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꽃들아!’가 준 평화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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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꽃들아!’가 준 평화의 소중함
  • 남해타임즈
  • 승인 2010.08.13 17:37
  • 호수 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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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대 글 : 장 현 재 남해초교 교사

장 현 재
남해초교 교사

 

신록의 발랄함이 한층 더해지는 작년 오월 초. 남쪽 먼섬 남해의 아이들은 북쪽을 향해 길을 잡았다. 남녘의 짙은 봄바람을 싣고 서울을 지나 전임 대통령 두분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거쳐 간 자유로를 따라 다섯시간여 만에 도착한 곳이 도라 전망대였다. 민간인 신분으로는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남방한계선의 도라 전망대! 비무장지대의 억새풀은 지난겨울의 갈색 이불을 덮고 늦잠을 자고 있었다. 개성까지 이어진 길. 갈 수 없다는 안타까움은 화려한 봄에 대비돼 눈물샘을 솟구치게 했다.

사진촬영도 금지된 곳! 아픔의 현장을 뇌리에 새기려고 눈을 비벼 됐지만 연무에 싸인 북쪽은 시야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가슴깊이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사전 학습자료를 줬지만 분단의 현장을 눈으로 볼 뿐 총성과 포성, 피비린내로 얼룩진 휴전선의 사연을 단지 호기심으로만 느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고성능 망원경으로 북쪽을 바라보며 보인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연방 한차례의 여행단이 왔다간다. 저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고 가슴에 새겨갈까?

세월이 지난만큼 신세대들의 안보관이나 국가관은 많이 변했다. 이런면에서 최병관 선생님의 ‘울지마, 꽃들아’는 직접 체험하기 어려운 분단의 현장과 비무장 지대의 자연을 가슴을 울리는 글귀와 사진으로 엮어 아이는 물론이고 날로 무디어져 가는 국가관에 경종을 울리는 좋은 자료가 됐다.

휴전선 155마일. 짧은 기간이지만 DMZ를 찾은 회수는 4번이 된다. 대학시절 하사관 후보생으로 서부전선 제1땅굴 주변에서, 그로부터 10년 뒤 제2땅굴, 노동당사, 월정리역을 그리고 14년 후 2009년 5월, 6학년 아이들과 현장체험학습으로 도라전망대를 찾은 것이었다.

버스가 지나는 남방한계선 주변 편도 1차선 도로의 길섶에는 ‘지뢰, 길이 아니면 가지마라’, ‘3인 1조 행동’이란 글귀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서쪽 임진강변에서부터 동해안 모래사장까지 한반도의 허리를 남과 북으로 가른 249.4㎞의 군사분계선과 1292개의 군사분계선 표지판은 50년의 긴 세월도 녹슬지 않고 파수꾼처럼 사진 속에 살아있었다. 그 기간동안 우리는 서로 단절이란 마음의 벽을 세우고 벼리며 먼 거리에서 살아온 것이었다.

누구와 경쟁을 하는 것일까?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와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는 서로 지지 않으려는 깃대높이기 경쟁으로 하늘을 찌르며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의 교훈을 알면서도 양보 없는 욕심의 죄를 짓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저 너머.

한이 많아 탄식을 하며 흘렀을까? 한탄강을 가로지는 금강산 가는 끊어진 철길 밑으로 도도히 흐르는 물결은 분단과 전쟁의 아픈 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만 지치게 하고 경의선을 달렸던 열차는 비무장지대의 장단역에 주저앉아 벌겋게 녹슬어 비가 올 때 마다 벌집 같은 총탄구멍에서 아픔의 녹물들이 핏물처럼 흘러 주변을 물들이는 사진은 한민족이라면 눈시울을 붉히게 할 것이다.

