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차부, 경남차부 시절 남해의 아침을 열어가는 출발의 시동소리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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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차부, 경남차부 시절 남해의 아침을 열어가는 출발의 시동소리 그리워
  • 이처기
  • 승인 2010.04.22 20:45
  • 호수 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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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기의 남해이야기 �

1973년 6월 22일 남해대교가 개통되었으니까 그 이전의 남해 대중교통 이야기이다.

남해는 도서이기에 군내 교통이 불편하였고 거의가 배편으로 부산 여수 삼천포를 내왕하였다. 노량도선 금남호, 미조~삼천포간 순항선 망운호, 남해~여수간 여진호, 마산가는 천신호, 부산~여수간 한려수도를 지나며 부산가는 남해사람을 실어 나르던 남해호, 창경호, 갑성호, 태안호, 경복호 등은 남해 사람들을 육지로 안내해 주는 큰 교통수단이었다.

해방 후 군내 대중교통은 두 여객, 신흥차부-(남해여객)와 경남차부-(남흥여객)가 맡아 왔다. 당시 군내지선은 설천~노량선, 서상~중현선, 지족~은점선, 홍현~평산선, 상주~미조선 정도였다. 대곡에서 중현을 넘어가는 버스나 갈화로 가는 정기버스는 없었고, 삼동 쪽 물건 미조로 가는 물미도로는 해변 산길이었고, 내산 봉화 가는 길이나 남면 상가로 가는 길도 비포장 산길이었으며, 정기버스는 다니지 않았다. 창선사람들은 창선대교가 건립되지 않았으니까 거의 배편을 이용했다.

인구가 10만이 훨씬 넘던 남해사람들의 발길이 된 신흥여객과 경남여객은 건전하게 영업을 하며 군민들에게 서비스를 해왔다. 두 여객차부는 남해읍사거리 중심가 터미널에서 남해의 아침을 열어가는 출발의 시동을 걸었다.

 

지순한 염원으로 아아한 망운산아

온 향리 그 그리메 고즈너기 비추구나

북소리 울려 전진하자

새 아침의 시발지

<이처기 시 남해찬가 ‘남해읍’ 부분>

 

이렇게 남해읍은 남해의 중심지였으며 아침에 첫출발하는 버스의 시동소리는 남해사람들을 일깨우고 육지로 가서 성공하라는 희망의 소리로 울려 퍼졌다. 그러나 60여년의 역사를 거쳐 오며 남해대중교통도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2007년 남해여객이 경영난으로 남해교통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되니 지금은 남흥여객이 유일하게 남해대중교통의 동맥이 되어 운행되고 있다. 남해중심가 버스터미널은 국도 19호선 간선도로 지나며 교통체증이 심하고 수용의

한계를 견뎌내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1995년 대우건설이 지금의 공용터미널을 기공하고 1998년 준공하여 번잡하던 체증이 해소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얼마 전 남해시대신문 기사(2010. 3. 25일자 김종수 기자) ‘남흥여객과 남해의 부흥을 꿈꾸며’란 정책제안릴레이를 읽어본 필자는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먼저 여객이름을 남흥여객에서 ‘보물섬여객’으로 바꾸어(필자는 ‘남흥여객’에서 지역이름인 ‘남해여객’으로 했으면 하지만) 고객들에게 남해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해야 한다는 안도 고려해 볼만하고 그리고 남해 지역관광홍보, 버스와 정류소에 여행정보제공과 요금체계도 관광지에 걸맞게 다양화 해야 한다는 등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정책제안에 생각을 같이해 본다.

신흥여객(남해여객)과 경남여객(남흥여객)이 분주히 운행되던 시절, 붐비던 남해사거리를 회상해보며 다가오는 남해가 더 새로이 발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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