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서포소설의 성립과 창작 배경
상태바
특별기고- 서포소설의 성립과 창작 배경
  • 박성재(남해역사연구회 유배문화연구소장, 국사편찬위
  • 승인 2010.04.09 18:35
  • 호수 19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서포소설과 심청전에 형상된 관음의 동일성 중심으로 -

Ⅱ. 본론

 
1. 서포소설과 관음

 
1) 사씨남정기에 형상된 관음

사씨남정기는 중국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운몽과 동일하다. 그러나 사씨남정기에서는 구운몽과는 달리, 유가적 인물의 삶을 중심으로 삼으면서 서사적인 전개를 이끌어 가고 있다. 사씨남정기의 특성은 다른 가정소설류와는 달리, 주요 인물들의 모든 생을 바라보면서 위기 때마다 그들을 구원하고 이끌어 주는 관음보살이 상위적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성경은 사씨남정기에서 서포가 ‘남정(南征)’이라는 표제를 대표적인 소재로 내건 이유를 열녀의 표상이 있는 유가적 성지(聖地)와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이 머문다는 남해 성지(聖地)를 하나의 공간으로 교직시키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구운몽에서 승려 이야기 속에서 유가(儒家)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듯이, 사씨남정기에서는 유가(儒家)의 이야기 속에 불가(佛家)의 이야기를 내포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것이다. 즉, 사씨남정기에서는 유가(儒家) 열녀(烈女) 이야기와 불가(佛家)의 관음(觀音)의 구제 이야기를 연결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사씨의 남행을 화엄경(華嚴經), 더 구체적으로는 ‘관음도(觀音圖)의 선재동자(善才童子)’의 선지식 찾기 소재를 원천으로 삼아 그 의미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설성경은 “화엄경의 선재동자의 남순(南巡)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사씨의 남정을 통해 은유시키고 있는 까닭은, 구원의 보살인 관음을 향해 가는 남해의 길이 된다면 이비(二妃)가 있는 동정호나 군산과의 중의적인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서포의 동일 작품인 구운몽에서 이미 관음화상에 대한 소재를 이끌어 내어 관음도(觀音圖)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남해의 지명과 관음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그러나 구운몽과 심청전에서는 남해라는 구체적인 지명이 거론되지 않고, 막연한 가운데 중토(中土)에서 가장 먼 형산을 중심 무대로 설정하여 구의산(九疑山)과 동정호(洞庭湖)와 소상강(瀟湘江)을 거론하였다. 설성경은 “구운몽에서는 불도를 깨치기 위해 남해(南海) 관음(觀音)을 찾아가자는 제의 정도”로만 서술하였다고 한다.

사씨남정기는 남해 관음을 찾아간다, 즉 남정(南征)을 말한다면, 구운몽에서도 남해라는 구체적인 지명은 거론되지 않는다. 그러나 형산을 중심무대로 하여 구의산과 동정호의 축소판인 남해 앵강만을 거론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불도(佛道)를 깨치기 위해 남해 관음을 찾아 남순(南巡) 하기 위해서 남해 적소와 마주하는 보광산 보리암을 찾아가자는 제의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운몽도 남해(南海) 관음(觀音)을 찾아가는 데서부터 시작했다고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사씨남정기는 남해(南海) 관음영장(觀音靈場)에서 저술되었다. 불도를 깨치기 위해 남해(南海) 관음(觀音)을 찾아가는 남정(南征)에서는 구운몽보다는 구체적으로 남해 관음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구운몽에서도 ‘불도를 깨치기 위해 남해 관음’을 찾아가자는 공통적인 제의를 안고 서술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남해 관음을 찾아 나서는 목표나 의미를 불가와 유가의 공통된 성지인 남해 관음영장(觀音靈場)에서 관음보살과 열녀(烈女) 신(神)들이 머무는 신성 공간으로 새롭게 재구성하여 창작한 것이다.


2) 구운몽의 모티브가 된 수월관음도

사씨남정기의 모티브가 된 수월관음도에서, 설성경은 구운몽에서 이미 관음화상에 대한 소재를 이끌어 내어 관음도(觀音圖)에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 개작자는 서포의 구운몽 텍스트를 해설할 때 관음보살과 연계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즉, 신번 구운몽의 서(序)에서 보면, 양소유가 낙양 천진교 주루에서 계섬월을 처음 만날 때, 그의 모습을 해수(海水) 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에 비유하는 다음과 같은 서술 장면이 첨가되어 제시되고 있다.[각주: 설성경, 서포소설에 나타난 禪 과 觀音, pp. 201~202(서술장면의 인용문은 현대어로 풀어썼다.]

“잠간 취한 눈을 들어 여러 기생을 보니 이십 여인이 각기 지조가 있으되 오직 한 사람이 단정히 앉아 풍류도 아니하고, 중략(中略). 맑은 용모와 아리따운 태도 진실로 천하일색이라 바라보면 남해 관음보살이 홀로 희소 가운데 선 것 같으니 생이 심신이 요란하여, (중략). 그 미인이 또한 양생을 돌아보니 가만히 추파로 정을 보내더라.”

이렇게 후대에 와서 첨삭되기도 하는 관음소재는 구운몽의 원작 후반부에도 나타난다. 8선녀가 8여인이라는 각각 상이한 처지에서 태어나 중국 곳곳에 흩어져 성장하다가, 양소유를 차례로 만나 처첩이 된다. 8명의 여성들이 하나의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을 때, 8여인의 대표인 제1 서열의 부인 정경패가 주축이 되어 관음화상 앞에서 서원을 하게 된다. 또, 양소유가 화갑연을 지낸 다음 불가(佛家)에 귀의하려고 할 때, ‘남해의 관음’을 찾겠다는 구체적인 표현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서포는 남해 관음영장(觀音靈場)인 적소에서 어머니 그리워 처음 소설을 시도할 때 목적소설인 사씨남정기에서 여성독자를 염두에 두고 대중들에게 익숙한 존재인 관음상(觀音像) 내지 관음보살도(觀音菩薩圖)를 소재로 삼게 된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구운몽 역시 3차 유배지인 남해에서 이제는 살아서 한양에 갈수 없다는 절박한 심경에서 ‘남해의 관음’을 찾겠다는 구체적인 표현에서 이상소설인 구운몽을 썼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2차 유배지인 선천에서는 불교에 천착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서포는 1년 남짓한 2차 선천유배생활을 하면서 어느 노승과의 만남에서 유교와 불교의 동이(同異)점에 대한 의문점을 남해적소에서 알게 되었다.

서포는 그 의문점을 풀기위해 남해적소에 당도하기 전에 남해향교에서 주자어류 전질을 빌려가서 완독했다. 뿐만 아니라, 남해적소에서 선승(禪僧)인 영취산인 인성(印成) 스님과의 만남으로 선(禪)에 입문하였으며, 서포거사라고 자처 하면서 유마경(維摩經)에 심취하여 유마거사(維摩居士)의 경지를 지향했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하여 서포는 교학(敎學)에 능통한 불학자의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대승경전과 전등록(傳燈錄) 등 상당량의 선학서(禪學書)를 독파 ? 소화했던 것이 확실하다. 특히 금강경을 통한 공사상(空思想) 등에 대하여 일가견을 체득하고 있었다. 결국 불교의 꽃을 남해에서 피웠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을 총괄적으로 결론짓건대 서포는 ‘남해의 관음’을 찾기 위해 금강경을 대상으로 선(禪)의 형식을 활용하여 남해적소에서 어머니를 위하여 구운몽을 만들었다 함은 부정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