어떤 성악가가 불렀던가? 호국보훈의 달 기념음악회에서 소프라노 음률에 퍼지는 비목의 가사가 그리움과 아픔에 사무친 한 청년의 시가 노래로 만들어졌다는 사연을……. 군번도 없는 수많은 무명용사들의 흘린 피가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고개 숙여 단조의 음률로 흥얼거려보지만 목이 멘다.
낮과 밤을 잃어버린 땅.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기 그지없지만 사진 속 비무장 지대의 침묵은 긴장과 불안의 팽팽함 속에 새순, 녹음, 단풍, 눈의 사계절이 묻어나고 있다. 더구나 바람 한줄기 이슬 한방울 조차 월경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겹겹의 철조망들은 몸속깊이 파고들어 대수술을 하지 않고서는 제거하지 못할 것 같았다. 군사분계선 양쪽 2㎞에 걸친 100만개의 지뢰는 암 덩어리로 누가 수술을 할 수 있을까?

꽃은 피고 새는 날아들고.
사람의 간섭을 적게 받은 비무장 지대 지뢰밭에 피어난 코스모스 삼형제의 을씨년스런 모습. 위험도 모른채 하늘거리는 잎들은 전쟁의 상흔을 날리고 있다. 그 철조망 사이에 패랭이꽃, 갯메꽃들은 지난날의 아픔이 승화돼 소박함으로 피워나고 이념과 사상을 모르는 산양과 두루미들은 자연의 평화로움을 매복나간 병사에게 전해주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자연의 일부분인데 사람은 이념과 사상이란 아귀에 씌어 한계효용을 모르고 오늘도 등 돌려 부동자세로 있으니 어떻게 할까?

머리에 내린 하얀 세월.
어릴적 집을 떠나 남북이 가로막힌 지금. 남방한계선 전망대에서 노안으로 흐릿한 눈을 망원경에 기대어 한번이라도 좋으니 흙이라도 만져보면 한이 없을 것 같아 눈시울을 적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 풍족한 세월에 아픔을 모르는 젊은이들은 그 속내를 알까? 파란 하늘가에 구름처럼 투영된 백발. 지척이 고향인데 밟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월정리 역사 앞에 소주한잔으로 달래는 한을 바람은 전할까? 이 아픔들을 깁고 평화와 사랑의 꽃을 피울 사람은 우리 모두이다. 노동당사 건물 벽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낙서가 평화를 얼마나 기대하는지 셔터소리에 정지돼 있다.

인적이 닿지 않는 비무장 지대에 총탄 구멍과 녹슬어 헤진 철모 사이에 피어난 들꽃. 그 어느 무명용사의 죽음을 애도하는지 들꽃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
‘그래 울지마 꽃들아! 머지않아 슬픔도 미움도 네가 계속 그 자리에 피어나는 한 기쁨과 사랑을 가득 안고 매만져 줄 이들이 올 거야. 그때까지 주변의 여러 들꽃을 깨워 사랑과 평화의 꽃씨를 온 누리에 뿌려줘!’
우리아이들은 21세기를 살고 있다. 목숨 바쳐 이 나라를 지킨 그 분들과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전방고지에서 야간근무에 지쳐 여자 친구의 반가운 편지도 뜯지 못한 채 손에 쥐고 잠든 병사들의 노고가 있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많은 글도 어려운 내용도 아닌 ‘울지마, 꽃들아’는 분단의 아픔을 모르는 우리아이들에게 평화의 소중함과 일깨워 주는 내용이었다. 비무장지대를 3번이나 왕복하는 그 누구도 하기 어려운 일을 사진과 글로 엮은 최병관 선생님. 사진을 통해 전쟁의 아픔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평화와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것이다.
나지막이 읊조려 본다. 14년 전 월정리 역사에서 폭격 맞아 주저앉아 녹슨 기관차를 보며 쓴 시를 그리고 오늘밤은 초등학생인 둘째와 최병관 아저씨의 화보집을 보며 자유와 평화의 소중한 진실을 들려주고 싶다.

※위 글은 2010년 7월 발표된 것으로 민족통일경상남도협의회가 주최한 2010년 제41회 한민족통일문예전 일반부 경상남도 도지사상 수상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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