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서포소설의 성립과 창작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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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서포소설의 성립과 창작 배경
  • 박성재(남해역사연구회 유배문화연구소장)
  • 승인 2010.04.01 18:29
  • 호수 1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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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포소설과 심청전에 형상된 관음의 동일성 중심으로 -

Ⅰ. 서론

 

서포 김만중의 양대소설인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은 고전 소설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구운몽은 조선 후기 소설사에 끼친 영향이 지대할 뿐만 아니라 그 작품성 또한 범상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 걸맞게 구운몽연구는 이미 방대한 양의 연구 성과를 축적했다.

구운몽의 방대한 연구업적에 힘입어, 구운몽의 다양한 면모가 적지 않게 드러났다. 하지만 이는 구운몽의 연구에서 그만큼 쟁점이 되는 문제들이 많았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필자에게는 그 쟁점중의 하나인 구운몽의 정확한 창작연대를 검토할 수 있도록 한 동기가 되었다.

이와 관련된 연구사를 조망해 보면, 지금까지 한국문학의 한 걸작품인 사씨남정기에 대한 창작연대는 남해적거(南海謫居)시라고 하면서, 구운몽이란 작품의 창작연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김만중이 구운몽을 언제 어디서 지었는가에 대해선 종래 학자들 간에 선천설과 남해설로 양론이 있어왔다.

이에 대한 문제들에 논의가 집중되었으나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한 채 선천설로 굳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하자면, 구운몽의 창작연대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남해설’로 확정되어 왔다.

그러나 1992년에 일본 천리대학에서 발견된 작자미상의 ‘서포연보’에 따라 선천 유배 때 어머님을 위로하기 위해 보낸 저서 내용 중에 몽환(夢幻)이란 글귀를 구운몽이라 주장하지만 몽환이 구운몽이라고 확신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뿐만 아니라, ‘구운몽을 일야(一夜)에 지었다’는 것은 잘못된 기록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선행 연구에서 논의 된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선천설과 남해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정확한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구운몽의 정확한 창작연대의 논거자료라고 하는 서포연보(西浦年譜)나 삼관기(三官記)는 김만중이 직접 기록한 자료가 아니다.

이들 기록의 사실 여부를 둘러싸고 기왕의 학계에서는 끊임없이 문제 제기가 있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더욱이 기록원문 자체가 너무나 소략할 뿐만 아니라 이를 보완시켜줄 그 이상의 자료들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록 원문 자체의 해석에 있어 유추해석이나 확대해석으로 그 본질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김만중의 육필인 서포집· 서포만필과 관음영장(觀音靈場)인 남해적소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본 관점은 김만중의 후손들이 기록한 서포연보나 삼관기에서 찾기보다는 그의 폭넓은 학문체계와 융합된 종교·사상과 파란만장한 관직생활과 그가 흠모했던 인물 등 종합적인 견지에서 밝혀야 할 것이다.

또 같은 문제를 두고 논자의 의견을 제시하는 선에서 머무를 뿐, 타당성 있는 논거를 제시하지 못한 논문들도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와 같이 확정되지도 않은 자료에 의거 선천설이 옳다고 발표된 논문이 학계에서 학위논문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는 정확한 자료를 발굴하여 창작연대를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은 오는 7월 남해유배문학관 준공예정일 이전에 ‘구운몽의 고장 남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만장일치로 흡족한 확정을 보는 것이 정말 시급한 터다.

따라서 이 일은 지방자치단체 남해에서 태를 묻은 남해군민들과 향우, 그리고 서포문학 연구자들에게 남겨진 책무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자료는 ‘경남 남해(南海) 관음영장(觀音靈場)’ 과 ‘전남 곡성의 관음사 사적’과 그리고 ‘박혜범 저 원홍장과 심청전’, ‘박순호 소장 효녀실시 심청’을 비교 인용하였다.

김만중이 불교사상을 배경으로 한 사씨남정기와 구운몽(九雲夢)을 창작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남해 관음영장에서 관음사상이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포의 작품인 구운몽에서 이미 관음화상에 대한 소재를 이끌어 내어 관음도(觀音圖)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고 있다. 심청전은 광대무변한 관세음보살님의 신묘하신 능력과 역사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 글에서 거론하려는 구운몽의 창작연대에 대하여, 이제까지의 선행 연구업적과는 다른 관점에서 재검토해 보려 한다.

즉, 김만중 보다 127년 앞서 태어난 유학자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가 전남 곡성의 관음사 사적을 발췌 인용하여 썼다는 심청전과, 김만중이 관음영장(觀音靈場)인 남해적소에서 썼다는 사씨남정기에 형상된 관음신앙의 동질성과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가 구운몽과 유사한 전고(典故)를 보았다는 관련 자료에 의거 밝혀보고자 한다.

부디 이 자료가 작금 시비와 논란이 끊이지 않는 구운몽의 창작연대를 밝히는 배경이 되기를 바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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