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유배문화의 뿌리’는 人文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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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유배문화의 뿌리’는 人文學이다
  • 박성재
  • 승인 2010.10.15 11:36
  • 호수 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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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는 없지만, 남해의 문화예술 현장에서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을 꼽자면 ‘유배문화’일 것이다. 전라도에서 전라도 유배문화라는 말을 그토록 자주 쓰는지 알 수 없지만 ‘남해 유배문화’ 라는 말은 확실히 많이 쓰이는 것 같다. ‘남해 유배문화 형태로의 발전, 부활’ 따위의 낱말과 남해가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이유는 남해가 한국 유배문화의 중심지(中心地)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과 유배지에서 생산해 낸 문학작품 중에 남해 유배문학은 장르가 다양하다는 점, 김만중의 구운몽이 국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남해유배문화‘라는 표현에서 남해라는 두 글자는 장소다. 남해 유배문화는 장소를 떼어놓고 논할 수 없는 일이다. 남해 유배문화가 가지는 한국 ’인문학의 메카‘라는 위상을 쉽게 차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필자는 전국규모의 서포문화제를 개최하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필자는 ‘인문학의 메카·구운몽의 창작지 남해’라는 슬로건을 남해의 대표슬로건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었다. 전국규모의 서포문화제를 통해 끊임없이 『구운몽』의 창작지는 남해라는 역사적 사실을 만방에 주장하자는 말이다.

이 일은 남해군이 앞장서고 깨어있는 남해군민들이 남해군을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성사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는 11월 1일은 남해유배문학관 개관예정일이다. 개관 이전에 우리 스스로 ‘구운몽의 창작지는 남해’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확실하게 천명하지 못한다면 유배문학관을 개관하는 의의는 힘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 남해인(南海人)들의 자존심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방관하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남해유배문화ㆍ역사를 왜곡하는 방조자가 되는 셈이 아니겠는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구운몽』의 창작지와 관련한 논쟁은 1992년에 일본 천리대학에서 발견된 작자미상의 ‘서포연보’에 따라 선천 유배 때 어머님을 위로하기 위해 보낸 저서 내용 중에 몽환(夢幻)이란 글귀를 구운몽이라 주장하지만 몽환이 구운몽이라고 확신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더욱이 ‘구운몽을 일야(一夜)에 지었다’는 것은 잘못된 기록이다.

왜냐하면 『서포연보』가 김만중에 의해 직접 기록된 것이 아니라 김만중 사후에 그의 조카 김양택(金陽澤, 1712~1777)에 의해 집필됐을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서포연보’에 ‘사씨남정기’의 내용은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서포연보의 완전성을 의심해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제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진정 남해의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단순한 유배문학관의 차원을 뛰어넘어 남해가 가지는 유배문화자산의 심장부가 될 ‘인문학연구소’를 설치하여 개관과 동시 전국에 홍보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전국 각 대학의 국문학과 대학원생?대학교수 그리고 인문학관련 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충?효의 교육의 장, 문학교육의 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초?중?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로 선정하여 옛 선비들이 서당의 훈장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쳤던 방식 그대로의 학습체험의 장, 인성교육의 장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남해유배문학관은 타 문학관과 차별화는 물론 발전과 향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남해유배문학관 개관을 맞아 ‘인문학의 메카’로 남해군민들의 생각을 모은다면 남해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활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손자병법에는 전쟁에서 승리를 위한 조건을 보면, 첫째는 명분이 있어야 하며, 둘째 기회가 왔을 때, 셋째 열정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라 했듯이 지금 남해는 ‘인문학의 메카’로 매진할 절호의 기회다. 이 좋은 시기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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