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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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께
  • 남해타임즈
  • 승인 2010.06.10 15:27
  • 호수 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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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봉 숙
(6·25전몰군경유자녀회 남해군지회장)

한번도, 단 한번도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 어찌하여 대답이 없나요. 남들은 다 있는 아버지, 왜 제게는 없는지요. 조국이 무엇인지, 전쟁이 무엇인지 원통하고 또 원통합니다.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시신도 유품도 없이 한줌의 흙으로 산화하신 아버지. 흘러간 강물처럼 가고 아니 오신 우리 아버지.
반드시 살아 돌아오겠다던 그 결연한 의지는 전사통지서와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아버지를 국가에 바친 우리들에게 남은 것은 지독한 가난과 꼬릿말처럼 따라다니는 아버지없는 설움뿐이었습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혹은 삼촌, 고모 손에 이집저집 떠돌아다니며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마냥 자라난 저희들.
백년만년을 부귀영화속에 살아도 아쉬움이 남는 것이 우리네 인생일진대, 아버지없는 슬픔 속에서 살아온 미련과 아쉬움이야 이 세상의 그 어떤 단어로 형용할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 채, 아버지라고 크게 한번 불러보지도 못하고 60여년 세월을 살아왔건만 제 가슴에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자상한 모습으로 자랑스럽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번영들이 우리 아버지의 희생을 토양으로 삼아 이룩한 것이 분명할진대, 야속하기만한 세월은 무심하게만 흘러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제 살기에 여념이 없고 아버지의 죽음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어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버지의 값진 죽음마저 잊혀져가는 오늘날의 현실 앞에 도대체 누구를 원망하고 또 무슨 말을 해야할까요.
그렇게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바쁘게 흘러간 지난 세월…
이제는 자식들 모두 다 키우고 인생의 황혼녘에 접어드니 그리움과 아쉬움이 더욱더 커져만 가는 것을 느낍니다.
이 세상, 인연의 끈이 짧아 아버지와 현세에서 많은 시간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천상에서 아버지를 뵙는다면 웃음으로 맞아주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봅니다.
속절없는 세상사의 위대한 희생물이 되어 청춘을 다 꽃피우지 못하고 짧은 생을 살다가신 우리 아버지! 오늘, 이 처절한 그리움과 뼛속 깊이 사무치는 60년의 한을 담아 다시 한번 불러봅니다.
아버지…보고싶은 아버지…너무나도 그리운 아버지…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는 나의 아버지…
목이메여 차마 아버지 세글자를 부르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듭니다.
오늘, 아버지의 비석과 위폐 앞에 흘린 눈물로 제가 다녀갔음을 알기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가 20대에 입으신 푸른 군복, 무거운 군화, 이제는 훨훨 벗어 던지시고, 오늘 여기 저희들이 정성껏 차려올린 이 술잔 받으시고 이제 부디 편히 잠드시옵소서.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현충일을 맞아 지난 6일 남산충혼탑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6ㆍ25전몰군경 유자녀회 남해군지회장인 김봉숙 씨가 전장에서 생을 마감한 그의 아버지에게 쓴 애절한 편지를 낭독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에 본지도 전쟁이 낳은 이 안타까운 이야기를 독자와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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