린 고달픈 남편을 배려하는 엄마의 깊은 마음을 보고 덮어가기로 했다.

‘너의 아버지 몸띵이 하나에 딸린 식구가 몇이고, 열섯이다….’ 엄마의 말에 부끄러워하는 아이를 보며 또 다른 교육이 되었겠구나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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