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의 전고(典故)는 하서 김인후가 쓴 심청전 일 가능성 높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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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의 전고(典故)는 하서 김인후가 쓴 심청전 일 가능성 높아 (1)
  • 박성재(남해역사연구회 유배문화연구소장)
  • 승인 2010.03.26 22:03
  • 호수 1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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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포소설과 심청전에 형상된 관음의 동일성 중심으로 -

선천적소에서 구운몽 지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구운몽’의 쟁점이었던 저작시기와 관련하여 ‘서포연보’를 증거로 남해설을 일축하고 선천설을 확정지었으며, 관련학계에서는 ‘서포연보’의 문헌적 가치와, 편찬시기 및 편찬자, 김만중 연구와 관련된 정보를 광범위하게 제시한 바 있었다.

그러나 ‘서포연보’를 증거로 ‘구운몽’의 저작시기가 선천적소설을 둘러싸고 분분하게 주장하게 된 것을 선천적소설로 자리매김 한다는 것은 중요한 문헌적 고증이라 할 수 없겠다. 왜냐하면 ‘서포연보’가 김만중에 의해 직접 기록된 것이 아니라 김만중 사후 김양택(金陽澤, 1712~1777)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보고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서포가 선천적소 생활 중에 ‘구운몽’ 저작에 관련된 문헌상 기록은 찾을 수 없으며, 그 동안에 소설 창작에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했다고 생각할 때 17세기 엘리트 선비가 선천적거에서 불교소설을 2권이나 썼다고 할 수는 없겠다.

조선조 후기의 소설 가운데 그 내용이 심원하고 방대하므로 수준으로나 문학적인 표현의 사상적인 깊이로나 최소한 1년 이상의 창작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측하여 선천배소에서 불교소설인‘사씨남정기’, ‘구운몽’을 집필하는 시기로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서포가 험난한 유배지에서 병들고 노쇠한 자모님의 소식을 듣고 마음의 아픔을 위로할 길이 없이 뜬 구름을 향해 해 저문 날 까마귀 지저기는 소리와 말 울음소리를 모부인에 대한 상념에 젖어 있다고 하여 선천배소에서 ‘구운몽’을 집필하는 시기로 볼 수는 없겠다. 그리고 선천 귀양살이는 숙종 임금이 한양에서 다시 불러주길 기대했던 시기에 이상소설인 ‘구운몽’을 썼다고 할 수는 없겠다.

오히려 3차 유배지 남해 관음영장(觀音靈場)에서 선승인 인성(印成)스님과의 만남 등으로 남해에서 불교의 꽃을 피웠던 시기에 인생의 종말을 예견하면서 세연·혈연을 민연히 체념·정리하던 남해시절에 ‘구운몽’을 지었다고 할 수 있겠다.

 

구운몽의 전고(典故)는 심청전

 

필자는 여기서 서포가 지었다는 구운몽은 김인후가 지었다는 심청전의 전고(典故)를 재구성하였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왜냐 하면, 김만중이 직접 쓴 육필이외의 자료를 보면 사실과 다르게 과장된 대목이 많았음을 김인후가 썼다는 심청전에서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심봉사를 살려낸 보은사 화주승과 심청이 만나는 장면에서 “석교변(石橋邊) 아니거든 성진(性眞)이 아니로다”[각주 : 박혜범, 원홍장과 심청전, p207.참조] 라고 하는 대목은 모든 학자들이나 일반 사람들이 김만중(金萬重)의 구운몽에서 인용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 또한 잘못된 학설이다.

 

위의 글은 보은사 화주승과 심청이 만나는 장면에서 이미 석교(石橋)와 성진(性眞)이 출연하고 있다. 여기서 김만중의 구운몽의 처음의 전고(典故)가 무엇인지 또는 내용이 정확하게 어떠하였는지 전해진 바가 없어 알 길은 없으나 김만중 보다 127년 앞서 태어난 김인후가 이미 구운몽과 유사한 전고(典故)를 보았다는 것이다. 김인후(金麟厚)가 썼다는 성진(性眞)의 책속에 있는 운자(性眞軸中韻)를 보면,

 

渠能得性眞 (거능득성진) 그대는 능히 성(性)의 참을 얻었거니와

我未免心恙 (아미면심양) 나는 마음의 병을 면치 못했네

相對兩忘之 (상대양망지) 서로 대하니 둘 다 잊어버려라

石蓴請一餉 (석순청일향) 청컨대 석순이나 한 톳 보내다오[각주 : 박혜범, 원홍장과 심청전, p202.참조]

 

김인후가 쓴 위의 시는 확실한 물증이다. 여기서 축(軸)은 책을 뜻함이며, 축중(軸中)은 책속에서 본성을 크게 깨달은 성진을 보고 쓴 작품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석순(石蓴)은 자연산 돌김을 칭하던 옛날의 이름을 말하며, 지금의 광양제철이 자리한 전남 광양 해안에서 해작꾼(바다의 농사꾼)들이 생산하던 돌김으로 당시에는 임금에게 진상하던 진귀한 해산물이었으니 용궁에 다녀왔다는 성진에게 빗대어 농을 한 것이겠다.

결국 내용은 김만중이 재구성한 구운몽보다 훨씬 간결한 체였으며, 구운몽의 주인공 성진(性眞)이라는 이름 자체가 금강경의 본성(本性)을 깨달았다는 뜻의 작명이며, 구운몽의 저술지가 섬진강 하류 남해의 유배지에서 썼다는 증거로 보아야 하겠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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