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부르는 노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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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부르는 노래(7)
  • 남해타임즈
  • 승인 2010.03.27 12:41
  • 호수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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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제1회 남해 유배문학 공모전 입선 정옥희 作

본지는 제1회 남해유배문학상 공모전 입선작인 정옥희 작가의 ‘섬에서 부르는 노래’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그는 날이 밝으면 금산을 오르기로 했다. 쇠약한 몸으로 오르기엔 퍽 힘든 산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어쩌면 유학자로서 용납되지 않는 행동일수도 있겠지만 어머니를 위한 일이라면 그런 이유쯤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일념으로 부처님 앞에 앉아 어머니의 병환이 빨리 낫기를 염원하는 작고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는 며칠동안 그곳에 머물기로 했다. 큰스님과의 만남은 그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스님으로부터 듣게 된 불교의 우주관인 12연기설(緣起說)도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연기설은 모든 생명의 태어남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즉 이것으로 인해 저것이 생겨나고 또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것이 연기설의 주 내용이었다. 물론 인간의 인식체계 안에서 가늠될 수 있는 경계는 아니지만 이해와 수긍은 되어졌다. 그가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것은 생(生) 즉, 태어남은 무명(無明)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태어남으로부터 모든 고통이 생겨나며 그것은 욕망과 집착을 끊지 않는 한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生)과 사(死)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인간은 끝없이 고통의 바다를 헤맬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삶에 대한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자신의 인식 체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의 고통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기인된 것인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김만중은 자기를 옭아매고 있던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차근차근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관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생과 사를 둘로 보지 않는 불교의 생사관(生死觀)에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죽음은 윤회하는 과정 속의 한 부분일 뿐 끝이 아니라는 것도 오십을 넘게 살아 온 그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그에게 모든 가치의 근간이 되었던 유교에 있었다. 유교는 학문으로서의 가르침이지 종교에서처럼 내세를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겐 생소한 세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각각의 삶은 인연의 사슬에 얽매여 치르는 하나의 유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삶을 관조할 수 있는 하나의 문이 열리는 듯 했다. 김만중은 보리암에 오기 전보다 훨씬 더 안정을 찾아가는 듯 했다.

며칠이 한 나절처럼 지나갔다. 늦가을, 절 마당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떨어진 이파리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있었다.

금산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는 전보다 더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지었다. 절에서 빌려 온 불경들은 그에게 또 다른 지적호기심을 유발시켰다. 물론 어머니가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전처럼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가을밤은 풀벌레 소리도 애련하게 들렸다. 봄밤에 우는 풀벌레소리와는 그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마당가에 모여 있던 낙엽들이 밤새도록 바람에 끌려 다니며 바닥을 긁어대는 소리가 을씨년스러웠다. 그렇게 가을도 다 지나가고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겨울이 닥치고 있었다.

1689년 12월 22일, 올 겨울 들어 제일 많이 온 눈이다. 밤새도록 펑펑 쏟아진 눈 때문에 노도는 바다위에 뜬 한 송이 흰 연꽃처럼 보였다.

그는 엊저녁 뒤숭숭한 꿈을 떨쳐버리려고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공기를 마셔도 어수선한 생각들은 그를 따라 다녔다. 집주위는 밤새 다녀간 짐승발자국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밖은 햇살을 받은 눈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부셨다. 그는 푹푹 빠지는 눈을 밝고 양지쪽으로 갔다. 양지쪽의 눈은 조금씩 녹고 있는 곳도 있었다. 햇살이 드는 곳에 쭈그리고 앉아 지금쯤 고향집 처마 밑에는 어머니가 걸어둔 무청이 매달려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겨울이면 빠지지 않고 밥상에 오르던 구수한 시래기 국 냄새가 어디선가 나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끓여주신 그 따끈한 국 한 그릇이면 금방이라도 기운을 차릴 것 같았다. 날씨가 차라와 질수록 고향집 구석구석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그는 철이 바뀔 때마다 그 계절에 보았던 어머니를 생각해냈다.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에서거나, 계절마다 다른 새의 울음소리들에서조차 어머니를 기억해내곤 했다. 그에겐 풀포기 하나 꽃 한 송이, 부는 바람과 구름 한 점 속에도 어머니가 있었다. 그에게는 세상 모든 것들이 어머니와 관계된 것이거나 아닌 것으로 나뉘어졌다. 그는 또 그렇게 하나하나 어머니를 불러내고 있었다.

