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유일의 과거급제자, 이희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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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유일의 과거급제자, 이희급
  • 남해타임즈
  • 승인 2010.10.22 16:32
  • 호수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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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년 전 문과급제 … 함양군수와 경남도사 지내

                                   장  대 우 문화원장

남해섬이 생긴 이래 조선시대 중엽 과거에 급제한분은 오직 한사람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582년(선조 15년) 33세의 나이로 문과병에 급제한 남해군 이동면 난음리 출신인 이희급(李希伋) 씨로 본관이 장수이며 장천부원군 임간의 11세손이다.

1582년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섬을 나선 이희급은 영남의 보부상들이 무거운 봇짐을 이고 지고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고 한탄하며 넘던 문경새재의 험준한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물 박달나무 /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홍두깨 방망이 팔자 좋아 / 큰 애기 손질에 놀아난다 / 문경새재 넘어 갈제 /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며 ‘장원급제’ 꿈이 고갯길 굽이마다 돌고 돌아 새들도 자고 간다는 이 문경새재는 과거시험에 나선 선비들의 애환을 가득 담고 있다.

문경새재를 넘어서도 주막이나 노상에서 며칠을 세워가며 선비들은 약 1개월 정도를 도보로 한양까지 가야 했다. 말을 타고 간다고 하더라도 10여일 이상 걸렸기에 과거를 치르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이희급이 과거시험을 치르러 어찌 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남해섬이 생긴 이래 유일하게 과거를 치르고, 급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각고 끝에 과거시험에 합격한 이희급은 급제 후 승문원 정자 저작박사를 시작으로 함양군수가 됐으며 이후 임진왜란으로 함양이 함락되자 경상도사로 임명, 의병을 모아 여러 전투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그는 1597년 9월 16일 이충무공과 같이 진도벽파진 전투에서 용전분투하다 순절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이동면 초음리 출신의 이충걸도 성종17년(1486)에 문과에 급제 했다고 전해지나 확인을 해본 결과 과거급제 합격자 방목에는 들여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충걸도 문과 급제 이후 예조정랑, 대사헌승지, 중구부사, 경산우도절도사, 중추부사를 거쳐 중종 5년(1510)에 대사현 전라감사와 병조참판의 벼슬까지 거친 우리고장을 빛낸 명관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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