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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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반론
  • 남해타임즈
  • 승인 2010.10.22 16:55
  • 호수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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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관 호(시인·본지논설위원)        

햇반, 듣기는 괜찮은 말인데도 구성은 별로다. ‘햇’자는 한글이고, ‘반’자(飯 밥 반)는 한자니까 말이다. 비록 조작된 말이기는 하나 세상을 또 한번 햇살처럼 반짝이게 한 걸작으로 평가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주식(主食)을 패스트푸드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객지에서 여러해 자취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아주 가끔이나마 절대적 생명줄일 때도 있었던 물건인 만큼 호감을 가진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오늘 한 상품 이름을 실마리삼아 글을 쓸 뿐이지, 이 물건을 선전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음을 밝혀둔다. 여기서 햇반은 단지 비유일 뿐이니까.

나는 최근 우리나라 국립공원 20곳을 안내하는 책 한권을 읽었다. 아쉽게도 이 책에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일부인 우리 남해는 빠져있었다. 이 책은 각각의 국립공원을 해부해 놓은 것이 아니라, 가령 광활한 지리산국립공원을 곰 이야기 한가지만으로 채워놓은 것처럼, 한의사가 환자의 혈을 짚어서 침을 놓듯, 그 하나로써 열을 다 말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먼저 ‘왜 이 저자가 남해를 쓰지 않았을까?’를 생각했고, 또 한가지 떠오른 생각이 햇반이었다. 마치 쌀로 햇반을 짓듯 어느 국립공원의 모든 요소들을 모두 말하지 않고도 밥상의 핵은 밥이듯이 차지고도 맛난 한 그릇의 밥으로 지어놓은 품이 얼마나 단아한지….

나의 문재가 출중해 우리 남해 국립공원을 그렇게 햇반으로 지어서 내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뿐만 아니라 우리 남해의 모든 곳과 모든 것을 그렇게 드러낼 수 있었으면 그보다 더 다행한 일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군민과 향우들은 고향이 얼마나 자랑스러우며, 수많은 관광객들은 또 얼마나 만족해할까? 쌀밥 맛이 살아있고, 먹는 소화기관이 다 즐겁고, 찌꺼기도 없이 다 살로 갈 것 같은 영양밥, 게다가 이름조차 반짝이는 햇반인 남해, 진정한 보물섬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소망이 허망일까? 우리는 남의 좋은 것을 본받기 위해서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선진국이나 선진지로 시찰을 간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수준은 크게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불꽃축제가 끝난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 한강변의 모습이 쓰레기천국일진대 전국의 어느 곳이 선진국을 넘보는 나라의 국민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요즘에 ‘국격’이란 말이 화두가 되고 있다. 가칭 이 ‘햇반론’은 우리 남해의 품격을 드높여 나타내자는 주장인데, 그보다 이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내가 읽은 책의 국립공원 소개처럼, 그 한가지를 말하면 그곳의 모든 것을 다 말하는 것이 될만한 얘깃거리가 있어야 한다. 즉 그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어떤 유산은 그대로만 해도 충분히 값지고 보배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거기다가 우리네 정신문화를 더하고 새로운 창조를 가미하면 더욱 훌륭하고 뛰어난 자원이 되는 것이다. 가령 마늘을 보자. 농사를 잘 지어서 좋은 마늘을 생산한 것이 전부가 아니다. 마늘 조래기에 ‘마늘 보관법’이나 ‘마늘 조리법’과 같은 카드 한장을 넣어서 판매한다면 남해마늘을 사가는 사람에게 얼마나 유익하겠는가? 또한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고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에 얼마나 감사하겠는가? 그래서 그 마늘 조래기가 온전한 보물섬 상품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고, 이것이 곧 앞서 말하는 소위 햇반론인 것이다.

남해에 와서 꼭 보고 갈 것, 꼭 알고 갈 것, 꼭 먹어볼 것, 꼭 사가지고 갈 것, 꼭 마음속에 담아갈 것은 무엇일까? 어떤 알맹이를 어떻게 만들어서 어떻게 포장하고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 그 하나하나가 햇반처럼 알차고 인기 있는 명품이기를 소망해 본다. 그래서 진정한 보물섬이 되도록 햇반을 만들 듯이 좋은 쌀을 고르고, 좋은 물을 알맞게 붓고, 실험 데이터와 똑 같은 온도로 끓이고 뜸 들여서 눌러 퍼 담아 상표를 붙여내기까지 남해인의 지혜와 정성을 퍼부어보자. 몰려드는 관광객을 어찌 막으며, 잘 팔리는 특산물 수요를 감당이나 하겠는가? 이 글을 쓰는 지금 나의 꿈속에는 남해로, 남해로 밀려오는 인파를 환영하는 벚꽃가지가 하늘하늘 춤을 춘다. 꽃향기가 봄 바다 가득 흥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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