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 묻혀진 우리의 현대사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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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에 묻혀진 우리의 현대사 재조명
  • 남해타임즈
  • 승인 2010.05.27 14:48
  • 호수 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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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뿌리<김중미 지음 / 검둥소>

내가읽은 책
김 종 금
어린이책시민연대

이 책은 김중미 작가님의 자서전 체험이 바탕이 되어 혼혈 문제와 이주노동자 문제를 교차시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잘 표현해주며 오늘날 우리 사회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골목 안 그 집 허름한 M동에서 놀이방을 운영하는 여주인공(김중미 작가)이 등장한다.
놀이방과 벽을 마주하고 있는 뒷집에서 이른 아침부터 부부 싸움하는 소리가 들리고, 벽이라고 해봤자 밤라이트나 시멘트 블록 한 장으로 대충 쌓은 집이 많다보니 평소에도 방귀소리, 자명종 소리까지 다 들리는 동네다.
그런 동네에서 어느 날 정아와 정아엄마가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채 비가 오는 철길 위에 앉아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매일 반복되는 아빠의 구타와 폭력을 알게 되고 교육열은 커녕 부모의 무지와 폭력에 시달렸던 정아를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아픔을 나누며 지낸다.
삶에 지쳤어도 꿈을 가진 숙녀로 성장한 정아가 어느 날 덜컥 이주노동자인 네팔 청년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그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은 여주인공은 문득 차를 몰아 자신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동두천 미군기지가 있는 동네 보산리를 찾아간다.
우리는 그녀의 뒤를 따라 1970년대 기지촌 풍경 속 아이들의 세계를 함께 여행하게 된다.
언니들이 양공주라는 멸시를 받고 살면서 미국을 동경하고, 미국에 입양되어 가는 것이 소원이었던 경숙이는 결국 미국 장교의 딸로 입양을 가고, 학교를 그만 두고 미군부대에 다니며 오빠들을 대학공부시켰지만 결국 흑인의 아기를 낳게 되는 윤희언니..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발목이 잘려 돌아 온 해자 아버지, 미군을 대상으로 매춘을 하는 해자네 집의 언니들, 늘 겉으로 씩씩하지만 아픔과 불안함을 간직한 해자..
미군 병사였던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에 괴로워했던  혼혈아 재민..
주인공(정원이)이 동두천에 사는 동안 만났던 이들은 어둠 속에 묻혀진 우리의 역사였다. 작가는 그들의 삶을 추상적이지도, 감상적이지도 않게 구체적이고 차분하게, 하지만 낱낱이 들추어낸다. 그리고 그들의 아픈 삶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인간의 삶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경외감이 소설 전반에 흐른다.??
외면당하고 멸시당했던 어둠과 고통의 역사 속의 그들이 우리의 삶과 사회를 일구는 뿌리가 되었듯이,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서 거부되고 추방되는 그들 역시 우리의 뿌리가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아무 미래도 없는 이주노동자라니요? 그럼 난 뭔데요? 나는 미래가 있어요? 선생님 친구처럼 이주노동자를 돕는 활동가는 괜찮고, 이주노동자를 사랑하고 그 사람의 아이을 갖는 건 안 된다는 게 말이 돼요? 도대체 뭐가 달라요? 선생님도 편견으로 가득 찬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었어요? 손바닥 뒤집듯이 그렇게 생각이 바뀔 수 있는 거예요? 선생님은 저랑 자히드 관계를 이해할 줄 알았어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숨이 턱 막혔다. 그것은 단순히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를 사랑하는 정아가 자신의 편이 되어 주던 정원(여주인공)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냥 '다를' 뿐인 사람을 끝까지 '틀린' 사람이라고 우겨대는 한국사회의 단일민족에게 하는 말이었다. 특히나 이해하는 척하면서도 속은 별반 다르지 않는 사람들의 이중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아픔은 오래간다. 아픔은 상처를 바꿔 가며 통증을 준다. 아직도 잔존하지만 혼혈 문제는 하인즈 워드가 이름을 떨치기 전에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등장했던 과거의 유산이었다. 하지만 그 아픔은 이주노동자와 가족 문제로 변태해 여전히 살 속을 파고들며 통증을 가져다 준다. 피부를 뚫고 살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든 "넌 우리와 달라"라는 이름의 거대한 뿌리. 그런데 눈물은 그 상처로 파고들며 뿌리를 거둬 내 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러한 재민이와 정아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 것일까? 작가는 '핏줄이 아닌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이해'를 해답으로 제시한다.  '내 자식'이라는 핏줄에 연연하지 않고  사회에서 함께 기르는 '우리의 아이들'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과 이해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말이다.
기지촌 이야기는 불편하다. 교장선생님이 절대로 혼혈아를 대표선수로 할 수 없다고 반대하는 바람에 축구 실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조재민이 후보 선수를 면치 못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읽는 이의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그가 학교에서 동네에서 집에서 늘 개밥의 도토리처럼 겉도는 신세인 것도 영 마음이 편치 않다.
책을 손에서 놓고도 한참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평소 사회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해 깊이 있게 다가가려하지 않았고 너무 무관심했었다.
이 책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녀가 바라는 건 비난과 자책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뿌리박힌 잘못된 인식과 선입견의 바로잡음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피하지 않고 바라봐주길 바랬을 것이다.
'거대한 뿌리'는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풀어야 할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자고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덥석 잡고 싶다.
'거대한 뿌리'는 교사와 학생이,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기에 좋은 작품이다. 아동문학 작가로 알려진 김중미님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하지만 중학생 이상의 학생들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다. 독서 토론 등 학습서로 삼기에도 적합한 것 같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방관했을 우리 모두가 지금이라도 그들을 인정하고 더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는 한 명 한명의 인식이라도 바꿔나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작가가 바라던 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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