그는 양지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었다. 동지섣달이 지나고 정월도 가고나면 봄이 그리 머지 않았다. 그가 처음 한양을 떠났을 때가 윤 3월이었으니 그때쯤이면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꼬박 일 년이 되는 셈이다. 어쩌면 오는 봄에는 한양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올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도 해 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엄동설한도 견딜만해졌다.

햇살이 있는 곳은 오히려 방보다 더 따뜻했다. 그는 또 졸음이 왔다. 요즘 그의 버릇은 깜박깜박 자기도 모르는 새 잠이 드는 것이었다. 병든 닭처럼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에게서 지난날 대제학까지 지낸 사람의 모습이라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쪽같은 성정과 괄괄한 기상은 온데간데없고 초라하게 늙어가는 시골의 무지랭이 늙은이로 보일 뿐이었다.

그는 겨울 햇살을 받으며 다시 선잠에 들었다. 꿈속에서 김만중은 자신이 지은 이야기책들을 어머니에게 읽어드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옷소매를 꼭 붙잡고 말없이 바라보고 계셨다.

그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그래도 어머니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신 듯 다른 쪽 손으로 그의 팔을 잡아당기시더니 가만히 얼굴을 어루만지시는 것이었다. 언제나 따뜻하던 어머니의 손은 그날따라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섬뜩한 마음이 들어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조금 떨어져 앉으시더니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시는 것이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이제는 걱정하실 필요 없으시니 마음 편히 가지시라고 거듭 말씀 드렸다. 어머니는 알아들으신 듯 고개를 몇 번 끄덕이시더니 그에게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어머니를 따라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를 내치시며 어서 돌아가라고 사정없이 밀어내셨다. 평소의 어머니 같지 않아 그는 어머니가 몹시 서운하게 느껴졌다.

깜박 졸다 깨어난 그는 꿈에서였지만 어머니에게도 저렇게 냉정한 모습이 있었나 싶어 너무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그런 마음을 털어내려 빗자루를 집어 들고 마당에 쌓인 눈을 쓸어내기 시작했다.

쓸어 낸 눈은 봉분처럼 커다란 무더기로 쌓아졌다. 눈 무더기는 봄이 올 때까지 그대로 쌓여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몸을 움직이자 조금씩 마음을 진정할 수 있었다. 그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았다.

어머니에게 들려드릴 이야기를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 날이 플리면 한양에서 누군가 올 테고 그 편으로 자신이 쓴 이야기책을 꼭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내드린 책을 손에 넣으시고 자식을 대하듯 기뻐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자꾸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이다.

눈은 잠시 그치는가 싶더니 다시 퍼붓기 시작했다. 피골이 상접한 그의 몸뚱이는 방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냉기 때문에 얼음 막대기처럼 굳어갔다. 그는 오직 어머니에 대한 생각 뿐 자신의 몸은 잊어버린 사람 같았다. 그렇게 그의 시와 이야기는 피를 말리는 사모곡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뒤로도 여러 날 눈이 내렸다. 그의 초막은 겨우 흔적만 남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누구도 알아챌 수 없었다. 봄이 오려면 앞으로 더 혹독한 시간들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그 시간을 다 살아내도 봄이 오지 않는 잔인한 계절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해 12월 22일이 지나갔고, 그 뒤로도 노도는 여러날 눈 내리는 소리 밖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버린 섬은 오랫동안 백색 정적에 갇힌 채 어떤 소식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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